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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제주도에서 온 초대장

제주도에서 생명을 주제로 전시회 여는 조각가 김숙자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카페 이마

2005. 10. 10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조각가 김숙자씨가 10월 한 달 동안 전시회를 연다. 다섯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는 다름 아닌 제주 그의 집 앞에서 열려 더욱 관심을 끈다. 자신의 전시회가 거칠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그를 만났다.

제주도에서 생명을 주제로 전시회 여는 조각가 김숙자

“제주의10월은 유난히 아름다워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30년 동안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온 조각가 김숙자씨(53). 그가 10월1일부터 한 달간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한다. 3천 평이나 되는 너른 마당에서 흙으로 빚은 조각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는 것이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제주 중산간 마을인데, 10월이면 억새가 정말 아름답죠. 빙 둘러싸인 오름(부드럽고 완만한 언덕을 뜻하는 제주 방언) 한가운데 억새가 가득 피면 그야말로 장관이에요. 제가 만든 작품과 함께 제주의 자연을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 10월에 전시회를 열게 됐어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생명의 소리’다.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모두 그 나름의 표정과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끔 사는 일이 참 고단하고 힘겨워서 깊숙이 가라앉을 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들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그 소리는 바로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애쓰는 소리였죠.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생명의 법칙은 엄격하고 질서정연하며 가슴 저리게 아름답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생명의 소리’를 담기 위해 그는 도예 기법을 응용한 독특한 기법으로 조각을 한다고 한다. 돌이나 나무 등의 단단한 재료를 깎아가며 형태를 만드는 일반 조각과 달리 흙을 덧붙여가며 형태를 만든 뒤 도자기처럼 가마에서 굽는 것이다. 소위 ‘세라믹 조각’이라고 하는 이 기법으로 조각을 하기 위해 그는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이천에서 몇 년간 도예 기법을 따로 배우기도 했다.
문득, 그가 흙을 가지고 조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흙을 만질 때의 느낌이 좋고 또 깎아내는 것보다는 덧붙이는 것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30년 조각인생에서 단 한 가지 화두에만 매달려 왔다. 바로 ‘인간’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사람에게 주목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 작품을 만들 땐 남녀 구분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어떤 제한도 하지 않고, 보는 분들 나름대로 자유롭게 제 작품을 해석했으면 싶었어요. 그런데 제 작품을 가져가신 분들은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들 해요. 그런 소리 들으면 정말 좋아요. 보람도 느끼고요. 그 작품은 자신이 있는 그곳에서 진정한 생명을 얻은 거잖아요.”

“거친 세상에서 받은 상처 위로받고 돌아갔으면…”
원래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가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은 지난 2000년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조각이란 놀이가 있어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마흔이 넘도록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던 그. 그러던 그가 쉰의 문턱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오던 동갑내기 사진작가 강태길씨(53)와 결혼하면서 남편이 살고 있는 제주도로 내려간 것이다.
“처음 2년 동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꽤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때 만든 작품들을 보면 고통스럽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많아요. 제 상태가 그대로 작품에 투영된 거죠.”

제주도에서 생명을 주제로 전시회 여는 조각가 김숙자

김숙자씨는 ‘생명’을 화두로 30년째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각각의 작품에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 생활에 지친 그에게 힘이 되어준 남편은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라고.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도 두 달 동안 마당의 나무를 솎고 전시하기 좋게 터를 정리하는 등 힘든 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그는 그런 남편이 있어 제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젠 제주의 자연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살면서 작품 경향도 많이 변했다.
“아시다시피 제주는 바람도 강하고 땅의 기운도 강해요. 한 3년 정도 지나니까 제주의 강한 느낌이 전해지더라고요.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제 작품들도 강해진 것 같아요. 예전엔 기운을 작품 안에 실어 넣었다면, 지금은 밖으로 끄집어낸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작품이 세졌어요.”
30년 동안 조각을 해온 그는 이젠 손목도 아프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몸이 허락하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왜 조각을 하느냐’고 제게 물어요. 그러면 저는 ‘조각하는 것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은, 나의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저는 조각을 ‘치열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요.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전시회를 앞두고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도 한다는데, 저는 지금 편안해요.”
그는 지금까지 혼자 놀다가 이제 손님들을 초대해 함께 놀려고 생각하니 몹시 기대되고 기다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즐겁고 편안하게 놀이마당을 준비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마련해놓은 놀이마당에서 “즐겁고 편안하게 쉬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친 세상에서 누구나 크든 작든 간에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전시회에 오셔서 위로받고 위안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작업을 하면서 치유받은 것처럼 그들도 제 작품을 감상하면서 조금이라도 치유받을 수 있길 바란다면 지나친 바람일까요?(웃음)”
늘 자연과 예술과 함께 하기 때문일까.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와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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