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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세계의 교육 현장을 가다

날로 진화하는 커닝, 걸리면 퇴학

글&사진·이수진 중국 통신원

2013. 05. 07

시험이 있는 곳에 커닝이 존재한다. 최근 중국에선 입시 경쟁과 시험 부담 때문에 커닝이 증가하는 추세. 커닝 수법도 갈수록 진화해 첨단 장비가 동원되기도 한다.

날로 진화하는 커닝, 걸리면 퇴학


최근 중국의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초등학생들이 운동장 땅바닥에 엎드린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사진은 중국 안후이 성 궈양 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에 엎드려 월말고사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설명은 중국인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바로 커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 다수의 중국인들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운동장에 엎드려 시험 보는 학교
논란이 거듭되자 학교 측이 해명에 나섰는데 오히려 이것이 비난에 불을 지폈다. 학교 측은 “시설이 열악해서 학생 2명이 책상 하나를 함께 쓰다 보니 시험을 볼 때 쉽게 커닝이 가능하다”며 “학생 간 간격을 벌려 시험을 치르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초등학교의 재학생은 5백 명 가까이 되는데 매월 한 차례씩 시험을 치를 때마다 이렇게 운동장을 고사장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학교 측은 “날씨가 좋은 날에만 밖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고 설명했지만 비난이 폭주했다.

날로 진화하는 커닝, 걸리면 퇴학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중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이 사건이 화제로 등장했다. 그는 학교 측의 해명이 더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책상이 부족하면 3학년과 5학년을 짝으로 앉혀 시험을 치르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신뢰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은연중에 ‘아이들이 나란히 앉으면 으레 커닝을 한다’라고 전제한 것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궈양 현 교육부는 긴급회의를 연 끝에 “학교 측의 설명에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해당 학교 관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 살면서 커닝과 관련해 두 번 놀랐다. 첫째는 생각보다 처벌이 엄격하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커닝을 하다 들키면 경고 없이 바로 퇴학 조치를 내리기도 한다. 몇 년 전 중국의 명문 베이징대에 들어간 한국인 학생이 커닝을 했다 제적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학사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베이징대는 모든 수업이 상대평가여서 일정 비율의 학생은 낙제가 불가피하다. 2학기 연속 4.0 만점에 1.0 미만의 학점을 받으면 바로 퇴학이다. 이처럼 시험에 대한 부담이 큰 데다 행여 표절이나 커닝 등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발각되면 바로 학위가 취소된다.
얼마 전 접한 설문조사 결과도 중국이 커닝에 대해 절대 관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한·중·일 고교생 6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중·일 고교생의 학업에 관한 국제 비교 조사’를 벌인 결과, ‘커닝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질문에 중국은 64.4%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같은 질문에 대해 일본은 60.6%, 한국은 40.6%가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커닝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다양하고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대학 입시는 물론 대학원 시험, 공무원 시험 등 모든 고시에서 부정행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정행위 수법도 과거 문자 쪽지, 휴대전화 메시지 등 고전적 방법에서 소형 카메라나 이어폰, 커닝용 시계 등을 이용한 새로운 방법으로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高考)를 앞두고 빠지지 않는 소식이 바로 중국 공안과 교육당국의 ‘부정행위와의 전쟁’이다.
귀에 넣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정밀하고 작은 이어폰, 지갑에 넣어 발각되지 않는 수신기, 1km까지 전달되는 무선 발사기 등 커닝에 동원되는 장비의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기능도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금속탐지기로도 잡아낼 수 없는 최첨단 기기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역시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경우 무선 전파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고사장 주변의 불법적인 라디오 전파를 차단한다. 산시 성에서는 수험생들이 고사장에 입실하기 전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산둥 성과 랴오닝 성은 모든 고사장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런데 시험 당일 커닝을 도모하는 것은 약과다. 몇 달 전부터 대담하게 가케무사(影武者·대역)를 준비하기도 한다. 가오카오는 6월에 치러지는데, 이미 8개월 전부터 대리 수험생을 모집한다. 대상은 주로 가오카오를 비교적 최근에 치른 대학 1, 2학년생. 이들에게 선불금을 주고 평소 모의고사를 통해 성적을 관리하도록 한 뒤 가오카오에 투입해 희망 점수가 나오면 잔금을 치른다. 이 과정은 점조직 형태로 진행돼 대리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정작 자신이 누구를 대신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커닝의 최대 피해자는 자기 자신

날로 진화하는 커닝, 걸리면 퇴학

커닝을 막기위해 운동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중국 학생들.



중국 교육당국은 커닝을 치명적인 부정행위로 인식해 점점 더 처벌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중국 사회가 갈수록 투명화되고 공평·공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가오카오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부정행위를 시도한 것만으로도 해당 시험 성적이 무효 처리되고, 향후 3년 동안 각종 국가 주관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하지만 13억4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만큼이나 경쟁도 치열하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중국이 아닌가.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한탕 심리가 가세해 일단 부정행위에 나섰다 하면 스케일이 크다.
중국어로 커닝을 ‘작폐(作弊)’라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뜻이다. 같이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의 기풍을 해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커닝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일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발휘할 기회도 놓칠 테니 말이다.

이수진 씨는…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를 거쳐 CJ 중국법인 대외협력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중 2, 중 1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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