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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FANTASTIC REALITY 이영애

EDITOR 김명희 기자

2019. 12. 26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영애의 세계에 한발 다가서기.

이영애(49)라는 존재는 동시대인들에게 하나의 판타지다. 1990년 초콜릿 CF 모델로 데뷔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 어떤 순간에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애티튜드…. 클래스가 다르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2009년 사업가 정호영 씨와 결혼해 쌍둥이를 낳은 후 배우에서 엄마로, 아내로 삶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동안에도 그녀에 대한 판타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속 쌍둥이 엄마로서의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 동료들의 “모든 면에서 경이롭고 압도적인 사람”(영화 ‘나를 찾아줘’의 동료 배우 유재명), “의지가 되는 존재”(김승우 감독)라는 증언에 비추어보면 대중이 이영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판타지가 아니라 그녀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서두르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시나리오를 찾아 최고의 컨디션과 타이밍에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영애가 새 영화 ‘나를 찾아줘’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녀가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만에, 신중하게 필모그래피에 추가한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실종된 아들을 봤다는 전화를 받은 주인공 정연(이영애)이 낯선 곳으로 아이를 찾아 나서며 시작되는 스릴러다. 이영애는 아들을 잃어버린 죄책감과 누구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픔, 아이를 홀로 찾아 나선 엄마의 강인함 등 복잡하고 복합적인 정연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영애가 이 작품을 선택하고 정연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엄마로서의 경험이 투영됐겠지만, ‘나를 찾아줘’는 ‘엄마 이영애’보다 ‘배우 이영애’가 더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상기된 표정의 그녀와 마주 앉았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만의 컴백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떨려요. 지난 주말 극장가 분위기도 볼 겸 신랑과 용산CGV에 갔었는데 ‘나를 찾아줘’ 포스터가 크게 걸려 있어서 실감이 났어요. 경쟁작이 뭔가 살펴보니 ‘겨울왕국2’가 있더라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겨울왕국’ 개봉 당시 엘사와 닮은 배우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런가요? 우리 딸이 볼 수 있게 (기사를) 한 번 더 써주세요(웃음). 사실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는 지인에게 더빙을 할 수 있는지 문의도 했었어요. ‘겨울왕국’ 조연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하고요(웃음).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엄마가 된 후 제게 찾아온 좋은 변화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아이들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아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하고 싶다면 지원해줄 생각도 있나요. 



아이들과 촬영한 ‘집사부일체’를 같이 보는데 아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반면 딸은 자기 분량이 적다고 속상해하더라고요(웃음). 딸은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에 참 감사하지만 이 직업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게 아니고, 반면에 의지와 상관없이 잘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나중에 뭐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또 어떤 일을 하든 기본적인 소양이 중요하잖아요. 그 시기에 해야 하는 공부, 경험들을 쌓으며 나이에 맞게 자라게 해주고 싶어요. 

복귀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스무 살 때 CF 모델로 데뷔했고 연기는 대학 졸업 후 시작했는데 20대와 30대에는 정말 열심히 달렸던 것 같아요. 일 년에 서너 작품씩 해서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죠. 물론 그중엔 대중들이 모르는 작품도 있지만요. 그러다 30대 후반에 ‘대장금’과 ‘친절한 금자씨’라는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나 호평을 받고 나니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더 이상 뭘 바라는 건 욕심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고 나니 가정을 제대로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더라고요. 물론 14년까지 걸릴 줄은 저도 몰랐어요. 

그동안 많은 제안들이 있었을 텐데 이번 작품을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저는 대본과 저의 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처음 받았을 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개팅에서 첫눈에 반하는 것 같은. 드라마 ‘대장금’ 때도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나를 찾아줘’는 술술 잘 읽히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대본이었고, 다 읽고 나서는 여운과 울림이 있었어요. 정연 캐릭터의 감성도 풍부해서 배우로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영화를 본 소감은 어땠나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는데 자화자찬을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나이가 이제 자화자찬이 필요한 시기잖아요(웃음). 여러 번 봤는데도 재미있더라고요. 시나리오가 좋았고 그만큼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의외로 액션과 격투 신이 많았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는지. 

특별히 수위가 높은 액션은 아니었지만 구르는 장면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서 촬영 전 액션스쿨에 가서 조금 배웠어요. 잘할 줄 알았는데 한번 구르니까 머리가 핑 돌더라고요. 그래도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이 재미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정연의 비주얼도 인상적이었어요. 비주얼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나요. 

감사하게도 ‘친절한 금자씨’를 함께했던 송종희 분장감독님, 조상경 의상감독님이 바쁜 일정에도 스케줄을 맞춰 함께해주신 덕분에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질감 없이 작품에 스며들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감독님들과 함께 회의하면서 비주얼 콘셉트를 잡았어요. 대가의 한 끗 차이가 정연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죠. 그냥 옷 한두 벌 갈아입고 머리 질끈 묶었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그 비주얼을 완성하기까지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답니다. 

엄마로서의 경험이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를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엄마가 되고 나서 감성의 폭이 넓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거나, ‘엄마가 됐으니 엄마의 감성을 보여줘야겠다’ 이런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화하는 게 관건이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 내려놓고 아줌마가 됐죠, 뭐(웃음). 아이들이 쌍둥이라서 그런지 길 가다가 쌍둥이 엄마를 보면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쌍둥이 엄마들만의 감성이 있거든요. 옆집 빌라에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있는데 아이 하나를 안고 또 유모차를 미는 게 남 일 같지 않아서 제가 광고하는 분유, 화장품을 가져다 드리기도 했어요. 하나를 주면 열을 주고 싶고, 정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방송에서 아이들이 학대를 당한다거나 하는 뉴스를 접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듣지 않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하게 돼요.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잘 어울려요. 자기 관리의 비결이 있다면. 

아이들이 두 살 되던 해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 들어갔다가 2018년 초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 이태원으로 다시 이사 왔어요. 전원생활이 아이들에게도 좋았지만,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가꿔 먹고 산을 헤치고 다니며 계곡 물 흐르는 소리, 산새 소리 들으며 혼자 사색도 하고 그랬죠. 그렇게 보낸 7~8년이 배우로서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큰 자산이 된 것 같아요. 거기서 지낼 때는 일 년 가까이 피부과도 안 갔어요. 건강한 음식 먹고 맑은 공기 마시고 하니 스트레스도 없고 자연스럽게 피부도 좋아지더라고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나 봐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풍선 같아요. 사람들은 “예쁘다” “멋지다”고 떠받들며 하늘로 띄워 보내죠. 그러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바늘 하나에도 터져버릴 수 있는 존재예요. 자기도 모르게 하늘로 올라가지 않기 위해선 심지의 기둥을 확실히 세우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촬영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촬영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어요. 그동안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집중하는 시간도 행복했지만 촬영장에 있으면서 ‘아직 배우로 돌아갈 자리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끔 다시 돌아가면 나를 환영해주시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응원의 댓글을 보면서 그래도 소리 없이 지켜봐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와 닿았고 다시 배우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됐어요. 

앞으로는 작품에서 자주 만날 수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다작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가정에 소홀해질 수도 있고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조화롭게 해나가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찍을 땐 신랑의 도움이 컸어요. 아이들 챙기고 재우는 것까지 신경을 많이 써줬거든요. 덕분에 아빠와 아이들이 많이 친해졌어요. (기사에) 제가 고마워한다고 써주시면 다음에도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웃음). 

배우로서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나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아직 배우로서 보여드린 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가리지 않고 연기하고 싶어요. 새로운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고, 제가 몰랐던 영역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도 커요.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또 좋은 작품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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