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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자이언트’ 스페셜 ③

장영철 작가가 들려준 뒷얘기

“맞서 싸워야 했던 시대, 눈물겨운 3남매의 삶… 그리고 남은 것”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1.18 14:18:00

SBS 드라마 ‘자이언트’가 40.1%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60부 대작을 숨 가쁘게 달려온 장영철 작가에게 ‘자이언트’의 의미, 아내 정경순 작가와의 공동 집필 과정을 들었다.
장영철 작가가 들려준 뒷얘기


드라마를 막 끝내고 탈진해 있을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브라운관을 통해 ‘죽어라’ 했던 이야기를 또 묻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의 드라마는 브라운관 속과 밖 얘기를 모두 알고 싶은 게 시청자의 마음. 그래서 60부 대작 ‘자이언트’를 이끌어온 장영철 작가(43)를 만났다.
약속 장소는 정확히 ‘철산역 2번 출구 앞’이었다. 그의 집이 광명시 철산역 근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는 소속사에서 내준 홍대 부근 작업실에서 집필활동을 해왔는데,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긴 여행에서 돌아오듯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 정경순 작가와 함께.
사실 ‘자이언트’는 장영철 작가와 정경순 작가의 공동 집필로 탄생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2년 드라마 ‘정’에서부터 시작해 2006년 ‘대조영’ 그리고 ‘자이언트’에까지 이어졌다. 극 전체를 아우르는 건 장 작가의 몫이었지만 그는 “분명 아내가 없었다면 이런 좋은 결과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작가에게 지난 1년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고통이 따르지만, 특히 이번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고통의 강도가 더욱 컸다고 한다. 드라마 기획 단계 중 주인공 강모(이범수)를 둘러싸고 특정인을 미화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캐스팅이 무산되기도 했다. 드라마 초반 시청률의 처참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장 작가는 더 이상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되는 현재 심경을 “서운하고 아쉽다”고 표현했다.
“아직도 61회 대본을 써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껴요(웃음). 작품과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서운하죠. 더 이상 연기자들의 연기를 못 본다는 것, 드라마 속 인물들과 헤어져야한다는 것 모두요. 정 작가도 마지막 회 대본을 넘기던 날 많이 서운해했어요. 유인식 감독과 통화할 때는 저도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자이언트’는 1970~80년대 서울 강남 개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그들의 성공담을 그린다. ‘자이언트’라는 제목은 극 중 주인공들이 그랬듯 치열하게 맞서 싸워야 했던 그 시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장 작가는 “처음부터 정치와 경제를 앞세우기보다 3남매 성모·강모·미주의 삶을 통해 어두웠던 시대의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려 했다”고 말한다.

삼청교육대 모르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연결통로 돼준 ‘자이언트’
1970~80년대는 현대사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격변의 시기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이언트’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간극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드라마에 등장한 삼청교육대나 평화의 댐 모금 운동, 중앙정보부 고문은 20대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역사다.
“인터넷 댓글을 보다 보니까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삼청교육대는 어디에 있는 대학이냐’고 물었더라고요(웃음). 또 삼청교육대원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 앞에서 ‘사노라면’을 부르는 장면을 보고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시대극은 분명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드라마는 조금이나마 세대를 잇는 통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주인공 강모가 이룬 ‘착한 건설업’의 성공은 권모술수가 판치는 요즘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렇다면 드라마의 내용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일까. 장 작가는 원고 집필 전 여러 채널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확인한 결과 당시 건설업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취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극 중 만보건설이 수주한 공사에서 토사가 비에 휩쓸려 내려가자 강모가 비싼 토사 대신 연탄재를 모아 건물을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내 성공하는데, 이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는 “드라마는 분명 허구이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장영철 작가가 들려준 뒷얘기

장영철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작은 영웅’이 돼준 이범수의 연기를 극찬했다. 삼청교육대원들이 울며 ‘사노라면’을 열창한 장면은 찡한 감동을 안겨줬다.



“지금의 잠실 아파트가 그렇게 연탄재를 매립해서 세워진 거예요. 정확히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당시 연탄재를 매립하면서 공사 기반을 잘 다졌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해요. 아스팔트에 경화제를 뿌린 것도, 완력에 의해 지하철 노선이 바뀐 것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죠.”
그렇다면 이번 드라마의 무대가 강남인 이유가 궁금했다. 장 작가는 “서울 개발사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이 서울의 ‘노른자위’라 불리는, 힘깨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강남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처음 드라마의 모티프도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자이언트’에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영화는 말 목장을 운영하던 미국 텍사스 벌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석유가 터져나오면서 사람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이 우리나라 강남과 비슷하다는 것. 장 작가는 “강남 땅값 자체가 신분상승의 열쇠처럼 여겨지고 있고, 그것 하나로 천민과 귀족으로 인생이 나눠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절대 선과 절대 악 잘 표현해준 이범수와 정보석에게 고마운 마음
‘자이언트’가 방영 중 ‘월드컵 불방’이라는 복병을 만났음에도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40% 넘는 시청률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데는 연기자들의 호연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조연들의 이름까지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되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주인공 강모와 그가 목숨 걸고 싸운 조필연(정보석)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선과 악으로 등장하고, 이들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극을 이끌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배우들은 장 작가의 의도대로 각자의 인물들을 제대로 표현한 것일까.
“먼저 강모 얘기를 하자면, 아주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분노해서도, 어두워서도 안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범수씨는 그 톤 조절을 완벽하게 해냈어요. 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이강모에게 원하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필연이건 성모(박상민)건, 어찌 됐든 자기 욕망대로 일정 영역을 차지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인데, 강모만큼은 소시민들에게 ‘작은 영웅’이 돼주길 바랐던 거죠. 하늘이 저희 작품에 범수씨를 보내준 거라 생각해요(웃음).”
‘자이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정보석이 연기한 조필연이다. 하지만 처음 조필연 역으로 정보석이 물망에 올랐을 때 일부 제작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선한 이미지가 강하고 특히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어수룩한 ‘사위’역을 끝낸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정보석 카드’는 모험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하지만 장 작가는 처음부터 정보석에 대한 믿음을 보냈다.
“악인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우락부락’한 외모가 아닌 ‘핸섬한 악인’을 그리고 싶었는데, 정보석씨가 거론됐을 때 ‘아, 정보석씨가 있었구나’ 싶었어요. 또 정보석씨 스스로 악역에 대한 갈증이 매우 컸던 때여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죠.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렉터 박사,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 같은 이미지였다고 할까요. 언젠가 한번은 유인식 감독이 편집실에서 나오면서 ‘방금 악마를 보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장영철은 ‘쪽대본’ 없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드라마도 60부작 내내 단 한 번도 다급하게 대본을 넘긴 적이 없다. 전언에 따르면 장 작가는 스타 작가로 이름을 떨치기 전부터 PD들 사이에서 ‘출장 전문 작가’로 불리며 촬영을 코앞에 둔, 하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대본을 깔끔하게 수정해주는 작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만큼 필력을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꿈이 드라마 작가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장 작가는 신춘문예 당선 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 소속돼 시와 희곡을 주로 썼다. 그러던 중 1994년 KBS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데 이어 96년 MBC 드라마 공모전에서 최우수로 입선해 ‘황금빛 정원’이란 작품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그 이후 ‘용띠개띠’ ‘화투’ 등 10여 편이 넘는 단막극을 썼고, 2002년 드라마 ‘정’으로 처음 미니시리즈를 맡았다. 하지만 장 작가는 7년 가까이 단막극과 특집극만 써오며 많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1년에 작품 한두 편 써봤자 수입이 5백만~6백만원밖에 안 되니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다 접고 시골로 내려가 시나 쓰며 살까 고민한 적도 있는데, 그러던 중 미니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아내를 만났고, 이후 비중이 큰 작품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들과 당분간 많은 시간 보낼 계획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괴리감 또한 갈등 요소로 작용했을 법한데, 그는 “순수문학 판이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순수문학과 통속문학 사이에서 갈등한 적도 있지만 되돌아보면 어리석은 고민이었더라는 것. 장 작가는 “좋은 드라마가 대중에게 주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설이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듯 드라마도 방식의 차이일 뿐 작가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작가가 양심과 소신을 갖고 양질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느냐의 문제일 뿐인 거죠. ‘자이언트’는 중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드라마 게시판을 보면 소주 한 병 사들고 와서 본다는 사람도 있고, 술자리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왔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일주일에 딱 두 시간이지만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됐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잊힐망정,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드라마 작가로서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장영철·정경순 부부는 2005년 ‘대조영’을 함께 준비하면서 결혼식을 올렸고, 드라마가 방영되던 중 첫아이를 낳았으며, 드라마가 끝난 뒤 돌잔치를 했다. 그야말로 ‘부부는 일심동체’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한 작업실에서 생활하며 집필의 고통을 함께 나눴는데, 고통의 강도를 묻는 질문에 장 작가는 ‘훗’ 웃음부터 던졌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 저나 아내나 패닉 상태까지 가요(웃음).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고 하니까 모든 걸 소진하게 되거든요. 한 회 대본을 넘기면 다음 날 하루는 집에 가서 거의 쓰러져 있다시피 하죠. 작업은 주로 밤에 하는데 밤을 ‘꼴딱’ 새우면서 글을 써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섯 살 난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경기도 안성에 있는 본가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고 한다. 보통 작업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이를 보러 가지만 그것도 작업 초반의 얘기일 뿐,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면 한 달에 한 번도 아이 얼굴을 보기 어렵다고.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살림하는 평범한 가정과는 차이가 있지만 드라마 작가가 배우자에게 이해받기 힘든 직업군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라는 게 장 작가의 생각이다.

장영철 작가가 들려준 뒷얘기


“솔직히 결혼 전에는 ‘작가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가랑 사니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일적으로 플러스되는 건 물론이고, 작가 특유의 성향을 서로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죠. 밤낮이 바뀐 생활이라든지, 예민한 성격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부분이거든요. 집안일은 서로 안 하니까 문제 삼지 않고요(웃음). 요리는 자취생활 경험이 많은 제가 주로 합니다. 물론 아내도 한번 마음먹고 하면 잘해요(웃음).”
당분간 부부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장 작가는 인터뷰 도중 아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두 번이나 받지 않았다. 기자가 받으라고 하자 그는 “아이와 한번 통화하면 30분은 넘게 얘기해야 해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와 주로 전화로 놀아주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공룡도 되고 괴물도 되면서 1인 다역을 소화해낸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우주로 날아갔다가 칼싸움도 하고, 소리도 지르다 보면 땀이 뻘뻘 날 정도라고. 진지하기만 할 것 같은 ‘대작 작가’가 한 손에 전화기를 들고 ‘번개파워’를 쏘고 있을 걸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여성동아 2011년 1월 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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