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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족 사랑의 힘

8년째 루게릭병 앓고 있는 아버지 돌보는 여고생 신원미

“하루빨리 치료약 개발돼 아빠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에요”

기획·구미화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5.07.14 11:28:00

고등학교 2학년인 신원미양의 아버지는 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이다. 아버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발가락뿐이라 온 가족이 돌아가며 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가족간 정은 더욱 돈독해졌다는 신양의 가족을 만나 남다른 가족사랑을 들어보았다.
8년째 루게릭병 앓고 있는 아버지 돌보는 여고생 신원미

경북영양에 사는 여고 2학년 신원미양(18)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뽀뽀를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입술을 움직이는데 그것만 보고도 신양은 까르르 웃음을 짓는다.
신양의 아버지 신현우씨(43)는 8년 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몸져누워 있다. 루게릭병의 정확한 명칭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이 이 병에 걸려 죽은 뒤 루게릭병으로 불리고 있다. 1백만 명 중 한 명 정도가 걸리는 희귀병으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앓고 있는데 아직까지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루게릭병에 걸리면 척수에 있는 신경세포가 점차 죽으면서 근육들이 하나 둘 기능을 멈추고 나중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렇듯 육체가 잠들어가는 동안에도 정신은 멀쩡해서 ‘육체의 감옥’이라고도 불린다.
신양의 아버지 역시 지난해부터는 호흡이 곤란해져 기도를 뚫고 호흡기를 달았다. 그 후 말을 할 수 없게 돼 가족들은 신씨의 눈 깜빡임과 입 모양을 보고 의사를 전달받는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Yes’, 두 번 깜빡이면 ‘No’라는 뜻이다. 신씨가 몸져누운 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발가락뿐이라 대소변을 가족들이 다 받아내야 한다. 때문에 신양과 신양의 어머니 강국자씨(42), 남동생 민철군(16)이 돌아가며 아버지 옆을 지킨다.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우유배달을 하러 간 사이 아버지를 돌보는 신양은 지난해 가천재단에서 주최하는 ‘심청 효행상’ 대상을 받은 소문난 효녀. 젖은 수건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닦고, 가래가 껴서 호흡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석션(가래 배출하기)을 시키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지만 신양은 ‘효녀’라는 꼬리표가 싫다고 한다. 어른들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를 것 같은 효녀 이미지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아빠가 건강하셨을 땐 사실 아빠랑 별로 친하지 않았어요. 아빠가 병이 난 뒤에야 제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죠. 우리 식구 누구도 아빠를 돌본다는 생각은 안 해요. 아빠는 늘 그 자리에서 아빠 역할을 다 하고 계시거든요. 다른 아빠들처럼 돈을 벌진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당신의 몫을 충분히 하고 계세요. 불치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빠의 의지력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신양의 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대 옆쪽 벽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달려 있다. 아버지 신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다. 투병기간이 길어지고, 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들은 신씨에게 컴퓨터를 배우도록 권했다. 발가락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신씨는 어느새 인터넷 바둑 방송을 통해 바둑을 배워 즐기고, 루게릭병 환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도 들른다. 또 가족들을 위해 좋은 음악을 골라 틀어주기도 한다.
“간혹 가족들이 견뎌야 하는 고통이 크니까 차라리 아빠가 안 계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아빠가 없으면 식구들 몸은 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 거예요.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사랑할 수 있는 아빠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신양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을 쳤다. 공무원 생활 20년 중 10년을 군청 예산계에서 근무했는데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업무량이 많은 연말결산을 해야 할 때면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군청 가까이 있는 여관에서 밤을 새워 일했다. 주말에는 테니스 코트에서 살다시피 하며 체력을 단련해 군청 대표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일과 운동에 열중하느라 가족들에겐 썩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건강만은 자신했던 아버지가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건 98년. 남들보다 먼저 6급 공무원으로 진급했던 아버지는 IMF 여파로 대기 발령을 받은 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테니스 시합에서 실력발휘를 제대로 못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테니스 라켓을 드는 것조차 힘들어하게 된 것. 그런 상황에서도 일을 놓을 수 없다며 병원 가기를 미루던 아버지는 결재서류를 들 힘조차 없어졌을 때야 마지못해 휴가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루게릭병. 의사는 신씨에게 길어야 5년을 더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양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을 밥상을 보고 눈치챘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밥상에서 고기반찬이 사라지고 시금치, 콩나물 등 채소반찬만 오르기 시작한 것. 밥도 흰쌀밥 대신 누렇고 잘 씹히지 않는 현미밥이 올라왔다. 변화는 밥상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를 위해 채소를 갈아 녹즙을 만들고, 집안 청소도 전보다 더 자주 했다.

힘든 내색 한 번 않고, 아버지를 최고로 여기는 어머니 보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 깨달아
8년째 루게릭병 앓고 있는 아버지 돌보는 여고생 신원미

“아빠가 편찮으시다는 걸 처음 안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엄마가 저에게 아빠가 오래 못 사실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제가 대학 가는 것도, 시집가는 것도 못 보실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아빠한테 더 잘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동생하고도 잘 지내야 한다고 당부하셨어요. 그때는 아빠가 암에 걸린 줄 알았어요. 전 암을 가장 무서운 병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세뱃돈이랑 아껴둔 용돈을 수술비에 보태겠다고 말하니까 엄마가 저를 꼭 껴안으시더라고요. 아빠의 병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병이었던 거죠. 아빠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건 6학년이 되어서야 알았어요.”
신양의 아버지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로도 직장생활을 더 했다. 볼펜으로 글씨 쓰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서류도 더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는 20년간 젊음을 바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시는 날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어요. 아빠는 우리가 말리는데도 결국 독사진도 찍으셨고요. 그날 점심을 먹을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아빠가 아픈 건 참 속상한 일이지만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요. 그러니 우리가 기죽지 않고 더 씩씩해져야 한다고요. 아빠는 우리를 위해 20년간 최선을 다해 일하셨으니 이젠 쉬셔야 하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하셨죠.”
신양은 어머니를 통해 진정한 가족사랑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시도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절에 들어가 1년 동안 생활하기도 했고, 아버지를 위해 수지침과 쑥뜸도 배웠다고.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둔 뒤로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유 배달을 하고 있지만 두 남매에게 힘든 내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8년째 루게릭병 앓고 있는 아버지 돌보는 여고생 신원미

아버지 신현우씨를 둘러싸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신원미양과 어미니 강국장씨, 남동생 민철군.


사실 신양의 어머니는 신씨 종가의 맏며느리라 집안일만도 녹록지 않다. 1년에 제사가 10번. 아버지가 몸져누운 뒤에도 어머니는 제삿날은 아버지가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제사를 더 정성스럽게 준비한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종가 맏며느리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 어머니지만 몇 해 전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팔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언젠가 치료법이 개발되면 아버지가 지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목돈을 준비해놓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또 아버지가 휠체어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추억을 많이 만들어놓아야 한다며 가족들을 이끌고 동해안과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가 연애시절에 보낸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우울할 때 꺼내서 읽으면 힘이 난대요.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또 일어날 수 있도록, 잠시 넘어져도 절망에 허덕이는 일이 없도록 서로 돕고 노력하자! 라는 말에는 당신을 향한 형언할 수 없는 믿음과 소망, 사랑이 담겨 있어. 어떤 어려운 고난과 고통스런 시련이 와도 우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이겨나가자고 약속하자. 난 오늘부터 당신을 위해 새로워질 거야’라는 대목을 읽으면 금방 쓰러질 것 같다가도 기운이 솟는대요(웃음).”
신양의 아버지는 지난 결혼기념일에 신양에게 장미꽃을 사오라고 해서 아내를 감동시켰다. 20년 넘게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양은 그동안 아버지에게 살갑게 굴지 못한 게 후회됐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뽀뽀. 신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와 입을 맞춘다. 그러고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하고, 재미있었던 일들은 그대로 재현해 아버지에게 웃음을 준다. 아버지가 아프기 전보다 아프고 난 뒤에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는 신양은 이제 아버지의 눈빛과 입 모양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환자가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만 지난해 봄엔 아버지와 나머지 식구들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져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한사코 거부한 것. 아버지는 대신에 식구들을 불러 앉혀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신양은 아버지가 몸져누운 뒤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는데 그때 처음 아버지에게 눈물로 간청했다고 한다.
“아빠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되니까 그냥 우릴 지켜보기만 해달라고요.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요. 아빠가 지금 가면 나중에 결혼할 때 전 누구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냐고, 다른 친구들의 예쁜 드레스나 값비싼 보석은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을 거지만 아빠 없이 결혼하는 건 너무 슬프다고요. 꼭 아빠 손잡고 예식장 들어가고 싶으니까 아빠가 힘내서 꼭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어요. 아빠가 여기서 포기하는 게 결코 가족들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설득했죠.”

가족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인공호흡기 거부한 아버지에게 눈물로 애원
아버지는 결국 신양의 말을 듣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가족들에게 전과 다름없이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투병 의지가 강해지자 신양도 학교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신양은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한 전형적인 10대 소녀다. 잘 웃고, 남을 웃기기도 잘하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많다고 한다. 먹고 자기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먹고재비 4인방’을 결성하기도 했다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의기소침하지 않은 신양은 전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썩 잘한다.
낙천적인 신양에게는 세 가지 소망이 있다.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다른 환자들에 비해 병의 진행 속도가 느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 두 번째 소망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는 황우석 박사가 하루 빨리 치료법을 개발해 아버지가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소망은 신양 자신이 임상심리학자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간호하며 몸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게 마음의 병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그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사실 신양은 이미 또래 상담가로 활약하고 있다. 부모와의 관계나 성적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해주다 보니 사람은 저마다 어깨에 지고 가는 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신양은 “가족간에 서로의 소중함을 안다면 무거운 짐도 흔쾌히 나눠 질 수 있다”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최근 신양 가족은 지난 8년간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 ‘아빠가 꽃보다 아름답다’를 펴냈다. 책을 본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다고 동정할까봐 걱정스럽다는 신양은 자신이 아빠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보다 자신의 식구들이 병든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요즘 많은 아빠들이 힘들어하잖아요. 그 아빠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족끼리 더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저희 식구들 얘기를 책으로 펴낸 거예요. 제가 사는 이곳에도 아빠와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시골에 사는 아빠들은 돈을 많이 못 버니까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사줄 수 없고, 아이들은 그게 불만인 거죠.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면 전 생각을 바꾸라고 충고해요. 아빠는 당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가족들을 위해 살고 있으니까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빠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생각해보면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 거라고 얘기하죠. 우리 아빠도 그렇게 열심히 사셨거든요.”
아빠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러운 존재라며 병들어 누워 있는 아빠의 존재감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는 여고생 신양의 당찬 목소리가 ‘부자 아빠’를 최고로 치는 요즘 세태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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