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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스타의 소중한 마음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살아생전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에 더 사무쳐요”

■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3.02 17:50:00

지난 2월 초 KBS 문화지대 ‘낭독의 발견’에 출연한 개그맨 이홍렬이 30년 전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낭송하며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제는 장성한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넘은 그에게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들어 보았다.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재치있고 편안한 입담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52)이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지난 2월초 방영된 KBS 문화지대 ‘낭독의 발견’에 출연해 30년 동안 보관해온 어머니의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린 것. 30년이 지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편지를 보관하고 있는 그는 편지 낭독 후 “어머니를 통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서빙고동 자택에서 만난 이홍렬은 서재에 고이 모셔둔 여러 권의 앨범과 편지를 펼쳐 보이며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그리 많지 않아요. 군대 제대하고 5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 같이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효도가 별거 아닌 것 같아요. 부모님과 대화도 많이 하고 재롱을 피우는 게 최고의 효도죠.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더니 저 역시 아이들이 커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더욱 커지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어머니, 노인대학 보내드리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누런 종이에 삐뚤삐뚤한 글자들이 춤을 추는 6장의 편지에는 군대 간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편지는 항상 ‘보고 싶은 아들 홍렬아’로 시작해 ‘알아보기도 힘든 편지 쓰느라 힘만 많이 든다’라고 끝을 맺는다. 철자법이 틀려 행여 아들이 자신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셨던 것 같다.
“군대 화장실에서 어머니 편지를 보며 울기도 많이 했어요. 어머니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셨어요. 글자를 모르는 게 평생 한이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노인대학에 꼭 가고 싶어 하셨는데 그 소원을 끝내 들어드리지 못한 게 가장 마음이 아파요.”
편지 다음으로 그가 꺼내놓은 것은 어머니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는 재단용 자. 어머니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눈금이 그려져 있는 긴 자에는 평생 삯바느질하며 살림을 꾸려가신 어머니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깨너머로 배우신 바느질로 저희 삼남매를 다 키워 내셨어요. 지금도 어머니가 발재봉틀 앞에서 한복을 짓던 모습, 인두를 든 채로 꾸벅꾸벅 조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요. 아버지는 산소용접공이셨는데 일을 잘 안 하셨기 때문에 생활이 무척 어려웠죠. 결국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시작하셨고 평생 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셨어요. 하루는 독에 있는 쌀이 다 떨어져, 어머니가 몇 개 안 되는 폐물을 모아 아버지에게 팔아오라고 시키셨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저녁 늦게까지 폐물을 하나도 팔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셨죠. 어머니가 너무 속상해하시며 ‘엉엉’ 우셨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언젠가 하루는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에 단단히 화가 나신 어머니가 삼남매를 이끌고 집을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사진 속에 아버지만 없는 이유는 그때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이홍렬은 삯바느질로 삼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가 발재봉틀 앞에서 한복을 짓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이 되길 희망했던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회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이러다가 꿈을 포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어 매번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연예인이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느껴지던 시대였기에 그의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다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방황하는 아들의 모습을 늘 안타깝게 여기시던 어머니는 그가 군대에 있을 때 자궁암 판정을 받으셨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야 어머니의 병환을 알게 된 그는 집에 온 첫날, 온몸에 종양이 퍼져 걷는 것조차 힘든 어머니가 그의 방까지 기어와 속옷을 직접 건네주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군대 제대 후 드디어 노래모임에서 개그를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 비록 방송에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어머니도 많이 좋아하셨죠.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 옆에 앉아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해 드렸어요.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랑 얘기하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흐뭇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으시다가도 갑자기 통증이 밀려오면 애써 태연한 척하시고는 ‘약을 먹고 다시 얘기하자’고 말씀하셨죠. 병세가 심할 때는 병원에서 혈액주사를 맞으면서도 계속 하혈을 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셨어요.”
개그맨 활동 모습 보지도 못한 채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79년 1월1일,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계셨고,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기라도 한 듯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을 멈추셨다고 한다. 임종을 맞고 누군가가 어머니의 얼굴을 덮으려고 하자 그는 “아직 가슴이 이렇게 따뜻한데 돌아가신 게 말이 되냐”며 덮던 광목을 힘껏 제치고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자식들 효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쉰한 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죠. 잠깐 울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의 한 시간이 지나 있더군요.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제 인생에 있어 짧지만 가장 소중했던 시간들인 것 같아요. 지금 살아 계신다면 해드릴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그렇게 빨리 가셨는지….”
어머니를 공동묘지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어머니의 방을 보자 그는 힘겹게 참고 있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 방송에서도 어머니의 편지를 읽은 뒤 몽테뉴의 ‘수상록’ 중 ‘죽음에 관한 명상’을 낭독한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이 들면서 깨닫고 있어요. 누구나 맞아야 할 죽음이라면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겠죠. 저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요. ‘오늘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생각하고 효도하면 나중에 후회가 조금 줄어들 수 있을 거예요.”
슬픔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확히 1년이 지난 뒤 그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세수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시다가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지신 것. 어머니가 떠나신 뒤 아버지를 더욱 원망했다는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또 한번 넋이 나갔다고 한다. 아버지는 쓰러지신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고, 모두들 이를 두고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어머님이 모셔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아버지는 어머니의 묘소 바로 뒤에 안치되어 계신다고.
“거울을 보면 어느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가 있어요. 젊었을 땐 몰랐는데 나이 들고 주름이 생기면서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어머니를 평생 고생하게 만든 분이 아버지라는 생각 때문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막상 돌아가시니 장기도 몇 번 둬 드리지 못한 게 또 한이 되더군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석에 계셨을 때, 뒤늦게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열심히 간호도 하시고 일도 많이 다니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떠나보낸 뒤에야 TV에 출연하며 정식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하루도 어제보다 못한 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하늘나라에서 언제나 자식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가끔씩 꿈속에서 어머니를 뵙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아요. 언젠가는 어머니께 용돈 20만원을 드리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깨어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바보같이 왜 20만원만 드렸는지, 전 재산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데 말이죠. 꿈인데도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평생 호강 한번 못 시켜드린 어머니께 죄송스러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이홍렬이 마지막으로 꺼내놓은 어머니의 유품은 어머니의 육성이 녹음된 CD 한 장.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계실 때 어머니 몰래 녹음한 것인데, 1년 전 잡음을 없애고 깨끗한 음성만 들리도록 새로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방랑의 길은 먼데 충청도 아줌마가 한사코 길을 막네.”
CD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젊고 고우셨다. 1시간 정도 분량의 CD에는 어머니가 부른 노래 ‘충청도 아줌마’를 비롯해 ‘정숙(그의 여동생)이의 월급이야기’ ‘누나이야기’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걸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 목소리만이라도 남기고 싶었어요. 여름에 녹음한 것이라 원래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무지 크게 들렸는데 잡음을 없앨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CD로 만들었죠.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힘들 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큰 위로가 돼요. 다음에는 어머니의 음성과 사진들을 한데 모아 DVD로 작업할 계획이에요. 완성되면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누나와 여동생에게도 한 장씩 나눠 줘야죠.”
30년 전 어머니의 편지 낭송,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이홍렬이 말하는‘나의 어머니’

그는 지난 98년 동료 연예인 표인봉, 이경실, 김장훈, 클론 등이 함께 참여한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어머니’라는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노랫말 중 ‘하루만 날 위해 머물러 줘요. 단 한 번만 기회를 줘요’라고 표현한 그는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은 어느 자식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보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우리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는 내용이 나와요.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인 것 같아요.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잘해드릴 자신이 있거든요.”
2년 전 ‘연예인 화장 서약’에 동참해 가족 납골당을 분양받은 그는 자신이 예순 되는 해에 먼저 부모님을 납골당으로 옮겨 모실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고2인 큰아들 재혁과 중3인 둘째 아들 재준이 자신이 죽은 뒤에는 부모님의 묘소를 돌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동아 2005년 3월 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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