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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luxury

"오늘 샤넬 클미 샀어요"

가격 올리는 명품, 미리 사두려는 소비자의 웃픈 줄다리기

EDITOR 정혜연

2020. 05. 13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살아나자마자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한국지사도 모르는 폐쇄적인 가격 정책과, 그럼에도 명품 매장에 몰리는 소비자들의 심리.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일부 품목 가격 인상을 하루 앞둔 5월 13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일부 품목 가격 인상을 하루 앞둔 5월 13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5월 초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됐다. 이 시기를 전후로 몇몇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해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는 루이비통으로 5월 5일부터 핸드백과 의류, 액세서리 등 일부 제품 가격을 5~6% 인상했다. 엔트리급 모델로 수십 년째 인기를 끄는 모노그램 스피디 반둘리에 30은 194만원에서 204만원으로, 지난해 출시된 미니 도핀은 421만원에서 443만원으로 올랐다. 이외 키폴 등 꾸준한 인기를 얻는 모델들이 대체로 10만~20만원씩 인상됐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 15일 가격을 올린데 이어 국내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이어지던 3월 4일에도 전 제품 가격을 3~4% 올렸다. 당시에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으나 정부의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 시행을 하루 앞둔 5월 5일 제품 가격을 기습적으로 올리자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박모 씨는 “코로나 때문에 올해 들어 처음 백화점에 갔는데 지난 연말에 봤던 가격과 달라 놀랐다. 시어머니 칠순 앞두고 핸드백을 고르려던 남편이 ‘또 오를지 모르니 미리 사두자’고 말해 솔깃했지만 그냥 나왔다. 가격 인상만으로 소비자를 낚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 나빴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이트와 각종 SNS에도 비슷한 여론이 형성됐다. 명품 정보 공유 온라인 카페에서는 ‘백화점 가보니 택에 가격표 부분만 잘라놨더라. 얼마나 급했으면 이랬을까 싶어 웃프기까지 했다’ ‘몇 년 전 루이비통 키폴 45 사이즈를 1백만원대에 구입했는데 어제 보니 2백만원이 넘어 놀랐다. 디자인은 그대로인데 값만 올리는 건 비양심적 행태’ ‘반년 사이 3번 인상하는 게 정상이냐. 한국 소비자를 호구로 아는 듯’ 등 비난이 쏟아졌다. 

루이비통 측이 최근 들어 제품 가격을 단기간 수차례 올린 이유를 알기 위해 루이비통코리아 측에 문의했다. 한 관계자는 “가격 조정은 글로벌(본사)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한국 매장은 조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그대로 따를 뿐이다. 품목도 그때마다 다르게 정해지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우리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기 정하고 가격 올리자 매장마다 대기행렬

5월 가격 인상 이후 8백만원대에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 플랩백(왼쪽).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3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해 소비자들의 빈축을 샀다.

5월 가격 인상 이후 8백만원대에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 플랩백(왼쪽).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3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해 소비자들의 빈축을 샀다.

루이비통 이외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도 일부 품목 가격을 5~6% 인상했다. 수년째 인기를 끌고 있는 크로스백인 클래식 박스는 20만원가량 올랐다. 미국의 명품 보석 브랜드 티파니도 일부 주얼리 가격을 7~11% 인상했다. 배우 김다미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착용해 화제가 된 스마일 펜던트 목걸이는 296만원에서 10%가량 오른 326만원으로, 스마일 팔찌는 107만원에서 11%가량 오른 119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가격 인상 날짜를 공고하지 않았다. 반면 샤넬은 5월 11일 핸드백 제품군의 가격을 사흘 뒤 17%까지 올린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즉각 백화점 매장마다 대기행렬이 이어졌다. 샤넬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여 만에 가격 인상을 결정했는데 특히 이번에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클래식백과 보이백 등을 올릴 것으로 예고해 더욱 손님이 몰렸다. 

가격 인상 공지 하루 뒤인 12일에는 백화점 오픈 시간인 10시 30분 전부터 대기하던 고객들이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는 오픈런 현상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고객의 수가 한정돼 있어 10명 남짓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이들은 줄을 선채로 제품이 동날까봐 초조해하며 온라인 카페와 SNS 검색으로 정보를 취합했다. 

샤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방금 클미(클래식 미듐) 금장 샀어요’라는 글이 게시되면 댓글에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 다른 종류의 핸드백은 있는지 등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지역별 백화점 샤넬 매장마다 실시간으로 대기 번호 몇 번이 들어갔는지, 특정 시간대에 어떤 핸드백이 있는지를 공유하는 등 기현상도 벌어졌다. 또 일부는 ‘오늘은 끝난 듯. 하루 남았으니 아침 일찍 가서 대기하는 편이 낫겠다’며 내일을 기약하기도 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에 대해 10년 전 결혼 당시 예물로 샤넬 핸드백을 받은 40대 주부 이모 씨는 “당시에는 5백만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인상되면 8백만원에 판매된다고 하니 누구라도 무리해서 사려고 할 것이다. 명품을 맹목적으로 사는 건 지양해야 하지만 여자들은 집안 대소사 등 중요한 자리에 들고 갈 좋은 가방 하나쯤은 필요하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매년 기습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자 ‘미리 사두는 것이 재테크’라는 기류도 형성된다. 40대 직장인 남성 김모 씨는 “결혼할 때 롤렉스 시계를 사고 싶었는데 30대가 롤렉스를 차고 회사에 가는 건 모양이 그래서 참았다. 이제 나이가 드니 그때 사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 지금은 결혼할 때보다 2백만원가량 오른데다가 인기 모델은 구할 수 없다. 명품은 미리 사는 게 이득이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조치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고 지적하며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는 “명품 브랜드마다 소비시즌인 5월과 12월 무렵 제품 가격을 올려 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분기 명품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인상한 측면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면 매출은 급격히 상승한다. 명품 브랜드의 연례행사 식의 가격 인상 정책을 없애려면 소비자들의 분별력 있는 판단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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