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interview

부커상 최종 후보 정보라 문학의 3가지 기원

글 문영훈 기자

입력 2022.05.01 10:30:01

4월 7일 정보라 작가가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랐다. 바로 다음 날, 정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에 대해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하셨어요. 밤에 잠도 안 올 텐데….”

일주일간 잠자리에 들기 전 ‘저주토끼’(2017)에 실린 단편을 하나씩 읽었다고 하자, 정보라(46) 작가에게서 돌아온 답이다. 친구의 사업이 거대 기업의 횡포로 망하자 토끼 전등을 만들어 복수를 하는 ‘저주토끼’, 버린 오물이 하나의 형태로 합쳐져 주인공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변기 속에서 튀어나오는 ‘머리’, 상처를 내면 황금이 흘러나오는 여우를 학대해 부자가 되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유증인지, 그의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담긴 소설 때문인지 기자는 실제로 밤잠을 설쳤다. 어떻게 정 작가는 이런 소설을 쓰게 된 걸까.

3월 10일(현지 시간) 부커상 재단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롱리스트(1차 후보)를 발표하며 ‘저주토끼’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사용해 현대사회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다룬다.” ‘저주토끼’가 부커상 쇼트리스트(최종 후보)에 포함됐다는 뉴스가 나온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4월 8일, 정 작가를 만났다. 사진을 촬영할 때 시종일관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그와 함께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올가 토르카추크 이야기를 꺼내자 이내 표정이 환해졌다.

“부커상 규정에 최종 후보에 포함된 작가들을 영국 런던으로 초대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대요. 대학원 다닐 때 교재로 썼던 토르카추크의 책을 챙겨 가서 사인을 받으려고 합니다.”

올가 토르카추크는 폴란드 작가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올가 토르카추크는 그야말로 ‘레전드’일 터. 작품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전 생소해 보이는 슬라브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이야기에 매료”

슬라브 문학을 전공하셨어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했어요. 러시아와 관련된 학문을 배우거나 교류를 할 수 있게 됐죠. 그 전까지 러시아 문학은 톨스토이(1828~1910)에서 멈춰 있었어요. 구소련이 붕괴되고 나서야 그 이후 20세기 문학까지 배울 수 있게 된 거죠. 읽어보니 달랐어요. 역사가 다르니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 문학과도 다르고, 비교적 잘 알려진 영미 문학과도 달라요.

어떻게 다른가요.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에서 엄청 자유로운 시기가 있었거든요. 러시아혁명 직후부터 1930년대 중후반까지의 기간에는 모든 실험이 다 허용됐고요. 새 나라를 만들었으니까 새로운 문화를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과 그런 열망과 필요가 공존했던 시기였어요.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죠. 국가나 사회에서도 그걸 권장했고요. “환상문학과 사실주의 문학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엉뚱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런 게 너무 매혹적이었어요.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책이요.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책이요. 1920년대, 공산주의 문학가들이 ‘예수가 존재했는가’를 두고 토론하는 자리 모스크바에 악마가 나타나요. 그 악마의 내레이션으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가 재판을 받을 때, 그러니까 2000년 전 예루살렘을 보여줘요. 작가는 소련의 현실을 비판하며 선과 악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사회 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간 본성이 달라지는가를 질문해요. 하나의 소설 안에서 종교와 철학, 역사와 환상, 꿈과 민담이 적재적소에 불쑥 나타나요. 갑자기 주인공 중 하나가 마녀가 돼서 날아가기도 하고.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어요.

작가님 소설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그렇죠. 그런 방식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좋았어요.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죠. 이런 문학은 슬라브 문학을 제외하곤 본 적이 없어요.

‘저주토끼’와 ‘그녀를 만나다’

단편집 ‘저주토끼’에 등장한 인물과 동물을 포함한 존재들은 버려지거나, 착취당하거나, 배신당한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 책은) 쓸쓸한 이야기의 모음”이라고 썼다. 그에게 이 존재들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묻자, 다시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 ‘구덩이’ 이야기를 꺼냈다.

“주인공 보셰프는 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버려진 물건을 모아요. 한때는 자기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버려졌으니까 내가 너를 기억해주겠다는 거죠. 저는 그런 사고방식이 좋아요. 세상 모든 것에 다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데 사회 구조 때문에 누군가 혹은 어떤 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누군가 혹은 어떤 건 그렇지 않게 되는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순위가 있는 거 아니잖아요.”

모든 존재의 사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일상이 고통스럽지 않으신가요.

사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잘 살아요(웃음). 디폴트(평균값)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언제나 사람이 약 먹은 듯 행복할 수는 없죠. 좋은 순간이 있으면 나쁜 순간도 있는 것이고, 그 기복조차도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요. 다만 인간은 다 쓸쓸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우울하고 슬픈 게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고독하죠. 삶은 누구나 살기 힘들고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작가들끼리는 글 쓸 소재를 파는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웃음). 그게 어떤 것이다, 이렇게 딱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생활을 하다가 강렬한 인상을 받는 순간이나 어떤 물건, 상황을 마주치고 거기서 시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 작가의 근작은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로, 그가 쓴 단편 중 SF(science fiction)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묶었다. 표제작인 ‘그녀를 만나다’에서는 한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사람이 150세까지 살게 된 근미래, 그는 지팡이를 쥐고 팬 미팅에 참석한다. 정 작가는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지팡이를 보고 이와 관련해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팡이의 묘사가 자세하군요.

시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시며 지팡이가 필요하게 됐어요. 지팡이의 넓고도 깊은 세계를 알게 됐죠. 요즘은 손잡이를 누르면 불 들어오는 건 기본이고 3단 4단으로 접히는 것 등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으니까 그것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난해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페트루 솁스카야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 영향도 있었어요.

어떤 방식인가요.

페트루 솁스카야는 스카즈(skaz)라는 기법을 사용해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구어체로 작품을 쓰는 방식이에요. 그런 수다스럽고 정신없는 문체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기운찬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도 중년을 넘어가고 있으니까 내가 늙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고요.

‘그녀를 만나다’는 변희수 하사의 이름이 언급되며 끝납니다. 지난해 그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충격받았죠. 저도 그랬는데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저는 그녀로 인해 한국 사회에 정말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거든요.

투쟁하는 소설가

정 작가의 또 다른 별명은 ‘투쟁하는 소설가’다. 인터뷰 당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시위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시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장애등급제 폐지 집회에도 참여했다. 2016년에는 세월호 천막을 오래 지켰다. 그의 팔에는 노란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녀를 만나다’ 작가의 말에 세월호에 대한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어떻게 달라졌나요.

사나워졌어요. 그해 2월에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가 무너져 대학생들이 죽었잖아요. 두 달 뒤에 배가 침몰했죠. 대학생이 죽고 고등학생이 죽었어요. 그때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니까 진짜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당시 교수님들 중에는 강의 중에 울었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투쟁’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나요.

글을 쓰는 일 자체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시위에 가면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오늘 시위에서는 한 간병사의 발언을 들었는데요. 코로나19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에서 간병사는 빠져 있대요. 간병사야말로 24시간 환자와 같이 있잖아요. 그런데도 간병사를 통해 환자가 감염되면 환자 치료비를 간병사가 물어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시어머니가 아프실 때 간병사를 고용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들의 상황을 몰랐던 거죠. 시위에서 저로서는 상상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게 되죠.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사랑한다.”

정보라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작가 소개란에 쓴 내용이다. 그도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 중 하나다. 2월 그는 모교 연세대에서의 강의를 그만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대처를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고 했다.

“화상 수업을 듣기 어려운 청각장애인 학생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에 많아요. 그런데 학교는 아무 생각이 없었죠. 결국 팬데믹이 시작된 학기가 끝나고 나니 그 학생들이 다 사라졌더라고요. 학교가 학생들의 교육은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등록금 장사, 학위 장사만 하고 있는데 저는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 존재

한 논문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들을 “유토피아적 추구와 그 좌절”이라고 설명하셨어요. 작가님의 소설도 그런가요.

유토피아는 없어요. 사람은 그런 곳에 살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잖아요. 지금 더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타데오시 보롭스키가 쓴 책을 번역한 적이 있어요. 수용소에 가면 나치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직업이래요. 의사와 화학자를 살려둔대요. 꼭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먼저 죽이는 사람은 문학하는 사람이에요. 쓸모없고 말만 많으니까(웃음). 그렇게 1차 관문을 통과해 강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정신적인 생존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었대요. 재미있는 입담으로 현실을 유쾌하게 바꿔서 들려주면 그걸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았던 거죠. 결국 ‘즐거움’이라는 게 사람이 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작품을 쓰시나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진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팬데믹 이후에는 고통의 개념이 무한히 증대했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정보라 #부커상 #저주토끼 #그녀를만나다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아작



여성동아 2022년 5월 701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