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드라마 ‘하얀 거탑’은 중견 탤런트들의 탄탄한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하는 드라마다. 특히 목표를 위해서라면 이전투구도 마다하지 않는 대학병원 외과 과장 이주완 역의 이정길(63)은 근엄하고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위선적인 엘리트 의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을 자주 해요. 우리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살피기 때문에, 젊은 시청자들이 저를 ‘굴욕정길’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있죠(웃음). 이주완이 새파랗게 젊은 후배 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바람에 뒤로 넘어진 뒤부터 붙은 별명인데, 처음 그 별명이 붙어 있는 댓글을 보고 혼자 껄껄 웃었어요. 이 나이에 젊은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줄 만큼 관심을 기울여준다는 게 재밌고, 우리 드라마를 좋아해서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여주는 팬들이 고마워서였죠.”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하얀 거탑’ 세트장에서 이정길을 만난 건 하루 종일 계속된 촬영이 끝난 밤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피로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65년 KBS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방송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올해는 연기 인생 42년째를 맞는 해. 하지만 그의 외모와 목소리만으로는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배우에게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연기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느냐, 그리고 자기가 맡은 역을 생생하게 표현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죠.”
‘이정길과 열정’.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는 젊은 시절 빼어난 외모로 ‘한국의 알랭 들롱’이라 불리며 멜로 드라마의 주역을 도맡았고, 중견 배우가 된 뒤에도 의사, 교수, 대통령 등 진중한 배역을 주로 연기하며 지적이고 세련된 매력을 뽐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탤런트가 되기 전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도 가슴에 ‘피가 끓던’ 고등학교 때부터였다고.
“학교 다니며 글 쓰는 선배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같이 영국문화원에 드나들며 외국 영화를 보고, 예술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곤 했죠. 그러다 어느 날 로렌스 올리비에가 샤일록을 연기한 ‘베니스의 상인’ 연극을 필름으로 보게 된 거예요. 그 사람의 열정적인 연기에 어찌나 가슴이 뛰는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열병을 앓았어요. 이러다 내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죠. 그 열정을 태우기 위해 저도 연기를 시작했어요.”
로렌스 올리비에는 자신이 감독 ·제작 ·주연한 영화 ‘햄릿’으로 194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영국의 대배우. 이정길은 “당시엔 그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의 연기만큼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을 만큼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무렵 이정길은 가슴속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을 만큼 예민하고, 정열적인 회오리에 휩싸여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기 시작했다고.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외과의사 이주완 역으로 연기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정길.
“대학에 들어간 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워커를 신은 채 끝없이 걸어다녔어요. 그렇게 걸어다니며 머릿속으로 대본을 외우고 혼자 연기를 했죠. 1막 1장부터 끝까지 발성, 호흡, 감정 컨트롤 같은 걸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턴가 무서운 집중력이 발휘되는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느껴지지도 않고, 세상에 오직 저 하나만 있는 듯한 느낌…. 그게 참 좋았어요. 저는 연기자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이 고름처럼 터져나와야만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제게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이정길은 탤런트가 된 뒤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클 때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카메라 앞에만 서다가 타성에 젖어 더 이상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방송을 접고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TV 활동을 시작한 건 서른을 넘긴 뒤인 70년대 중반부터였다고.
42년간 이어온 연기 인생, 행복한 가정이 삶의 보람
“그때부터 청춘 드라마 주연을 맡고, 또 이효춘씨랑 ‘청춘의 덫’도 하면서 ‘인기 스타’가 됐죠(웃음). 당시는 좀 알려지면 드라마와 영화를 한꺼번에 여러 편씩 할 때여서 많이 바빴지만, 보람도 있었어요. 특히 연극무대보다 좀 더 안정적인 방송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자랄 때 조금이나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죠.”
밖에 알려진 모습과 실제의 이정길이 일치하는 부분은 ‘따뜻한 아버지’라는 점. 그는 2005년 방송된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딸 앞에서는 평범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 대통령 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남 1녀를 둔 그는 실제로도 “친구 같은 아버지”라고 한다.
“제가 외아들로 형제 없이 자랐기 때문인지 아이들에 대한 정이 남달랐어요. 한창 자랄 때는 촬영을 마치고 새벽 2~3시에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곤히 자는 걸 깨워 업어주고 같이 놀아주곤 했죠(웃음).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지금도 저한테 벽이 없어요. 스스럼없이 ‘아빠’ 하고 부르며 달려와 안기고, 아들이 요즘도 제게 뽀뽀를 해줄 정도랍니다(웃음).”
성실하고 바르게 자란 두 아이는 이정길의 최고 보물.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그의 큰아들은 올여름 카네기멜론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한다. 서울예고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of Music)을 졸업한 딸은 현재 서울로얄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며 몇몇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팔불출 같지만 아이들 생각만 하면 참 대견하고 고마워요. 무엇보다 좋은 건 아이들이 바르게 자랐다는 거죠. 제가 칭찬을 하면 ‘아유~ 아빠, 다른 집 아이들도 이 만큼은 해요’ 하며 부끄러워하는데 그런 겸손한 마음이 더 예쁩니다(웃음). 아직 둘 다 가정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처럼 우리 집의 화목을 유지해줄 수 있는 배우자만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연기와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의 남은 목표는 다시 연극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100%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운동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골프를 해왔고, 10여 년 전부터 스키도 타고 있어요. 요즘은 등산을 주로 하는데, 바쁘지 않을 때는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집 뒷산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다니죠. 그래서인지 체력은 아직 자신 있습니다. 얼마 전 ‘연개소문’에서 20kg 넘는 갑옷을 입고 말을 타는 연기를 했는데도 거뜬했는걸요(웃음). 연극은 여전히 제 마음의 고향이에요.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이라도 꼭 무대에 설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서 연기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따스한 마음이 번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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