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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 생각나는 가수 임창정의 가을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10.13 17:00:01

목소리만으로 심장 끝까지 울림을 주는 가수이자 배우. 카메라 밖에선 네 아들의 아빠이자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벌이는 기획사 대표. 최근 열다섯 번째 정규 앨범을 들고 컴백한 임창정에게 이 모든 무게를 견디며 사는 법을 들었다.
소주 한 잔 생각나는 가수 임창정의 가을
가을은 ‘믿고 듣는 가수’ 임창정(46)이 앨범을 내는 계절이다.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임에도 그는 매년 가을 고집스럽게 새 노래들을 CD에 담은 정규 앨범을 통해 발표하고 있고, 음원 차트에서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지난해에는 정규 14집 앨범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로 모든 음원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와 지상파 음악 방송 차트 1위를 석권하고 골든디스크 ‘올해의 발라드 상’과 가온차트 뮤직어워즈 ‘9월 올해의 가수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1995년 가요계에 데뷔한 그가 아이돌 가수들이 장악한 음원 시장에서 이토록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노래가 전 세대에 걸쳐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9월 6일 세상에 나온 15번째 정규 앨범 ‘십삼월’ 역시 세대를 불문하고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이번 앨범은 ‘임창정표’ 발라드부터 미디엄, 리듬앤드블루스(R&B), 풀 밴드 느낌의 재즈 스윙 R&B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로 구성됐다. 수록된 13곡의 이름이 달력처럼 월별로 지어진 점이 이채롭다. 가을 초입, 기자와 마주한 임창정은 한껏 달뜬 표정으로 새 앨범의 타이틀 곡 ‘십삼월’과 서브 타이틀 곡 ‘구월’, 캐럴 같은 느낌의 ‘십이월’을 들려주는 것으로 인터뷰의 서막을 열었다.


소주 한 잔 생각나는 가수 임창정의 가을
매년 가을에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이유가 뭔가요. 

가을이 발라드의 계절이잖아요. 댄스가 아닌 발라드 장르의 곡을 계속 정규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하다 보니 정규 앨범은 가을의 문턱에 나오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히트 곡인 ‘또 다시 사랑’ ‘내가 저지른 사랑’도 9월에 나와 큰 사랑을 받았고요. 앞으로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정규 앨범을 낼 생각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이 고갈될 때까지요. 

수록 곡 제목이 월별로 ‘십삼월’까지 있더군요. 

‘십삼월’은 한 여자를 그녀도 모르게 한결같이 좋아하는 남자의 회한과 슬픔을 아프지만 아름답게 표현한 브리티시 팝 느낌의 새로운 발라드 곡이에요. 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정해 ‘십삼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니 남은 게 12곡이었어요. 그래서 각 노래에 ‘일월’부터 ‘십이월’까지 하나씩 제목을 달았어요. 노래를 들으면서 적당한 월을 짝지어주고 그달의 분위기에 맞게 편곡도 하고요. 라디오 방송에서 “푸르른 오월입니다. 임창정이 부르는 ‘오월’ 들어보실까요?” 이런 걸 노린 거죠. 하하하. 

나이가 들수록 노래를 더 잘한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비결이 뭔가요. 

기본적으로 부모님에게 좋은 성대를 물려받았고, 창법을 바꾼 것이 주효한 것 같아요. 젊을 땐 완전 생목으로 내지르는 걸 좋아했어요. 그게 목에 많은 무리를 주어 공연을 하고 나면 목이 자꾸 쉬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30~40곡을 불러도 다음 날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아요. 음정과 박자를 기계적으로 맞추려 하기보다 감정과 느낌을 살려 편하게 노래하다 보니 목을 사용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어느 유튜버가 올린 ‘임창정의 변천사’를 보기 전까지는 제 창법이 바뀌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목 관리도 중요할 텐데요. 

프로폴리스를 먹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하는 게 없어요. 프로포폴 아니에요. 하하하. 

임창정 씨 노래를 들으면 소주가 당긴다는 사람이 많아요. 주량이 어느 정도인가요. 

예전엔 소주 한 병 반에서 두 병을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주량이 늘더라고요. 지금은 서너 병쯤 마시는 것 같아요. 

공백기에는 앨범 작업에만 몰두하나요. 

앨범은 1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만들어요. 이번 앨범 수록 곡들도 지난해 10월부터 틈틈이 만들었어요. 그것 말고도 벌여놓은 일이 많아요. 프랜차이즈 사업도 하고, 드라마와 광고 제작도 하고 있어요. 후배 양성을 위해 작년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차렸고요. 지금 아이돌 양성 교육을 하는 사관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10월 중순 방송 예정인 ‘예스 아이 캔’이라는 프로그램이에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크루들이 나오고 정준호, 오지호 씨 같은 배우들이 아이돌들을 가르치는데 그 열정이 정말 대단해요. 

아이돌 육성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해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꿈이에요. 음반 제작자가 되고 싶었어요.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잘 시작한 것 같아요. 각 사업 분야에는 저 말고도 그에 걸맞은 대표들이 계세요. 저는 프로듀서 대표예요. 

최근 워너원 출신 김재환과 청년 트로트 가수 승국이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재환이가 제가 쓴 곡을 너무 잘 표현해줘서 놀랐어요. 앞으로도 제가 쓴 노래들이 이 정도로 잘하는 후배들만 만나면 좋겠다 싶었어요. 승국이는 원래 R&B를 하다가 저를 만나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거예요. 처음에는 가르치는 데 애를 먹었지만 나중에는 잘 따라오더라고요. 

아티스트 겸 제작자라서 후배 육성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어느 한쪽만 편들지 않고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하고 고려해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론 아티스트의 입장을 더 우선시해요. 아티스트에게 이해를 강요하면 분쟁이 생기지만 회사가 많이 양보하면 사이좋게 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드라마, 예능, 광고, 음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다면. 

저는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1995년 가수로 데뷔했어요. 지금처럼 3~6개월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시키고 바로 주목받지 못하면 사장시키는 시스템이었다면 오늘날의 임창정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저를 발굴해주신 스승님과 당시의 매니지먼트 풍토처럼 조금 못하고 천천히 따라와도 기다려서 쓸모 있는 재목을 만드는 시스템을 지향해요. 소속 연예인 지망생이 뭘 잘하고 성격은 어떤지 다 알고, 계속 뒤에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형 같고 오빠 같은 회사요. 

하는 일이 많아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일반 직장에 다니는 분들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소통할걸요. 저는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친구처럼 생각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난 이런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이런 식으로요. 신사적으로 해주려고 하는데 요즘은 막 기어올라요. 하하하. 

12월에 아내 서하얀 씨가 다섯째를 출산한다고 들었어요. 또 아들이면 딸 낳기에 다시 도전하실 건가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딸 못 낳는 수술을 이미 했어요(웃음). 전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다둥이 가족이라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오죠. 

정말 많이 들어오는데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하고 싶어요. 아이들과 같이 나가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요. (신)동엽이 형, (유)재석이 형을 만나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하루에 두세 개씩 촬영하느냐. 정말 대단하다”고요. 근데 얼마 전 동엽이 형이 미니시리즈 드라마에 출연하고 나서 저한테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한두 장면을 찍으려고 밤새 기다리느냐”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형은 예능이 천직이고, 저는 연기하고 노래하는 게 천직인 것 같아요. 

아빠처럼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이 있으면 밀어줄 건가요. 

벌써 둘째는 유튜버가 되겠다고 난리고, 셋째는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며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둘째가 그거 보고 자극받아 피아노 연습을 좀 하는가 싶더니 금세 재미없다며 그만두더군요. 자기도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지 모르겠대요(웃음). 

아들 4형제(준우, 준성, 준호, 준재)는 아빠의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나요.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와 ‘내가 저지른 사랑’요. 

스스로 손에 꼽는 자신의 명곡은 뭔가요. 

최근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임창정의 최애곡’을 3곡 적어달라고 차트를 보내왔어요. 3위는 ‘그때 또 다시’. 2위는 ‘소주 한 잔’이에요. 1위는 뭘 것 같아요? 바로 매년 발매되는 저의 새 앨범 타이틀 곡이에요. 제가 지금 무대에서 하는 노래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좋아요. 


소주 한 잔 생각나는 가수 임창정의 가을
2003년 10집 앨범을 끝으로 영화에 전념하겠다며 가요계 은퇴를 선언했고, 그로부터 6년 만인 2009년 11집 앨범을 들고 컴백했어요. 이후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서는지 궁금해요. 

‘내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는데 그 바람을 저버리면 이건 배임이다. 나를 바라봐주시는 팬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그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하겠다. 내가 연명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한 음악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각오로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는데 ‘오랜만이야’라는 노래가 생각보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후에 내는 앨범마다 좋은 성과를 냈고요. 정말 상상도 못 한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복귀 이후의 가수 활동을 제 인생의 커다란 행운 보너스라 여기고 있어요. 이 보너스를 후회 없이 즐기고 싶고요. 

내는 앨범마다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요. 

운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아이돌 그룹처럼 팬덤이 막강하지 않아 발매하자마자 음원 차트를 올킬하지는 못하지만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제 노래를 듣고 입소문이 나서 순위가 역주행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제치고 1위를 한 적도 있고요. 

트렌디한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요. 

한 달에 한 번 음원 사이트에 업로드되는 팝송과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그룹의 노래도 꾸준히 듣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리듬을 편곡할 때 반영하고요.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에요. 근데 그 노래를 제가 따라 부르면 타령이 되더라고요. 하하하. 

가수면서 영화배우이기도 한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나요. 

연기를 할 때는 노래를 하고 싶고 노래를 할 때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서로 다른 두 영역을 넘나들다 보니 어느 한쪽에 갇히지 않고 지루하거나 질릴 겨를이 없어서 좋아요. 연예계라는 일터에서 운 좋게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지금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니까요. 제 일터에서 안 잘릴 때까지 늘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갈 거예요. 

살다 보면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넘어질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좌우명이 있습니까. 

‘웃자’예요. 집안에서 싸움이 나고 무슨 급박한 사정이 있어도 연예인은 티 낼 수가 없어요. 어디서든 웃어야 하죠. 근데 저는 혼자 있을 때도 웃고 싶어서 자꾸 웃는 연습을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냐”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정말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도요. 또 계속 웃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살아가면서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요. 

기회가 되면 영화감독을 해보고 싶어요.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거든요. 그리고 제 자식들을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체격이 커졌다고 다 어른은 아니니까요(웃음).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YES IM 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9년 10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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