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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아름다움 너머 진짜 이연희를 찾아가는 여정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02.09 13:40:02

존재만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배우가 있다. 10대의 청순했던 모습에서 젊음의 생명력을 발산하던 20대를 지나 우아한 분위기를 지닌 30대를 맞은 이연희의 궁금했던 이야기. 
일상이 꼬인 실타래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땐 백약이 무효하다. 그럴 땐 당장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탈만이 간절해진다. 2월 10일 개봉한 영화 ‘새해전야’ 속 과감하게 모든 걸 뒤로한 채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20대 비정규직 스키장 직원 진아가 꼭 그렇다.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휴가 한 번 쓰지 못한 채 일만하다가 오랜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까지 받고, 홧김에 여행사를 찾아가 ‘한국에서 제일 먼 나라’로 가는 티켓을 결제해버린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첫날부터 노숙자 신세가 된 진아는 까칠한 한국인 와인배달부 재헌(유연석)을 만나고, 차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되찾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20대 진아로 분해 청춘의 방황과 사랑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린 이는 올해로 연예계 데뷔 21년차를 맞은 배우 이연희(33)다. 김강우, 유인나, 이동휘, 염혜란, 천두링, 유태오, 최수영 등 각기 사연을 가진 네 커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 이연희는 독보적인 분위기로 자신의 몫을 소화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야외 공연장 무대에 올라 멕시코의 유명 볼레로 ‘베사메 무쵸’를 아름다운 음색으로 부르고, 이구아수(iguazu) 폭포에서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며 욕설을 내뱉고, 건물 옥상에서 매혹적인 빨간 원피스를 입은 채 탱고를 추는 모습은 영화의 백미로 꼽힐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주관한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발을 디딘 이연희는 그해 가수 문희준의 솔로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동방신기 등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2004년 KBS 드라마 ‘해신’에서 수애의 아역으로 연기자 데뷔를 했고, 2006년 MBC ‘어느 멋진 날’ ‘에덴의 동쪽’에서 주연을 맡아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 했다. 그해 현빈과 호흡을 맞춘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밝고 풋풋한 10대 소녀로 등장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나 한동안 이연희에게는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던 중 2013년 MBC ‘구가의 서’에 특별출연한 이연희는 자신에 대한 편견을 단번에 씻어냈다. 극중 주인공 최강치(이승기)의 엄마 윤서화로 등장해 인간의 몸으로 구미호와 사랑에 빠져 최강치를 낳고 사라지는 비운의 여인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 것. 극 초반에 단발성으로 등장했지만 지금까지 많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MBC ‘미스코리아’에서 까칠한 성격의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 출신 미스코리아 오지영 역할을 맡아 전에 없이 물오른 연기를 선보였다. 

어느덧 30대에 들어선 이연희는 지난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6월 결혼을 한 데 이어 11월에는 19년 동안 몸담아온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현빈이 소속된 VAST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1월 초, 영화 ‘새해전야’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이연희와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래 12월 말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재확산 여파로 한 차례 개봉이 미뤄졌던 터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어려운 상황 속에 개봉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설레어 했다.





-영화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이후 6년 만이고 홍지영 감독님과는 ‘결혼전야’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데 어떠셨나요. 

‘새해전야’라는 타이틀에 맞게 지난해 연말 개봉을 앞두고 있었는데 “개봉이 연기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설연휴가 있으니 그 시기에 맞춰 개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6년만의 영화 출연이라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기대가 되고 설레기도 해요. 홍지영 감독님이 ‘결혼전야’의 후속 작품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이번에도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담으실지 궁금했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감독님께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던 터라 출연 제의가 감사했어요.

-진아는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 받은 후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즉흥적인 인물이란 생각도 들어요. 

누구나 자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열심히 일했지만 성과는 없고,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감도 없는 그런 진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믿었던 남자친구도 떠나니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아요. 저 역시 굉장히 힘든 시기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그때를 떠올리며 연기를 했어요.

-‘비정규직’이라는 처지에 놓인 20대 진아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을까요.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고민은 다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들이 많고, 아직까지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서로 고민 상담을 많이 해요. 그 친구는 “꿈을 위해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나아가는 게 맞는가” 하는 이야기를, 저는 “배우가 나한테 맞는 일일까” 하는 고민을 털어 놓죠. 전 또래보다 직업을 일찍 선택했고, 좋은 소속사를 만났지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어요. 특히 20대 후반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해외여행을 다니기 어려운 시기라 아르헨티나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이구아수 폭포에서 주로 촬영했는데 코로나 이전에 다녀올 수 있어서 운이 좋았어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고, 항구 도시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요. 어떤 곳은 미국 서부 같기도, 어떤 곳은 유럽 마을 같기도, 또 약간 태국 같은 느낌도 있었죠. 복합적인 매력이 섞여 있어 신선했어요. 무엇보다 음식과 와인이 입맛에 맞아서 촬영하는 내내 입이 즐거웠어요. 듣기론 땅이 넓다보니 소가 사람 인구보다 많을 정도로 목축업이 잘 된다더라고요. 여행의 목적 가운데 음식도 한 몫 한다고 보는데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던 촬영지였어요.

-배우 유연석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유연석 오빠는 의류모델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됐어요. 오빠가 한창 바쁠 때였는데 현장에서 지친 내색 없이 임하고, 저를 비롯한 모든 스텝에게 매너 있게 대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어요. 언젠가 같이 촬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같이하게 돼 좋았어요. 안면이 있는 사이라 편하게 촬영했어요. 해외 촬영은 정해진 스케줄대로 촬영해야 해서 굉장히 타이트하게 돌아가거든요. 배우들 호흡이 잘 맞아야하고 컨디션도 잘 유지해야 해요. 다행히 아르헨티나에서 순조롭게 촬영했고, 정해진 씬을 다 찍고 와서 감독님과 스태프 모두 만족했던 것 같아요.

-탱고를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연습에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먼저 제의를 주셨어요.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연습을 해서 갔어요. 현지 안무 선생님이 정해진 안무를 보시더니 전문적이고 화려한 동작보다 두 배우를 클로즈업했을 때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안무를 수정해줬어요. 그런데 촬영 당일 날씨가 너무 추웠던 데다 높은 구두를 신고 약간 기울어진 루프톱에서 춤을 추려니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화면에서는 아름답게 그려져서 만족해요. ‘베싸매 무쵸’는 평소 제가 좋아하던 곡이었는데 원어로 불러야 해서 걱정이 됐지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어색하지 않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음원을 출시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럴 생각은 없어요(웃음). 그저 작품 속 다양한 모습의 하나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요. 

20대 중반부터 작품을 하나 끝내면 늘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여행이 하나의 목표가 됐죠. 배우라는 직업 덕분에 일적으로도 해외에 다닐 기회가 많았던 건 감사할 일이예요. 봉사활동의 기회를 얻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녀오기도 했거든요. 여행지가 어디든, 일로든, 개인적으로든,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참 소중해요. 더불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고요. 지금은 해외로 갈 수 없지만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아서 종종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10대 때 데뷔했고, 바쁘게 20대를 보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20대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일을 풀어나가는 것도 서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무엇보다 ‘배우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는 일일까’하는 고민이 굉장히 컸어요. ‘20대는 깡으로 버틴다’고 하잖아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버텼고, 그러다보니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었어요. 20대 중반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30대는 좀 더 일에 대해 여유를 찾고, 사람을 대하는 데도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이제는 마냥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됐고, 생각도 달라진 것 같아요.

-모든 걸 뒤로하고 여행을 떠났을 때 어떤 소득을 얻었나요. 

20대 초반까지는 소속사 매니저 분들 없이 이동을 한 적이 없었어요. 매니저 오빠들이 애지중지 보살펴주셨던 터라 혼자 여행 가는 걸 매우 걱정했어요. 처음으로 혼자 여행가는 걸 허락받기까지도 어려웠어요. 떠나면서 “진짜 비상시에만 연락할 건데, 연락하는 게 더 무서울 거다”라며 경고하듯 안심을 시켰죠(웃음). 그렇게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났는데 너무 좋았어요. 가만히 호텔 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옆 테이블의 손님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다들 제 각각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더라고요.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는 정말… 하늘만 올려다봐도 좋을 정도로 힐링되는 기분이었죠.

-데뷔 17년 차인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대체로 잘된 작품을 기억해주시는데 남들이 못 봤더라도 개인적으로 아끼는, 아픈 손가락으로 남은 작품도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저를 좋아해주시는 팬들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작품은 ‘구가의 서’ ‘미스코리아’ 같은 확실히 눈에 띄었던 작품들이에요. 제게 있어서도 터닝 포인트가 됐기에 소중하게 생각해요.

-지난해 소속사를 옮겼는데, 복잡한 심정이면서 동시에 설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사실 몇 해 전부터 ‘새로운 도전을 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홀로서기를 한다면 새로운 사람들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고요. 새로운 환경에서 ‘이연희’라는 배우를 알리며 도전하고,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죠. 다행히 이전 소속사 식구들이 그런 제 생각을 존중해줬고 서로가 응원하면서 좋게 헤어졌어요.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유로워졌다는 거예요.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어요. 이젠 제가 한 결정들이 모두 제 책임으로 돌아오니까 과거에 비해 더욱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대 때부터 같이 활동하던 동료들과 함께 성장해왔는데 요즘 같이 활동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어릴 때 함께 활동하며 쌓은 추억들이 많죠. 이번 영화에 옛 남자친구로 특별출연한 최시원 오빠도 옛날에 같이 배역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이번에 잘 됐어?”라고 묻기도 하고, 서로 “잘 안됐어” 그러면 위로하기도 했고요. 이제는 어느 정도 연기 경력이 쌓여서 서로 한 작품에 같이 나오게 되니 기분이 묘해요. 이번 영화에 수영이(소녀시대)도 같이 등장하는데 스키장에서 촬영할 때 시원오빠와 셋이 사진 찍고 이야기 나누며 대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응원하는 든든한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결혼은 인생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었을 듯 해요. 

연기 생활에 많은 서포트를 해주고, 도움을 줘요. 그런데 (남편에 대해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저는 오래 배우 활동을 해왔는데 저희 가족도 그렇고 저도 공과 사를 구분 짓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친언니와 카페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 때문에 친언니가 불편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 일을 겪다보니 내 사람, 내 가족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어느덧 경력이 많이 쌓였는데,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20대 후반에는 내가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연기가 적성에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시기를 통과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이것 또한 내게 주어진 탤런트라고 생각하니 감사하게 여겨졌고요. 그때부터 배우 생활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어릴 때는 어디를 가나 막내였고, 긴장한 채 선배님들과 연기해야 했는데 어느덧 선배라고 불리는 입장이 됐죠. 촬영장에 가면 안면이 있는 선후배도 많이 생겼고요. ‘이제 나도 짬밥을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임감도 느끼고, 어깨도 무거워져요. 앞으로 하나하나 주어지는 일을 즐겁게 해나가고 싶어요.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



여성동아 2021년 3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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