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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작지만 강한 배우

영화 ‘하류인생’에서 격동의 시대 살아가는 풍운아 연기한 조승우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06.04 16:41:00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영화배우 조승우.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밟은 후 지난 5년 동안 영화와 연극 무대를 고집하며 연기력을 다져온 그가 임권택 감독과 다시 손을 잡았다. 그동안 보여줬던 여린 소년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교활하고 거친 하류인생으로 변신한 조승우를 만났다.
영화 ‘하류인생’에서 격동의 시대 살아가는 풍운아 연기한 조승우

‘1957년 서울’이라는 자막이 사라지자 스크린에 단추를 풀어헤친 교복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우당탕탕’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한 남학생이 등장한다. “나, 동일고 쌕쌕인데, 여기 떡대가 누구냐?” 하고 내뱉는 불량기 가득한 말투가 아니더라도 모자챙 아래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오기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화배우 조승우(24). 99년 ‘춘향뎐’의 주인공 ‘이도령’으로 전격 발탁된 뒤 ‘와니와 준하’ ‘후아유’에 이어 ‘클래식’까지 감수성 짙은 연기로 많은 영화팬들의 가슴을 적셨던 그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풍운아로 변신했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에서 조승우는 동시대의 4·19, 5·16 등의 역사적인 흐름에는 무관심한 채, 폼 나게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말보다 주먹을 앞세우고, 때로는 교활하게 권력에 빌붙는 ‘태웅’을 연기했다.
“혼란스럽고 아픈 시대에 권력을 이용하고, 또 이용당하면서 앞만 보고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그러다 타락하고, 정서가 황폐해지는 모습을 그렸죠. 지난 6개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공부도 많이 됐어요. 20대 젊은 스태프부터 70대 감독님까지 모두가 한땀 한땀 소중하게 작업했거든요.”
‘하류인생’에서 조승우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순무식과격’의 전형을 보여준다. 친구의 복수를 하러 다른 남학교에 갔다가 칼에 찔리자, 허벅지에 칼을 꽂은 채로 기어이 범인의 집까지 찾아가 칼을 뽑으라며 오기를 부리고,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느라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 스케줄을 펑크낸 여배우에게 찾아가 “가랑이를 찢어버리겠다”며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내뱉는 모습에선 목표물이 정해지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 물어뜯는 사냥개 기질이 다분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선하고 부드러운 눈웃음이야말로 연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
“실제 성격은 영화 속 태웅과 전혀 달라요. 전 그렇게 거칠지도 않고 욕을 할 줄도 모르거든요. 전 부드러운 남자예요(웃음). 영화 중간중간에 감독님께서 ‘독기가 흘러나와야 한다’는 주문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독기라는 게 인상이 험악하다고 느껴지는 건 아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살기가 흐르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시대를 산 태웅이란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조승우는 임권택 감독과 제작자인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정일성 촬영감독 등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 의지했다고 한다.
순수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벗고 거친 액션, 베드신에 도전
임권택 감독은 노익장을 과시하듯 ‘하류인생’에 ‘장군의 아들’보다도 훨씬 거칠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담았다. 순간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맞은 만큼 때리고 도망가 몸을 숨기는 ‘하류인생’의 액션은 작정하고 한판 붙는 ‘장군의 아들’의 정교한 액션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조승우의 액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사실 임권택 감독이 ‘하류인생’의 주인공으로 조승우를 택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당시 일각에선 연약한 이미지의 조승우가 거친 연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졌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이 선택한 조승우가 액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춘향뎐’을 찍으면서 이 친구가 다방면에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연기자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 ‘클래식’을 보면서 그만한 연기를 할 정도면 이번 역할도 문제없을 거라 더욱 확신했죠. 그렇긴 해도 걱정을 전혀 안 했던 건 아닌데 아주 만족스럽게 해냈어요. 다시 한번 전천후 연기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화 ‘하류인생’에서 격동의 시대 살아가는 풍운아 연기한 조승우

조승우는 김민선과 함께 부부 연기를 펼쳤다.


영화촬영 초반, 임권택 감독은 액션 연기 경험이 없는 조승우 대신 대역을 써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번씩 재촬영을 해도 기대에 못 미쳐 고민하고 있었는데 조승우가 직접 해보겠다고 나섰다고. 임감독은 “본인이 해보겠다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아니 저렇게 잘할 것을 왜 그동안 잠자코 있었나’ 괘씸한 생각마저 들 정도로 잘 해냈다”며 ‘허허’ 웃었다.
평생 주먹다짐을 해보지 않았지만 조승우는 일찍이 ‘카르멘’ ‘지하철 1호선’ ‘의형제’ 등의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과격한(?) 안무를 배웠는데 그 뮤지컬 안무가 액션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승우가 화려한 액션 연기자로 변신한 건 아니다. 영화가 한 남자의 20여 년 세월을 그려 조승우는 고등학생에서부터 건달 영화제작자 군납업자 건설업자 등으로 변모하는 중년의 남성을 연기해야 했다. 20대 중반에 불과한 조승우는 두 아이를 거느린 아버지에 어울리는 풍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먹으며 살을 7kg이나 찌웠다고 한다.
이번 영화에서 조승우는 극중 아내 역을 맡은 김민선과 함께 다소 거친 베드신을 선보이기도 했다.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의 뺨을 때리며 강제로 옷을 벗기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상대 배우를 때려야 하고, 노출도 있어 긴장이 많이 됐어요. 그래도 김민선씨가 잘 리드해줘 수월하게 넘어갔어요. ‘춘향뎐’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감독님이 워낙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말이죠(웃음).”
이번 영화엔 조승우의 벌거벗은 뒷모습도 나온다. 군납업자로 활동하던 중 경쟁사 직원을 모텔에 감금하는데, 그가 목욕하는 동안 달아나는 바람에 머리에 비누거품을 잔뜩 묻힌 채로 뛰어나가는 장면이다. 조승우는 노출 연기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한 스포츠 신문에서 ‘조승우 김민선 벗었다’ 하고 기사가 실린 걸 봤다”며 웃었다.
“사실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제 영화들을 자세히 보면 그 정도 노출 장면은 다 있거든요(웃음). 다만 그 장면을 찍은 날이 크리스마스여서 연말에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뭐했냐?’ 하고 물으면 ‘홀딱 벗고 모텔에서 뛰어다녔다’고 말했죠(웃음).”
조승우는 중학교 시절, 누나가 뮤지컬 무대에 선 모습을 보고 연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그의 누나 조서연씨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출연하는 등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조승우의 아버지는 70년대 ‘행복이란’ ‘돌려줄 수 없나요’ 등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조경수. 아버지의 피가 두 남매에게 그대로 전해진 듯하다.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뮤지컬 무대에 설 때 행복을 느낀다는 조승우는 앞으로도 영화와 뮤지컬을 병행하고 싶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6월 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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