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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에서 대한제국 황실 적통 잇는 ‘황사손’ 된 이원

“황사손이 된 것은 내 운명, 대한제국의 전통문화 복원하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09.12 16:19:00

지난 7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가 후사 없이 사망한 뒤 한 회사원이 그의 뒤를 잇는 양자로 정해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의 손자이며, 황세손 이구씨의 조카인 이원씨가 그 주인공. 태생이 황손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왔던 그를 만나 대한제국의 상징적 법통을 잇게 된 배경과 지금의 심경, 앞으로의 각오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한제국 황실 적통 잇는 ‘황사손’ 된 이원

지난7월16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가 일본의 한 호텔에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1910년 한일합병으로 몰락한 대한제국 황실은 마지막 문을 닫는 듯 보였다. 그런데 며칠 후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한 홈쇼핑 업체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이원씨(44)를 이구씨의 양자로 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대한제국 황실은 그에 의해 상징적인 대를 이어가게 됐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 하루아침에 대한제국의 상징적 법통을 잇는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이란 의미)’이 된 이씨는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의 9남 이충길씨의 장자.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와는 삼촌 조카 사이다. 본적이 경복궁인 이씨는 황손으로 태어났지만, 그동안 황실 이름 ‘원’ 대신 ‘상협’이라는 본명을 사용하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이씨를 만났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뿔테 안경과 한껏 힘을 줘 세운 머리였다. 40대 회사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흔히 생각하는 황실의 후손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그 역시도 “나는 본적이 경복궁으로 되어 있을 뿐, 지금껏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6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씨는 상문고를 졸업한 뒤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NYIT(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방송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 21세 때.
“그전에도 할머니께서 가끔씩 ‘네 몸에는 왕가의 피가 흐른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할머니는 언젠가 때가 되면 아버지가 제대로 말씀해주실 거라고 기다리라고만 했죠.”
그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찾아왔다. 이민을 결심한 그의 아버지 이충길씨(황실명 이갑)가 큰아들 이씨를 데리고 창덕궁 낙선재에 가 영친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에게 인사시킨 뒤 처음으로 남다른 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아버지 이씨가 그때까지 자신들이 황손이라는 사실을 숨긴 건 황실 후손들의 삶이 다 비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한제국 황실 적통 잇는 ‘황사손’ 된 이원

이환의 대동종약원 이사장과 황사손 이원, 황손 이충길씨(왼쪽부터).



“대한제국이 문을 닫은 뒤 황손들은 삼류 잡지에 불쌍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길거리 거지’가 되어버렸어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런 걸 보여주기 싫으셨던 거죠. 당당히 일어서신 뒤 자랑스럽게 뿌리를 알려주려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거예요. 결국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황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거예요.”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일상생활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고 회고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느라 삶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케이블 회사인 HBO에서 PD로 일하던 그는 6년 만에 귀국해 광고회사인 금강기획에서 5년 동안 제작업무를 담당했고, 이후에는 케이블 채널 현대방송에서 PD로 일하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결혼 관련 케이블 채널인 뷰티 TV에 설립 멤버로 참여하고, 댄스그룹 HOT가 한창 인기 있을 때는 관련 캐릭터 사업을 벌이는 등 ‘대한제국의 황손’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늘 트렌드의 최첨단에서 살았다.

두 아들에겐 아직 알리지 못해, 먼저 자신의 정체성부터 확립하고 3년 안에 얘기할 터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한제국 황실 적통 잇는 ‘황사손’ 된 이원

그런 그가 ‘황실의 법통’이라는 낯선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은 3년 전 한 출판기념회에서 황세손을 만나면서부터. 만년에 후사가 없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던 황세손은 이 자리에서 이씨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듯, 이후 따로 자리를 마련해 그를 다시 한 번 만날 만큼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두 번 그렇게 만나뵌 후 이구 저하-그는 황세손을 ‘저하’라고 불렀다-가 대동종약원 이환의 이사장에게 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어요. 그리고 저를 그분의 양자로 입적하는 문제에 대해 문중 어른들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황세손 저하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 문제가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죠.”
이씨는 “내가 황세손의 양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기는 했지만, 그건 확실치 않은 가정이었기 때문에 막상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당황스러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했다.
“황세손 저하가 서거하셨단 소식을 7월19일에 들었고, 21일 오후에 열린 가족회의에서 제가 황세손의 양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과연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면서 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앞으로 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어요. 하지만 우리 집안 누군가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거부하거나 피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죠.”
이에 따라 이씨는 7월22일부터 이구씨의 장례 절차에서 상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비로소 “그동안 잊고 살던 내가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는 납득한다 해도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집사람은 지금 제 뜻을 전적으로 따라주고 있지만, 저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울 거 아닙니까. 본인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되니 부담도 적지 않을 거고요. 더 신경 쓰이는 건 아직 어린 아이들이죠.”
그는 여덟 살, 일곱 살 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는 아직 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듯,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됐을 때 자연스럽게 뿌리에 대해 알려주려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변해버렸다는 것.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학교에서 놀림이나 당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자신의 가족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떳떳하게 이야기해줄 겁니다.”
그는 “지금은 사실 나 자신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3년상을 치르며 1백년간 단절된 우리 황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겠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다음 차례”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계속하면서 ‘황사손’으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할 것”
이씨가 황사손으로 결정된 뒤부터 그를 아는 이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이제 이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거나 “품위 유지를 해야 하지 않느냐”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 생활에는 별로 변화가 없을 것이며, 직장도 계속 다닐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황세손 저하의 양자로 입적됐지만 실제 생활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회사에서 일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이제 황실을 대표해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생겼으니 더러 회사를 빠져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평소에는 회사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돼요.”
지난 8월9일 열린 대동종약원 이사회는 그의 호칭을 황사손으로 정하고, 지금껏 고 이구 황세손이 맡았던 황실 4대 제향-조경단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대제-의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을 이제부터 그가 맡도록 의결했다. 오는 9월4일 열리는 사직대제부터 그는 초헌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씨는 “4대 제향이 모두 일요일에 있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도 충분히 초헌관을 할 수 있다”며 회사생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한제국 황실 적통 잇는 ‘황사손’ 된 이원

그는 문화관광부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황세손에게 지급했던 품위유지비를 이제부터 이어받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우선은 황실의 품위가 지금 남아 있는지부터 자문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황실에 대해 잘 모르던 사실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연구비를 받는 것이라면 몰라도 ‘품위유지비’라면 받지 않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황사손이 된 그에게 남은 한 가지 문제는 대한황실의 법통이 그를 거쳐 그의 아들에게로 바로 넘어가는 것인가 여부. 이씨는 “종친회 측에서는 그렇게 결정한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내 삶을 선택한 만큼 아들 역시 그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앞으로 종친회와 계속 대화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껏 대중문화를 좋아했고, 그 분야만 공부해온 사람이에요. 우리 전통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죠.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황실의 법도와 문화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할 겁니다. 초헌관으로 제향을 주관할 때는 걸음걸이 하나까지 예법에 맞아야 하거든요. 제가 하는 행동들이 그저 흉내내기로 비치지 않도록, 그 행동 안에 담긴 정신까지 익히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제가 황사손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전통문화뿐 아니라 인류학이나 고고학 등도 공부해 제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에요.”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이씨. 앞으로 그가 황사손으로서 보여줄 모습이 기대된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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