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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terview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 조희숙

글 김민경

2020. 07. 04

요즘 음식 문화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게 변하고, SNS 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도 쏟아진다. 수많은 채널에서도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다소 낯선 한 여성 셰프가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커다란 울림을 주는 한식 셰프 조희숙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2020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조희숙(62) 셰프가 선정되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는 아시아 지역의 요리사, 레스토랑 대표, 기자, 미식가, 오피니언 리더 등으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이 해마다 아시아 지역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해 수상하는 행사로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든다. 선정된 50개 레스토랑에 수여하는 상 외에 4가지 영역의 특별상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조 셰프가 거머쥔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한식공간’이 지난해 10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1개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겹경사였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의 콘텐츠 이사를 맡고 있는 윌리엄 드루는 “평생 한식 발전을 위해 헌신한 조희숙 셰프는 이상적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완벽한 본보기”라고 그를 평했다. 안타깝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3월 24일 스트리밍 영상을 통해 시상식을 겸한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조 셰프는 ‘셰프들의 스승’ ‘한식계의 대모’로 불리며 현대 한식의 역사를 일궈온 인물이다. 중학교 가정교사 출신인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1983년 당시 이름을 떨치던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에서 요리 일을 시작했다. 이후 노보텔 앰배서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신라호텔의 한식당을 거친 뒤 2005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저의 총주방장을 맡았다. 2007년부터는 아름지기(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일깨워 요즘의 생활에 올바르게 적용하고 세계에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문화 단체) 식문화 연구 전문위원으로 있으며, 한식 문화 연구소이자 레스토랑인 ‘온지음’의 기틀을 다졌다. 일하는 사이사이에 학교에서 조리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꾸준히 했다. 이후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첫 공간이자 한식 연구소인 ‘한식공방’을 열었고, 지난해에는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인 한식공간을 인수해 오너 셰프로 지내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1개를 획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셨어요. 

수상 소식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갈 메일이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지요. 요리사로 워낙 오래 일을 해온 터라 조금씩 활동을 줄이려고 하던 때였어요. 게다가 저는 매스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알려진 편도 아니잖아요. 제 스스로를 ‘요리계의 인디’라고 할 정도로 조용히 일만 하는데 어떻게 저를 찾아냈을까 신기했어요. 이 상을 계기로 저와 한식공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수상의 기쁨만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묵직한 책임감도 느껴요. 

셰프님의 어떤 활동이 세계적인 수상의 영예로 이어진 것일까요. 

음식은 주관적인 영역이라 정답이 없고, 특정한 기준을 공유하며 저울질하기 힘들어요. 물론 저처럼 오랫동안 한 가지 영역의 요리를 해왔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닐 거고요. 생각해보면 제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가 아닐까요. 더불어 시간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을 하며 쌓은 시간의 양보다 사람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는 활동을 했다는 게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셰프들의 셰프’라고 불리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한 말이지만 제게는 과분해요. 그동안 저를 이렇게 좋은 눈으로 봐주시는 분들과 다양한 자리를 통해 인연을 맺어왔어요. 저는 비단 요리로만 소통하는 게 아니에요. 요리를 매개로 만나지만 요리에 임하는 자세, 요리에 대한 철학 등과 관련해 다채로운 의견을 주고받고 교감하면서 서로 배우고 공감을 쌓아가고 있어요. 한 가지 일의 명맥을 잇고 본래의 색을 지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사람은 꼭 필요하니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성 위주의 요리 업계에서 힘들진 않으셨나요. 

제가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이들이 한창 자라던 시절이에요. 여성이 가정과 직장일을 동시에 유지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힘든 것 같아요.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내가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조직 생활을 했던 저는 제가 여성임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어요. ‘나’라는 사람의 역할과 기질을 파악해 장점과 강점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지요. 또 하나 셰프는 물리적으로 힘쓸 일이 많으니 체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체력은 정신력에서 온다는 말도 고리타분하지만 빼놓을 수 없고요. 

롤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는 멘토가 있으신가요. 

한 개인을 스승으로 모시기보다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멘토를 만났던 것 같아요. 선배나 후배, 업력과 나이를 떠나서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겨요. 자신만의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반짝거리는 만큼 힘들었을 이면의 노력이 느껴지기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곤 해요. 


우연에서 필연이 된 한식공간

지난해 오너 셰프가 되셨더라고요. 

직장을 그만두고 나만의 요리를 펼쳐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2017년 한식공방을 열었어요. 원 테이블 레스토랑 형태로 운영하면서 소규모 요리 수업을 진행하고, 한식과 관련된 연구와 컨설팅도 했던 공간이에요. 주방 안에서만 일하던 제게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낯설고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 곳이죠. 끊임없이 요리 수업과 컨설팅 제안을 받으며 한식에 대한 목마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때 한식공간과도 인연을 맺게 됐어요. 오픈 컨설턴트로 참여했고 이후 2년여 동안 메뉴 변경 등에 꾸준히 관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이유는 경영난이었죠. 

한식공간에서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한국인일지라도 깜짝 놀라며 즐거워했어요. 한식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는 경험,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한식의 매력과 건재함에 대해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받고 호응을 얻는 것이 수익 창출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2019년 9월 1일 한식공간 인수를 단행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을 함께 만든 직원들과 그곳에 스며든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 같은 무형의 자산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야 했고요. 

실제로 경영을 해보니 어떠신가요. 

일평생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왔어요. 월급 통장에 새겨지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속한 조직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늘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인 의식’과 ‘주인’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을 한식공간을 운영하며 알게 됐어요. 안 그래도 숫자와 친하지 않은데 매일 같이 숫자에 시달리게 된 거죠. 워낙 규모가 작은 공간이라 대대적인 마케팅 행사를 열 수도 없고, 디지털 미디어와 친숙하지 않다 보니 SNS 같은 온라인 홍보도 먼 이야기였어요.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식을 계속 만들고 비용을 줄이는 것뿐이었어요. 식당을 운영할 때 가장 큰 비용은 대체로 셰프죠. 오너이자 셰프라는 두 가지 역할을 제가 모두 하게 됐으니 인건비가 꽤 줄어든 셈이었죠. 게다가 감사하게도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한식공간에서 만드는 한식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전통한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아요. 저는 평생 한식만 만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문화권의 요리를 한식에 잘 접목하지 못해요. 대신 전통한식의 범주 안에서 색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해요. 요즘에는 음식 한 그릇에도 다양한 요소를 담아내야 하는 것 같아요. 먹는 맛과 보는 재미, 그릇이 가진 이야기와 담음새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러다 보니 전통한식도 그에 발맞춰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는 듯하고요. 

한식공간의 음식 외형은 확연히 ‘모던함’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맛에서는 모던함이 없어요. 우리가 늘 먹는 풍성한 한식의 맛이 담겨 있죠. 눈으로 보아 가늠할 수 없는 의외의 전통적인 맛이 사람들에게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조차 우리 음식을 새롭게 여기니까요. 외국 손님들은 한식이 가진 고유한 면,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점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고유함, 유일함, 가장 한국적인 것을 지켜야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을 재해석한 반상.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을 재해석한 반상.

한우등심구이(왼쪽). 제철에 수확한 해조류나 채소로 만드는 계절 부각.

한우등심구이(왼쪽). 제철에 수확한 해조류나 채소로 만드는 계절 부각.

한식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고유함, 유일함, 가장 한국적인 것이죠. 굳이 끌어내지 않아도 한식은 이미 갖고 있어요.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이 존재하잖아요. 한식은 손이 많이 간다는 인식이 있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남다른 정교함을 가졌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식의 범주는 무한히 넓어요. 광장시장에 즐비한 음식도 모두 한식이고, 한식공간의 음식도 한식이죠. 어느 것이 더 ‘한식답다’라고 단정할 순 없어요. 각자 가진 본래의 맛, 그것이 한식의 매력이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면 세계가 우리 한식에 눈을 돌리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한식의 매력을 찾아내어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어요. 결국 시간이 지나 결과가 드러나면 정말 한국적인 것이 시장에서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코로나19가 뒤흔든 식문화 시장의 앞날은 어떻게 보시나요. 

코로나19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음식 맛은 입으로 즐기는 것도 있지만 음식점 주인과의 대화, 공간의 분위기가 함께 만든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통의 기쁨, 그 맛을 포기할 수 없죠. 

로봇이 요리하는 세상은 코로나19 전부터 이미 시작됐어요. 요리사가 살아남으려면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로봇이 ‘생산’하지 못하는 음식을 만들고, 꼭 찾아와서 먹어야 하는 음식을 완성하는 공간을 일궈야 하는 것이죠. 

공저로 참여한 한국의 쌀을 다룬 책이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 쌀 분야에서 1등을 했더라고요. 

경기도 평택에서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쌀을 닮다’라는 책이에요. 우리 밥상의 주인공인 쌀의 역사, 쌀을 키우는 농부의 인생, 쌀 요리를 담았지요. 제가 평소 갖고 있던 쌀에 대한 요리를 풀어냈고, 요리 파트에 수록됐어요. 우연히 참여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 몰랐어요. 우리가 흘려 보았던 쌀과, 쌀을 키우는 분들의 삶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셰프가 선망의 직업이 되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은요. 

요리사로서의 삶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세요. 삶에 대한 가치 기준을 확고하게 세운 다음 요리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세요. 내가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확실하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맛을 잘 내고 칼질 잘하는 요리사는 누구라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인품을 지니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아요. 음식에는 만든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과 서로 닮아가는 것이죠. 기술을 연마하는 만큼 자신의 자질을 잘 가다듬고 꾸준히 공부하세요. 이런 노력이 쌓이다 보면 먹는 이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음식을 완성할 수 있게 되고, 오랫동안 요리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해지네요. 

집필이나 요리 수업 등 다른 일은 일단 접어두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한식공간이 자리를 잡는 것이니까요. 숨이 끊어져가는 이곳을 인수하고 이제야 조금씩 자연스럽게 숨 쉬게 됐어요. 한식공간의 음식을 더 많이 알리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이 전통한식의 명맥을 이어 제2, 제3의 한식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싶어요.

사진 홍태식 요리사진 제공 조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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