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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작가와의 만남

신작 ‘영란’ 펴낸 작가 공선옥

“서로의 슬픔을 돌보고 사랑하면 세상도 아름다워지지 않겠어요”

글·백경선 사진ㆍ현일수 기자

입력 2010.12.17 09:50:00

누구나 하나쯤 가슴 한쪽에 상처를 안고 산다.
공선옥 작가는 신작 ‘영란’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따뜻함이야말로 질긴 생명력의 원천이라 전하는 작가를 만났다.
신작 ‘영란’ 펴낸 작가 공선옥


“안 좋은 사건도 많고 자살도 많은 각박한 세상에 따스한 이야기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써온 그 어떤 소설보다 ‘영란’을 쓰면서 더 따뜻했어요.”
1991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수수밭으로 오세요’,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등을 펴내며 사랑을 받아온 작가 공선옥(47). 그가 최근 새 장편소설 ‘영란’(문학에디션 뿔)을 펴냈다.
겨울에 한층 다가선 지난 11월19일 저녁, 서울 대학로 웅진빌딩 지하카페에서 그의 신작 출간을 기념하는 따뜻한 자리가 마련됐다. ‘독자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참여 신청을 했다는 스무 명 남짓의 독자들이 먼저 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7시20분쯤 그가 도착했고, 본격적으로 독자와의 대화가 진행됐다. 독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살짝살짝 끼어드는 그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영란’은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항구도시 목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슬픔을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읽고 있자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을 지나면 작가의 말처럼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다.
무엇보다 ‘영란’은 상처와 슬픔을 짊어지고 사는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세상 사람들은 자폐아라고 부르지만 더없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아들이 물놀이 중 익사 사고로 죽고, 곧이어 남편까지 차량 전복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나’는 텅 빈 집에서 막걸리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삶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를 운영했던 남편이 인세를 다 치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 선배의 친구이자 작가인 이정섭을 만나게 된다. 외도를 들키는 바람에 이혼을 당하고 아내와 딸이 독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정섭의 삶 역시 피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을 들은 정섭은 나의 황폐하고 위태로운 모습 때문에 혼자 내버려두지 못하고, 장례식장이 있는 목포로 나를 데리고 간다. 상가에서 술을 마시던 중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내가 홀로 찾아 들어간 곳은 ‘영란여관’. 그곳에서 아이와 남편을 뒤따르고자 했다가 되살아난 나에게 여관 주인 할머니는 ‘영란’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란이란 ‘상처 받지 않은 젊은 여자’란 뜻이라고 한다.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 이 같은 이름을 부여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러고 싶었다”고, “그래야 소설을 써나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렇게 주인 할머니가 무심코 붙여준 영란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여관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영란여관에서 식당일을 도우며 새 삶을 시작한다. 한편, 정섭 역시 목포에 관한 책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목포로 다시 내려온다. 이후 소설에서 두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목포를 만나게 된다. 소설은 이들 남녀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시대적 슬픔과 상실감, 소설 속에 녹여내고 싶어

신작 ‘영란’ 펴낸 작가 공선옥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묻자, 공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영란이 살았던 시기를 특정하게 2009년으로 못을 박았지요. 언제든 우리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시기가 없겠지만, 2009년은 사회적으로 볼 때 두 전직 대통령의 연이은 죽음이라는 큰 슬픔이 있었지요. 그 시대적 슬픔과 상실감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싶었어요.”
그는 문득,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에서 잠수부 주인공이 하는 대사를 소개했다. “세상으로 올라갈 때 그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의 마음을 아느냐”는. 영란과 같이 명백한 슬픔이든 그리고 정섭과 같이 자신이 어찌 해볼 수 없는 슬픔이든, 이 시대를 살면서 슬픔을 안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를 살려낸다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쓰면서 새삼스레 느꼈어요. 그래서 추우면서도 따뜻했지요.”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문학 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목포에서 영란을 살려냈다. 영란은 자신처럼 슬픔을 안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상처 받은 가슴을 다독이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장미꽃이 그득한 서울의 ‘아무도 없는 집’과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목포의 ‘영란여관’의 대비를 통해 그는 ‘더불어’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요새는 사람들이 혼자 울잖아요. 여럿이 있을 때는 웃기만 하지요. 여럿이 함께 울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다독였으면 좋겠어요. 내 속의 슬픔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의 눈이 깊어져서 다른 사람의 슬픔도 볼 수 있게 되죠. 슬픔의 고리를 끊지 말고 연결해놓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슬픔을 돌보고 사랑하면 세상도 아름다워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왜 ‘목포’일까. 많은 독자들이 영란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목포를 설정한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그는 소설 속의 목포가 굳이 현실 세계의 목포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목포가 아니고, 그곳이 부산이거나 인천이거나 강릉이거나 군산이거나, 그 어느 곳이라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나락까지 떨어진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바닷가 항구도시면 그만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목포로 설정한 이유는, “목포 하면 어쩐지 서럽고도 따뜻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삶이 피폐해져서 뻘바탕(개펄)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기댈 곳은 목포처럼 후미지고 낙후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목포가 잘나가고 발전한 도시였다면, 이 소설의 배경을 목포로 정하지는 않았겠죠. 조명 받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 새로움을 찾고 싶었어요.”
‘영란’에는 시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는 그가 직접 쓴 것도 있고, 유달산 어딘가에서 주워온 것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벚꽃같이 짧은 1년/ 눈을 뜨면 1년이 지나네/ 내 어찌할 바 모른다네/ 모두에 미안한 마음이 괜히 든다고/ 봄에 피는 벚꽃 같은 한 해여”라는 시는 그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직접 쓴 거라 한다.



“아들 몰래 가져다 썼지요. 아들이 알면 저작권 얘기할 텐데…. 우리 아들은 이 책 나온지도 몰라요. 앞으로도 아들 모르게 이 책을 꼭꼭 숨겨둬야겠어요(웃음).”
한참을 웃고 있는 그에게 한 독자가 “이 소설을 영화화해도 좋겠다”면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캐스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질문했다. 영란 역은 전도연을 추천한다면서 또 다른 등장인물 역을 맡기고 싶은 배우를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2시간여 동안의 유쾌한 대화가 끝나고, 그는 팬들이 가져온 책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촬영도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위해 달려온 지인들과 함께 영란을 생각하며 막걸리 한잔을 하러 갔다.

오래오래 소설 쓰며 사는 게 목표
막걸리를 마시며 그에게 닮고 싶은 선배 작가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김말봉 여사를 닮고 싶다”고 대답했다. 2005년 올해의 예술상과 2009년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한, 평단에서 소위 ‘무게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가 1930~50년대 활동한 여류소설가로 주로 통속소설을 쓴 김말봉을 닮고 싶다니, 의외였다.
“그 양반이 수많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소설을 써야만 했던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지요. 나 역시 나와 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소설을 쓰니까요. 오래오래 소설을 쓰면서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저의 목표지요. 하하하.”
호탕한 그의 웃음이 갑자기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으로, 영란여관에 흘러든 떠돌이 가수 태숙에게 주인 할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가수는 노래 하나로 세상을 보듬어분단다. 존 것만 취허지 말고 아픈 것도 다아 니 품 안으로 보듬어부러라.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마는 노래도 목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부르는 것잉게. 세상 아픈 것, 짠헌 것 다아 보듬어불면 큰마음이 될 것이다. 큰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그 얼매나 니 노래를 사랑허겄냐.”
마음으로 부른 노래가 세상을 보듬어주듯, 공선옥 작가의 소설 또한 그의 바람대로 “자신의 슬픔만 감당하기도 벅찬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보듬어주기”를 희망한다.

여성동아 2010년 12월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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