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민사합의 18부는 지난해 11월26일 롯데호텔 여성 노조원 40명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회사측과 임직원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 19명에게 각각 1백만∼3백만원씩 모두 2천7백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원고 21명에 대해서는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회사의 성희롱 예방 의무와 함께 사고발생 책임까지 인정한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가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이는 야유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상생활에서 용인되는 범주를 넘어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할 정도의 행동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절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사용자의 고용계약상 직원의 보호 의무를 근무시간은 물론 야유회, 송년회 등 공식 행사까지 확대하고 부서의 책임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았다면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으로 재판부의 성희롱 근절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어 판결문에서 “성희롱 위험이 상존하는 피고회사(롯데호텔은 여성 근로자가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관리직의 대부분이 남자인데 반해 여성들은 대다수 4, 5급이나 계약직 직원이다. 즉 소수의 남자직원들이 다수의 나이 어린 여자직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성희롱의 위험이 다른 회사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는 단순히 성희롱 예방교육을 정례적으로 실시한 것만으로 고용계약상 보호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으며 덧붙여 회사의 정례적인 성희롱 예방교육이 직장내 성희롱의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음을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회사 임원이 회식자리에서 여직원을 성추행한 경우 그 자리에 동석한 다른 여직원이 느끼는 성적 수치심도 간접 성희롱 피해로 인정, 여성의 인권보호에 대한 한층 진일보한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비공식적 회식 등 직무상 관련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 가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한편 남자직원이 성희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언행을 했더라도 무의식중에 한 것이거나 성적인 의도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00년 7월. 여직원 3백27명이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면서부터다. 조사를 담당한 서울지방노동청은 롯데호텔측에 가해자에 대한 시정조치를 통보해 징계하도록 했고, 롯데호텔은 그 해 12월 노동부가 성희롱 가해자로 통보한 임직원 32명 중 21명을 징계했다.
그리고 진정서를 낸 여직원 중 2백70명은 같은 해 8월 “회사 상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며 회사측을 상대로 17억6천만원의 소송을 냈다. 이중 2백30명이 재판 과정에서 소를 취하했고 법원은 이번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통해 청구한 손해배상액 중 3천만원만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원고들의 소송대리인 강문대 변호사는 “일부나마 성희롱에 대한 회사 책임을 인정하고 간접적인 성희롱에까지 책임을 물은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회사 책임을 너무 좁게 해석했고 배상액도 턱없이 적다”고 주장했다.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 법원 판결문을 보면 ▶성희롱에 대한 회사 책임을 모두 인정한 사례 ▶회사의 책임만 인정한 사례 ▶개인의 책임만 인정한 사례 ▶행위 자체를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 등 네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과 회사 책임 모두 인정한 사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사원 A씨(30)와 상사 B씨(41). 99년 10월경 근무를 마친 두 사람은 B씨의 제의에 따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밤 11시경 회사 근처의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A씨를 B씨가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고 억지로 키스를 한 것. 저항하는 과정에서 A씨는 입술 안쪽에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고, 다음날 회사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같이 근무할 수 없고, B씨가 그만두든지 내가 그만두든지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며 항의했다. 그러자 B씨는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며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문제는 얼마 있다가 일어났다. 오히려 피해자인 A씨에게 사건의 불통이 튄 것이다. 그날 노래방에서의 사건을 알게 된 같은 부서의 또 다른 상사가 A씨를 다른 부서로 보직이동한 것이다.
-법원은 직원들을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B씨가 이를 이용해 A씨에게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행동을 했다고 인정했다. 또 회사측 역시 성희롱 행위가 확인된 이후에도 가해자를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인정됐다. 법원이 B씨와 회사측에 위자료로 지급하도록 판결한 금액은 3백만원이다.
▶99년 10월. 회식자리인 고깃집에서 남녀가 섞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인 간부 C씨(38)가 옆 자리에 앉은 사원 D씨(27)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끌어안고 ‘가슴이 크다’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또 C씨는 D씨와 블루스를 추면서 D씨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자기 쪽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이 광경을 본 사원 E씨는 이런 회식문화가 부담스러웠고 동료가 술집 접대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같은 여자 입장에서 애처롭게 느껴졌다.
-간접 성희롱도 성희롱으로 인정한 사례. 법원은 C씨의 언동을 ‘사회의 풍속이나 질서에 반하는 위법행위’로 성희롱으로 인정하고, 이는 직접 피해자인 D씨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E씨도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했음을 인정, E씨가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1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해당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회사측의 책임도 있음을 인정한 것.
회사 책임만 인정한 사례
▶2000년 6월. 간부 F씨(40)가 관리하는 롯데호텔 한 사업부문의 직원 5백명은 이틀에 걸쳐 야유회를 갔다. 각종 게임과 장기자랑 등으로 이루어진 야유회의 주제는 ‘퇴폐와 천박’. 유치하고 야하게 노는 팀에게 상품을 몰아주기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야유회의 내용도 주제에 맞춰 진행됐다. 사회를 보던 남자직원은 다리 사이에 그물을 끼고 뱀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었고, 게임에 참여하는 직원을 부를 때도 ‘XX! XX 나오세요’ ‘00들 나오세요’와 같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호칭을 사용했다. 심지어 장기자랑에 나선 조들의 이름도 행사의 분위기에 따라 ‘막 주는 X년들’ ‘다찌(일본인 남자가 국내에 현지처나 콜걸을 두는 것을 이르는 속어)’ 등으로 정해졌다. 장기자랑의 내용 역시 여장 남자가 파트너인 남자의 허리에 매달려 몸을 상하로 흔들고, 춤을 추던 남자직원이 소시지를 지퍼 쪽에 놓으면 여장 남자가 그것을 먹는 등 시종일관 남녀간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것들이었다. 당시 야유회의 참가자들은 대다수가 여직원이었는데 그중 일부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참석했다고 한다.
-법원은 이 야유회 행사가 장기자랑을 진행한 남자직원에 의해 준비됐고 조 이름이나 행사 내용은 해당 조원들이 결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간부 F씨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만 회사의 지원을 받는 공식적인 행사인 야유회의 행사 내용이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성희롱과 다름없었고, 이를 회사가 알았다고 볼 수 있어 회사측에는 배상 책임을 물어 소송을 청구한 3명에게 각각 1백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99년 12월 이태원의 단란주점에서 간부 G씨(40)가 주재하는 부서 망년회가 열렸다. 부서원이 많았기 때문에 미리 남녀를 섞어 조를 편성해 자리를 정했는데 그 조 이름들이 ‘젓탱이조’ ‘궁둥짝조’ ‘변강쇠조’ ‘섰다조’ ‘솟아라조’ 등 성적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망년회를 진행한 남자직원은 진하게 화장한 얼굴에 풍선을 붙여 가슴을 부풀리고 짧은 여성용 슬립을 입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어진 행사 역시 남녀가 몸을 밀착해 손을 사용하지 않고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 남녀가 짝을 이뤄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추기, 채찍 휘두르기 등 주로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간부 G씨는 이러한 장기자랑의 심사위원으로 가장 노골적인 팀에게 50만원 상당의 상품을 수여하기도 했다.
-법원은 망년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이 간부 G씨가 기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개인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만 야유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사에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한 직원에게 회사측이 1백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해당 행위가 ‘성희롱의 동기나 의도가 없어’ 가해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으나, 회사 지원을 받는 공식적인 행사의 내용이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성희롱과 다름없었고 이를 회사에서 알았다고 볼 수 있어 고용계약상 직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 회사측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
▶98년 5월경. 임신 6개월째 접어든 I씨(30)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새로 부임한 중간관리 K씨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대뜸 H씨(41)가 “임신하더니 가슴이 빵빵해졌네. 이리와 봐”라며 I씨를 끌어당긴 것이다. 놀란 I씨가 저항하자 막무가내로 잡아당기며 I씨의 가슴을 만졌는데, H씨는 평소에도 다른 여직원의 스커트를 들추거나 옷 위로 음부를 만지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법원은 H씨의 언동을 ‘사회의 풍속이나 질서에 반하는 위법행위’로 성희롱으로 인정하고 I씨가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2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98년 가을 무렵 사무실에 핸드백을 보관하러 들어간 J씨(30). 마침 사무실에는 간부 K씨(51)가 혼자 앉아 있었다. K씨는 J씨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더니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듯 만지고 잡아 비틀었다. 놀란 J씨가 몸을 빼려고 하자 K씨는 손목을 잡고 “아이구 이년, 나이는 꽤 들었는데 젖은 아직 쓸 만하네”라고 말했다는 것. 또 양주 판촉을 하던 99년 4월에는 “야! 이년아 너 양주 몇병 팔았냐”라며 J씨의 유니폼 위로 음부 부분을 만졌다고 한다.
-법원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풍속 또는 사회 질서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 성희롱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K씨는 J씨에게 2백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99년 10월 교육 일지 작성 업무와 관련해 사무실에 단둘이 있게 된 M씨(26)와 상사 N씨(41). 가방에 든 물건을 꺼내려던 M씨를 N씨가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놀란 M씨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지만 N씨는 한참동안 M씨를 힘으로 제압해 끌어안고 있었다. 또 2000년 4월 회식 다음날 회의시간에 N씨는 O씨를 비롯한 남녀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제 남자 새끼들 X대가리 열두번도 더 섰을 거다” “기집애들이 00 갖다대는데 안 설 놈이 어디 있냐” “어제처럼 놀려면 돈 삼사백은 써야 했을 거다”라는 등 마치 여직원을 술집 여종업원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여직원 P씨에게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묻고, 그녀가 스물다섯이라고 대답하자 “00 한참 무르익을 때구먼”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당시는 남녀 직원들이 여럿 모인 미팅 자리였다.
-법원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이 분명하기 때문에 M씨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1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해당 행위가 성적인 동기와 의도 등이 있어 성희롱으로 인정되지만, 업무와 관계가 없고 개인적으로 은밀히 행해져 회사측에서 알 수 없다고 판단, 회사측의 책임은 없다고 인정한 것.
행위 자체를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
▶상사 Q씨(58)는 사원 R씨(28)에게 ‘단무지’라는 삼행시를 아냐고 물은 후 모른다고 하자 “단단합니다” “무지 큽니다” “지퍼가 터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여직원 S씨(26)를 들먹이면서 만우절로 삼행시를 짓는다고 하더니 “만지지 마세요” “우~” “절벽이거든요”라고 말했다.
-법원은 Q씨가 평소에 비슷한 언행을 했었고 당시의 정황이나 분위기 등에 비추어보면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2000년 상사 T씨(48)는 미팅 자리에서 여직원들이 있는데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쌍방울만 딸랑딸랑 울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라”는 말을 했다. 또 그는 평소 바지 위로 자신의 성기 부분을 자주 만져 여직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했다.
-법원은 T씨가 아르바이트생에게 한 이야기는 성적인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열심히 일하라는 취지의 것이었고, 바지 위로 성기를 만지는 행위 역시 무의식적으로 행한 것이기 때문에 성적 의도가 없다고 판단,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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