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앞이 보이지 않는 비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곧 폭풍우가 밀려올 태세였다. 팝페라 가수 정세훈(39). 지난 2년 동안 그도 그렇게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예술가이기에 앞서 ‘옥소리의 남자’로 기억했다. 그는 여러 차례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밝혔다.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본인의 간통 사실을 먼저 자백한 것도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그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구형받은 뒤 지인을 통해 한 매체에 “내가 잘못을 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자백했는데 옥소리씨에게까지 피해가 간 것 같아 미안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지난 6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옥소리와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워 세상을 등질 생각도 했다. 모든 건 내 잘못이고 이 고통은 평생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옥소리 사건 이후 정세훈의 국내 활동은 뜸할 수밖에 없었다. 새 앨범 ‘네오 클래식’이 발매됐지만, 그는 한국 활동을 접고 프랑스·일본 등에서 공연을 했다.
그런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지난 7월17일, 18일 서울 자양동 나루아트센터에서 다시 한국 팬들 앞에 섰다. 용기를 내기까지는 지난해 가을 파리 마들렌성당에서의 공연이 큰 힘이 됐다. 당시 그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두루 좋은 평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제목도 ‘Memories in Paris’다.
무대에 선 그는 다소 긴장한 눈치였다. “아직 (팬들 앞에 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공연을 더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 분들이 (공연을) 적극 추진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자신에게 귀한 자리를 만들어준 이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비를 뚫고 찾아온 관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공연 더 미루고 싶었지만 주변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용기 얻어
다소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연장 분위기는 뮤지컬배우 김선경의 등장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김선경은 노래와 아울러 정세훈이 처한 상황에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얼마 전 영화 ‘마더’를 봤다”고 운을 뗀 뒤 “아들이 모자라고 잘못했다고 해서, 엄마가 자식을 버릴 수 있겠는가. 세상이 다 버려도 엄마는 자식을 버릴 수 없다. 세훈씨가 나한테는 그런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존재다. 한 번의 실수로 그 인생이 파괴되고 망가지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세훈씨가 세상에 상처를 주고 상처받은 만큼, 앞으로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선경의 말처럼 정세훈은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공연을 펼쳤고, 얼마 전에도 재소자를 위한 공연을 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장에는 정세훈의 부모도 와 있었다. 정세훈은 관객에게 부모님을 소개했다. 음악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주신 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는 마지막으로 “오늘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한 뒤 가성이 아닌 그의 진짜 목소리로 피날레 곡을 불렀다. 가늘고 여린 가성과 달리 그의 원래 목소리는 밝고 힘이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잦아드는 빗방울처럼 정세훈에게 드리운 그늘도 걷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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