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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제는) 트로트 가수 허찬미 인터뷰

오홍석 기자

2023. 05. 30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만화 주제가를 연상케 하는 삶을 살아온 전직 아이돌, 이제는 트로트 가수라 불리는 허찬미를 만났다. 

아이돌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허찬미.

아이돌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허찬미.

소녀시대 데뷔조에 포함됐지만 최종 멤버에서 탈락. 슈퍼스타를 다수 보유한 소속사가 야심 차게 기획한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로 데뷔했지만 다른 멤버의 물의로 그룹 해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출연한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서는 성대결절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탈락.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허찬미다.

2016년 허찬미는 ‘프로듀스 101’ 출연 당시 네티즌들로부터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메인 파트를 욕심내다 결국 무대에서 ‘음 이탈’이라는 실수를 하고 탈락한 것. 그런데 최근 그는 MBC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 출연해 자신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악마의 편집’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카메라가 담아낸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은 전혀 전파를 타지 않았고, 컨디션 난조로 동료들에게 포지션 변경을 요구한 내용 또한 방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트로트 가수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허찬미를 만났다.

아버지의 갈증 풀어주려 트로트로 전향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당시의 허찬미.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당시의 허찬미.

근황이 궁금합니다.

‘미스트롯 2’ 이후 이제는 아예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어요. 지금은 ‘해운대 밤바다’라는 곡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허찬미를 줄곧 아이돌로만 기억했어요. 트로트 가수 전향은 어떻게 결정한 건가요.

일단 이런 결정을 내려 가장 놀란 건 저 자신이에요(웃음). 저희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목회자지만 젊은 시절에는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셨어요. 작곡도 직접 하셨고요. 몇 년 전 트로트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아버지가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해서 ‘미스터트롯’에 지원하셨는데 나이 제한에 걸리고 말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버지는 항상 절 응원해주셨거든요. 아버지가 여전히 가지고 계신 음악에 대한 갈증, 미련을 제가 대신 풀어드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트로트 오디션에 지원하게 됐어요.

원래 트로트에 관심이 많았나요.

부모님이 트로트 방송을 자주 시청하셔서 유명한 곡들은 알고 있었지만 제가 즐겨 찾아 듣거나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트로트 무대는 아이돌일 때와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그렇죠. 좀 더 구수해지고 능글맞은 느낌이에요(웃음). 일단 아이돌 무대에서는 윙크를 굉장히 많이 해요. 또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든가 하트를 날리는 동작이 많죠(웃음). 똑같이 하트를 날려도 아이돌 때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이렇게 날린다면 지금은 (왼손을 뻗으며) 이렇게 펼쳐드리죠.

나중에 아버지가 쓴 곡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옛날 스타일이시라(웃음).

노래도 많이 다르지 않나요.

창법이 가장 많이 바뀌죠. 아이돌 노래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은데 트로트의 매력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솔직한 가사에서 나오거든요. 가사의 맛을 살리려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부터 완전히 다르게 접근해야 해서 연습하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목도 많이 쉬었고요.

연습생 육성 과정은 흔히 K-팝의 어두운 면으로 일컬어진다. 연습생들은 어린 나이에 기획사에 소속돼 꿈을 이루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며 기약 없는 데뷔를 기다린다. 그렇게 무대에 서도 대중의 기억 속에 이름을 남기는 이들보다는 잊히는 청춘이 더 많다.

허찬미는 14세 때 기획사에 들어갔다. 연습생 기간만 합쳐도 10년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엄습하는 불안, 성공의 문턱에서 고꾸라졌던 좌절의 기억들을 그는 어떻게 떨쳐낼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음… 과거를 되돌아보면 저 자신이 기특해요.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힘든 시간도 많았고, 자책도 많이 했는데요. 그렇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는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실력파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붙었고 메이저급 소속사에도 있었는데, 운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남녀공학’으로 데뷔했을 당시만 해도 저희가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신인인데도 음원 인기 차트 상위권에 올랐죠. 그때만 해도 운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후에 일이 잘 안 풀리면서 ‘운이 없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실력이 부족한가’ 회의감도 늘 따라다녔어요. 그렇지만 이런 감정들이 제가 더 열심히 하도록 만들었어요.

언제 가장 포기하고 싶었나요.

남녀공학이 제 의도와 상관없이 해체됐을 때요. 그리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녀 이미지가 덧씌워진 채 탈락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그는 당시 식음을 전폐하고 대인기피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그만둘까 했지만 가수 아닐 때 더 힘들어

허찬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과거를 마주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허찬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과거를 마주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숱한 실패의 경험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해요.

가족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사실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연예계 생리를 잘 아시는 분들이니까요. 걱정이 많이 되셨겠죠. 하지만 연습생 생활 이후부터는 제가 계속해서 우여곡절을 겪을 때도 부모님은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셨어요.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겠니?’ ‘그만두는 건 어떻겠니?’ 이런 말을 한 번도 안 하셨죠. 그래서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어섰죠. 가족을 생각하면 못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막막함이나 허탈감, 우울한 감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떨쳐냈나요.

남녀공학이 팀도 잘되고 있었고 멤버들 사이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해체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힘이 들 거면 더 이상 가수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2년 정도를 쉬었어요. 원래 음악 방송은 다 챙겨 봤는데 쉬는 동안은 보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내가 저기 무대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지금 집에 있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그런데 저는 노래와 춤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알게 됐어요. 가수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 했는데 안 하고 있으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꼭 가수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서바이벌 오디션 같은 경우, 경력이 쌓였는데 다시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가 다른 참가자들과 경쟁하는 게 망설여지진 않았나요.

많이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망설인 이유는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가 경쟁해야 해서는 아니었어요. 이것보다 전 이미 대중에 노출된 사람이라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기대치가 높을 거라 생각해서였죠. 사람들의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두려웠던 거지, 경쟁 자체가 무섭진 않았어요.

그때로 돌아가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나요.

탈락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너무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어요.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할 거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뚝이, 도전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되게 감사해요. 지치고 힘들어도 제가 다시 분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별명들이죠. 또 팬 들뿐 아니라 모르는 분들께도 이런 메시지가 자주 와요. “제가 하고 싶던 걸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었는데 찬미 님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요. 그럴 때 굉장히 감사하죠.


마지막 질문으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무대나 곡을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허공을 응시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자작곡이자 솔로 앨범 수록곡 ‘I’m fine thanks’를 어렵게 골랐다. “‘지나온 날들은 향수가 되어… 내 걱정은 마’라는 가사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 잘 들어맞아서”라고 설명했다.


쉽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 헤어지는 자리, 허찬미는 기자에게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그동안은 연습 기간이었던 거죠”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끄럽고 싫어하는 이름이지만, 남녀공학 활동 당시 그의 활동명은 ‘별빛찬미’. 허찬미라는 사람의 낙천성이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별처럼 그를 빛나게 해주리란 생각이 들었다.

#허찬미 #미스트롯 #해운대밤바다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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