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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단독 인터뷰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그간 남편 원망하기보다 자기반성의 시간 가지며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아요”

■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5.02 10:01:00

지난 2002년 서세원이 연예계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철저히 매스컴을 피한 채 은둔생활을 해온 부인 서정희가 3년 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 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부부애와 가족 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졌다”는 그가 그간 말 못한 아픔과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온갖 소문에 대한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지난 4월5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SBS 탄현제작센터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지난 2002년 서세원(50)이 연예계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부인 서정희(45)였다.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오랜만의 나들이라 긴장을 많이 해 어제 한숨도 못 잤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하며 지냈어요. 아시다시피 남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요. 저도 자궁근종 때문에 수술을 받았어요. 1년 정도 됐는데 지금은 살도 찌고 건강해졌어요. 사실 그동안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제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다 두 번 쓰러졌는데 어지럽고 구토와 식은땀이 나서 계단을 오를 수조차 없었죠. 처음에는 믿음으로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도했는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결국 자궁을 완전히 들어냈어요.”
1년 전 자궁 들어내는 큰 수술 받아
그는 지난해 4월 수술을 받느라 서울대학병원에 열흘 동안 입원했는데 당시 서세원은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내내 병실을 지켰다고 한다. 비록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는 그는 “건강을 위해 내 몸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그동안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보다 근거 없이 나도는 악성 루머였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지냈어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이혼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더니 나중에는 ‘정말 이혼을 해야 되나,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해줘야 하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가정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헤어지는 부부도 많지만 저는 힘들 때일수록 가족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남편에게 많이 맞는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오히려 제가 아침에 남편을 깨우면서 때려요. 나이 들면서 저는 더 강해진 반면 남편은 많이 약해졌거든요.”
그동안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 때는 연예계 비리 사건이 터지고 혼자 한국에 남아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는 “남편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입장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때여서 집에 들어와 살림을 둘러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다”면서 “이러려고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그동안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현모양처인 척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살림살이를 다 부수고 싶을 만큼 나 자신이 미웠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남편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일은 그르쳤어도 남편은 가정을 잘 지켰던 사람이고, 아이들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자라주었으니까요. 많은 축복을 누리고 살면서도 그 감사함을 잊고 산 건 아닌가 싶었어요.”
지난 2003년 3월, 미국에 남편을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서세원은 그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내를 떠나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웠는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그의 가방에 편지를 넣어주고 갔다는 것. 남편으로부터 20여 년 만에 받은 편지에는 그를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흠뻑 배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비행기가 이륙해서 한국 땅에 착륙할 때까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서정희는 큰일을 겪으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꼭 남편을 되찾은 느낌이었어요. 요즘도 마음이 불편할 때는 편지를 읽어요. 그러면 모든 게 고마워지고 감사해져요. 예전에는 좋지 않은 얘기를 들으면 저 혼자 막 울다가 분에 못 이겨 끙끙 앓았는데 요즘은 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요. 저를 미워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기도하고요.”
그는 그동안 자기반성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도 내조를 잘한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남편 일에 대해 방관한 적이 많았다는 것.
“남편이 저와 함께 새벽기도에만 나가면 밖에서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저는 새벽 4시에 눈떠 밤 9시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해왔어요. 울면서 심각하게 남편과 싸우다가도 밤 9시만 되면 잠을 자야 했어요. 남편이 저와 의논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텐데 귀 기울여주지 못했죠. 25년을 함께하는 동안 남편이 저한테 맞춰주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저 또한 남편에게 맞춰주지 않은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는 지난 2003년 말, 서세원이 구치소에 있던 한 달 동안 남편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위해 일부러 맨바닥에서 자면서 ‘남편은 얼마나 불편할까. 남편 잘못도 있지만 내 탓도 크다. 그동안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으니 이제는 욕심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지’ 하고 반성했다고 한다. 또 남편이 나오면 뭐든 다 해주고 싶어 계획표도 짜두었다고.
“처음에는 1번 머리 잘라주기, 2번 손톱 깎아주기 하고 번호까지 매겨두었는데 그대로 실천하지는 않았어요. 남편의 동의 없이 또 제 방식대로만 하려는 것 같아서요. 지금 남편이 머리가 하얗거든요. 그전 같으면 당장 염색을 해줬을 텐데 지금은 그게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여요. 남편 나이도 이제 오십이 넘었는데 남은 시간은 편하게 해줘야죠(웃음).”
그는 한국에 혼자 남아 있을 때나 서세원이 구치소에 있을 때 서세원의 형이 큰 의지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친정식구들이 미국에 있어 시집식구들과 가족처럼 지내왔다는 그는 “시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동안 힘들 때마다 아주버님과 의논해왔고 면회도 함께 다녔다”고 밝혔다.
“남편이 구속된 후 많이 울었어요. 면회 가면 남편이 굉장히 심하게 저를 대했거든요.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속상해서 계속 눈물이 났어요. 남편 때문에 울고, 힘들어서 울고요. 그때마다 아주버님이 많이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워주셨어요.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 힘내라고요. 근데 남편은 나오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동 준비 됐냐’고 하더군요. 남편은 뭐든 뒤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인데 저한테는 그게 축복인 것 같아요(웃음).”
큰일 겪은 후 “고맙다”는 표현 자주하는 남편
큰일을 겪은 후 남편 서세원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불 같던 성격도 누그러지고 아내를 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새벽기도에 함께 나가는 것이라고.
“남편이 예전에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아내의 소중함을 느꼈대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집안일을 꼼꼼히 하지 않아도, 밥하기 싫으니 외식하자고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줘요. 사실 몸이 좋지 않아서 살림을 손에서 많이 놓았거든요. 이제는 살림 잘한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도망가고 싶어요(웃음).”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그는 전과 달라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더 잘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행동은 반대로 나간다고 한다. 예전에는 잠을 깨울 때도 남편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는데 지금은 협박도 하고 고함도 지른다고. 또 남편과 대화를 할 때도 고분고분 듣지 않고 큰 소리를 친다고 한다.
“나이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자는 온순해지고 여자는 대담해진다고 하는데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아요. 남편은 전과 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저는 행동도 과격해지고 목소리도 커졌어요. 결혼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아이들도 다 커서 그런지 배짱이 생겼죠. 힘들다고 헤어지는 사람도 많은데 지금껏 가정을 잘 지켰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 대견한 생각도 들고요. 남편한테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아니면 누가 지켜’ 하고 잘난 척해요(웃음).”
그는 지난 3년 동안 거의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하루빨리 잊혀지기를 바랐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방송출연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대중이 원하지 않는 연예인은 연예인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인데 남편의 처지가 그랬으니까요. 아예 이민을 갈까도 생각했어요. 제 얼굴이 많이 알려진 탓에 어디를 가든 눈총을 받다 보니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기회 되면 정식으로 공부한 후 인테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싶어
그는 지난해 말 문 연 경기도 송탄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직접 꾸며 화제를 모았다. 워낙 집안 꾸미기를 좋아해 잡지와 방송을 통해 남다른 인테리어 실력을 종종 선보였던 그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꾸준히 인테리어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전문가도 아닌 자신을 믿고 맡겨주는 게 고마워 해마다 두어 차례씩은 지인들의 집을 꾸며주었다는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건설회사에서 모델하우스 인테리어는 물론 아파트 설계까지 맡아달라고 제의해 처음에는 굉장히 두렵고 떨렸다”고 말했다.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고 덕분에 가계에도 많은 보탬이 됐어요. 그동안 제 스타일대로만 해왔기 때문에 처음엔 다른 주부들이 어떤 취향을 좋아할지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제가 가진 노하우들을 모두 동원해 최대한 실용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들도록 꾸몄어요. 그 안에 진열한 소품들도 따로 구입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놓았죠. 다행히 주부들이 살던 집 같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한 달 넘게 그가 모델하우스를 꾸미는 동안 남편 서세원은 매일 경기도 송탄까지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동행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은 오가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번은 남편이 그에게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나 때문에 그동안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을 집에 있다 보니 이제는 밖에서 활동할 자신이 없다”며 “집과 교회, 시장, 목욕탕 등 생활 근거지에서 벗어나면 힘들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제 단점 중 하나가 열등감이에요.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매사 저를 누르며 살아왔죠. 어떤 일이 주어질 때마다 하긴 하면서도 혼자 많이 울었어요. ‘나는 잘할 수 없는데 왜 이걸 시키셨냐’고 기도하면서요. 모델하우스를 꾸미면서도 자신감을 얻으려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좀 더 당당해지고 싶지만 솔직히 지금은 전문가처럼 일할 자신이 없어요. 앞으로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다른 전문가들처럼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나서 시작하고 싶고요.”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서세원은 지난해 자신이 제작과 총감독을 맡은 영화 ‘도마 안중근’을 개봉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서정희는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각오했던 일”이라면서 “오히려 어려움을 겪다 보니 필요 없는 카드도 정리하게 되고, 절약하는 습관도 생겼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예쁜 꽃이 있으면 꼭 샀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전처럼 집안도 잘 꾸미지 않고요. 가구 배치도, 분위기도 예전 그대로예요. 지금 갖고 있는 것들도 좀 팔고 싶어요. 집을 융자로 얻었는데 아껴야죠. 그래도 조바심은 내지 않아요. ‘어디 가면 우리 식구 누울 데 없을까’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요. 기회가 되면 일할 수 있고, 또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적응하면 되니까요.”
서세원이 ‘도마 안중근’을 제작하게 된 데는 그의 영향이 컸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지만 그는 “어차피 많은 걸 잃었는데 더 잃을 게 뭐 있느냐, 믿음 생활을 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다고.
“남편이 ‘망해도 책임지겠느냐’고 해서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잃은 것도 많지만 저희 가족에게 해가 된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배운 게 많죠. 안중근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의 새로운 면도 보게 되고 애국심도 새록새록 생겨나더라고요. 아이들이 처음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태극기를 싸서 보내고 기숙사에도 붙여놓을 정도로 애국심이 있었는데 한두 해 지나면서 잊고 살았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새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 남편에게도 ‘좋은 영화를 만든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었어요. 남편은 요즘도 여러 가지 일로 바쁜데, 다 ‘나라 사랑’에 관련된 일이죠(웃음).”
비뚤어지지 않고 힘든 시기 잘 견뎌준 두 아이
그 사이 훌쩍 자란 두 아이는 올해 나란히 세계적인 명문대에 진학했다. 미국 웨슬리대에 다니던 큰딸 동주양은 MIT대 수학과 3학년에 편입했고, 작은아들 동천군은 일본 와세다대에 입학한 것. 그동안 다른 엄마들한테 극성스럽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실제로는 별로 해준 게 없다는 그는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보다 “쉬어라” “교회 가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오히려 엄마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했을 정도라고.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었어요. 다행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잘해주었고요. 둘 다 사춘기였는데도 비뚤어지지 않고 부모를 생각해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저희에게는 굉장히 큰 선물이었죠. 동주가 남편이 힘들 때 전화해서 ‘아빠 선물이야’ 하고 MIT대 편입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알렸거든요.”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랑하고 싶었지만 괜한 구설수에 오를까봐 이 사실을 숨겨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과 관련해 “기부금 내고 들어갔다” “학장과 관계가 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아 마음고생을 했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런 학교는 기부금도 엄청나서 우리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내요. 학장은커녕 학교도 한번 밖에 구경을 못했고요. 아이들이 그 학교에 다닌다, 안 다닌다를 놓고 얼마나 많은 얘기가 인터넷에 올려져있던지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미어졌어요.”
그는 “부모가 알려진 사람들인데다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아이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한국의 좋은 학교를 놔두고 굳이 외국에서 공부하는 이유도 한국에서는 여러모로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세원 부인 서정희 3년 만에 프라이버시 인터뷰

동주양과 동천군은 그에게 더없이 기특하고 든든한 존재다. 지난 4월1일 서세원과 함께 동천군의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와세다대학을 찾은 그는 어느새 아빠보다 더 큰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아들을 보고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동천군은 그런 그에게 “여태까지 잘 키워줘서 고맙고 앞으로 훌륭한 아들이 돼서 엄마 기쁘게 해줄게”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힘들 때는 아들한테 의지해요. 남편 일로 힘들 때도 아들한테 기대는 마음이 컸어요. 딸한테는 속상할 때마다 전화해서 울고불고하죠. 제가 짜증내고 소리 질러도 동주가 다 받아주거든요. 끊고 나서 5분 있으면 ‘엄마 풀렸어’ 하고 전화가 와요.”
동주양은 그런 엄마에 대해 “언뜻 깐깐하고 새침데기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실제로는 아이처럼 상처도 잘 받고 눈물도 많은 여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화를 내도 그때뿐인 엄마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엄마가 화를 내면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들어준다고.
지난 3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가족이 있어 웃음을 되찾고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는 서정희.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 더욱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우리 가족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여성동아 2005년 5월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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