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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poet

6년 만에 새 시집 펴낸 최영미 시인

“대충 살아지지 않는 게 내 인생”

EDITOR 김건희

2019. 08. 12

문학계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시인 최영미. 그로 인한 지리한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그는 여전히 명랑하고 씩씩했으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시인 최영미(58)를 처음 만난 때는 무덥고 습한 6월 마지막 주말 오후였다. 서울 홍대 한복판 청춘들이 뿜어내는 열기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어느 고풍스러운 브런치 식당. 어두운 빛깔의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구수한 빵 냄새가 먼지처럼 떠돌았다. 

그곳에서 오랜 애독자들과 함께 단정하고도 견고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시인을 발견했다. 소규모 ‘독자와의 만남’ 자리였다. 30대 청년부터 중년까지 독자층은 꽤 넓었다. 그들은 기억에 남는 시 일부 구절을 낭송했고, 시인은 그 내용에 감응했다. 

시인 최영미는 조금 여윈 듯했으나 초여름 물기를 머금은 신록처럼 활기차 보였다. 일면식도 없건만 그의 환한 웃음이 잠깐 의아했다가 순간 깨달았다. 그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시인으로 갇혀 있었음을. 

그의 표현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던 최영미는 1992년 문예지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 ‘속초에서’를 비롯해 총 8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50만 부가 팔린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와 삶을 직시하는 리얼리즘으로 ‘최영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몰고 왔다. 2006년에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은행나무)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 이후 시와 소설, 에세이를 넘나들며 미술과 축구에 대한 산문을 쓰고, 시 창작과 서양미술사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랑, 문학, 일상의 미묘한 순간들을 담대한 시적 언어로 꿰맨, 그의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이 나왔다. 2013년 ‘이미 뜨거운 것들’ 이후 6년 만의 새 시집이다.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서…”라며 고사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고심 끝에 만남을 수락했다. 약속을 따로 잡고 시집에 담긴 일상, 연애, 한국 문단을 화두로 7월 중순 홍익대 서울캠퍼스 내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더위가 조금 비켜난 여름날이었지만, 한낮의 햇살은 7월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마음고생이야 뭐, 평생 하는 거지요. 인생이 소설이려니 생각하고 살아요(웃음).” 

오후의 볕을 등지고 앉은 최영미는 특유의 명랑한 표정을 지은 채 조심스러운 기자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했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에서 고기가 더 잘 잡힌다고 했던가. 세상 풍파에 아랑곳없이 도회적이고 새침하다 싶은 그의 얼굴에 여유로움마저 어른거렸다. 무엇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작가일 땐 모르던 세상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올해 4월 ‘이미’라는 1인 출판사를 차리고 여기서 새 시집을 냈거든요. 제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 ‘이미’라는 시가 있어요. 거기서 착안해 회사명을 지었죠. 시집은 원래 지난해 나와야 했지만 소송 여파로 내지 못했어요. 출판사에 출간 의사를 물었지만 답이 없었어요. ‘이제 한국 문학 출판사에서 내 시집 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구나’ 깨달았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접 해보자며 사업자 등록을 마쳤습니다. 자나 깨나 제작비와 싸우며 제작부터 주문, 영업, 홍보까지 도맡아 하고 있어요. 작가일 땐 모르던 세상과 부딪히며 ‘고생 좀’ 했지요.” 

그의 말대로 시인의 시집이 이미출판사의 첫 출간작인 셈이다. 시인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드나들던’ 시인의 머리에 ‘계산서와 어음과 물류창고’가 들어서고, 잔잔하게 흐르던 시인의 인생 시계는 어느새 ‘서류더미 위의 숫자놀음’ 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요즘 같은 전례 없는 출판 불황에도 시집은 출간 2주 만에 4쇄(8천 부)를 찍었으니, 시인의 말처럼 “이 정도면 준수한 성적”일 듯싶다.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은 생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일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담고 있다. 시집을 4부로 나눠 꾸렸다. 1·3부는 일상을 다룬 시, 2부는 풍자시, 4부는 연애시와 이것저것 섞였다. 시집 표지에는 강가에 매어둔 작은 배를 바라보는 사내가 그려져 있다. 표지 그림과 같이 풍랑에 뒤집히다가도 화창한 날을 기다리는 어부의 심정으로 그의 시를 음미했다. 시집은 밥을 지으며 인생을 반추하는 시 ‘밥을 지으며’로 시작한다.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중략) …//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시인이 말하는 ‘서른다섯이 지나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무슨 뜻일까. 이 구절에 특별한 사연이 담긴 건 아닌지 궁금했다. 

“‘밥을 지으며’는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더라는 것을 깨닫고 쓴 시입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물건 구매부터 작품 활동, 남녀 관계까지 인생의 대소사가 어디 제 뜻대로 됐던 게 있던가 싶어요. 그래서 대충 살기로 했으나, 대충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인 것 같아요.” 

머리로 읽었던 문장을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의미가 폭발적 힘을 발하며 다가온다. 시인이 말하던 ‘엉망인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수건은 내 맘대로 접을 수 있지’ 글귀가 그 순간 떠오른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머니 통해 알게 된 삶의 이면, 아름답고 찬란해

“‘수건을 접으며’는 ‘밥을 지으며’와 대구를 이루는 시예요.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 존재하는 사랑과 슬픔, 행복과 절망, 분노와 연민의 날들이 녹아들어 있죠. 환자가 머무르는 요양병원에도 웃음이 피어나더군요.” 

시인은 치매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몇 해 전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신 뒤 그가 집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점심시간 맞춰 가져다 드린다. 밥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부모 간병은 육아와 다르지 않다. 아기의 마음과 노인의 몸을 지닌 채 시간을 거꾸로 달려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다. 초로의 중년 시인이 어머니 대변을 받아내는 대목에선 형용하기 어려운 먹먹함이 밀려온다. 시인은 ‘내가 모르는 똥은 더럽다’면서도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어미의 몸을 돌아다니며 세상에 나온 푸르스름한 덩어리를’ 직접 손으로 받으며 ‘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을 알아간다.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힘들고, 벅차고, 피곤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이 나름대로 의미 있었고, 아름다웠고, 찬란했더군요. 요양병원을 드나들며 이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던 소소한 일상 속 행위들이 다르게 다가와요. 음식 먹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눈으로 보는 것도,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도 모두 감사해요.” 

날것의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시인은 사랑 앞에서도 솔직하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가 바로 ‘연애’다. 시인에게 사랑은 ‘너는 내가 해독하지 못한 상형문자’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나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말은 유치할수록 좋다/ 유치할수록 진실에 가깝다’고 말한다. 때때로 고통스럽고 아플 때도 있지만 사랑은 시인의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사랑만큼 좋은 게 있던가요? 안타깝게도 제 생애 ‘연애운’이 없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안 좋아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진짜 연애’를 하게 된 거죠. 나이 쉰이 지나 선물처럼 나타난 그가 저의 오랜 갈증을 채워주었지요.”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어느 것 하나 그에게서 나오지 않은 시가 없다. 다행히 시집 반응이 좋다. 특히 젊은층의 반응이 뜨겁다. 시인의 시가 성평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에게 말로 설명하지 못할 감정을 안겨다주는 모양이다. 

“저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시에 썼을 뿐인데, 그것이 사람들이 듣고 싶었던 얘기가 아닐까 해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였던 셈이죠. 얼마 전 출간 기념 사인회에 중년 여성 독자가 중학생 딸을 데리고 왔는데, 딸아이에게 ‘너는 오늘을 기억하게 될 거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올라 가슴이 뜨거웠어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 무척 고마운 일입니다.” 

여섯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소설, 에세이까지 펴낸 ‘중견 작가’이지만 대중에겐 아직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가 더 익숙하다. 최근 몇 년간 외부 활동이 뜸했는데, 오랜 은둔 생활을 해야 했던 저간의 사정이 있는 듯해 조심스러웠다. 진한 애틋함이 번진 듯한 시인의 눈빛 뒤에는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은 듯 보였다. 

“1990년대 한국 문단은 남성 중심 권력관계가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였죠. 지금도 다르지 않고요. 남성 문인들이 젊고 ‘가방 끈’ 긴 저를 향해 ‘뭘 이렇게 잘난 체하느냐’며 거북스러워했죠. 그들에게 저는 결코 나긋나긋한 여성 작가가 아니었던 거죠.” 

30대 시인은 어느 날 문단 행사가 있어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40대 남성 문인들이 다른 테이블에 앉은 40대 여성 문인들을 향해 ‘집에 가서 애나 보지, 왜 나왔느냐’ ‘아줌마들이 왜 여기서 물을 흐리느냐’며 타박했다. 한 공간에 있던 시인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문단에서도 성추행, 성희롱 문제가 만연해 있었다. 그는 당시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문단의 남성 중심 권력관계

그러다 2017년 시인은 문예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노시인의 성폭력 사실을 담은 시 ‘괴물’을 발표하면서 한국 문단 미투 운동(#metoo)의 중심에 섰다. 이후 노시인으로부터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올해 2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의 심경은 SNS를 통해 종종 알 수 있었을 뿐이다. 30대 초반 겪은 상처를 5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풍자시를 통해 세상에 알렸으니, 그간 그가 짊어졌을 상처의 무게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는 ‘괴물’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투 고백 이후 “기업의 강의 요청이 끊겼다”고 했다. 

“지난해 3월 한 공기업에서 예정되어 있던 시 관련 강의가 갑자기 취소됐어요. 소송당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에는 개강 며칠 앞두고 대학 국문과 시 창작 수업이 취소된 적도 있습니다. 학교의 이런 결정은 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어요. 이유를 알아보니, 제가 석사학위(서양미술사 석사)만 소지하고 있어 시간강사 채용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거예요. 석사학위 소지자도 다른 대학에서 강의 경력이 많거나 특별한 분야에서 경력을 인정받는 사람은 채용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어 ‘내가 그 규정에 해당하지 않느냐’고 되물었지요. 만일 자격이 안 된다면 애초에 제가 박사학위가 없다고 말했을 때 강의를 맡기지 않았어야 할 일 아니냐고요. 이미 저는 강의계획서를 제출했을 뿐 아니라 강사가 들어야 하는 ‘인터넷 성평등 교육’ 강의도 이수한 상태였습니다. 학교 측은 ‘시간강사 채용 규정에 따른 결정’이라는 입장만 표명했죠. 당시 재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전선이 흐트러질까 봐 제대로 항변하지 못했어요.” 

최영미는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를, 밥과 사랑과 세상을 더욱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단 한 편도 감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풍자라는 문학적 장치를 이용해 비틀어 묘파한다. ‘괴물’과 전쟁을 치를 때조차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며 전투태세를 정비한다. 누가 이 지리멸렬한 인생에 이토록 솔직하고 담백한 시를 더할 수 있을까. 

시인은 우리도 일상의 소소한 것을 주목하면 ‘작은 시’를 남길 수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숱한 삶의 면면을 종이에 쭉 적어보세요. 그다음 핵심만 남겨두고 글을 가지치기하세요. 어느 순간 ‘작은 시’가 탄생할 겁니다.” 

다음 계획을 묻자 “당분간 출판사 일에 전념하려 한다”면서도 “‘괴물’과의 전쟁에서 마침표를 찍을 때 마음껏 기뻐하고 싶다”고 했다. 

문득 시집에 실린 시 ‘바위로 계란 깨기’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게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깨뜨린 거지’라는 구절은 아마도 시인을 응원하는 독자들의 가장 절실한 마음이 아닐까.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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