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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프로 직장인 다이어리

개발자 사이에서 문과로 살아남기

임슬아 버즈빌 CS 매니저

입력 2022.08.14 10:00:01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합격자 중 44%가 이과생인, 문과생에겐 하 수상한 시절. 개발자와 개발자 사이 가교 역할을 하는 문과 출신 IT 기업 기술 매니저가 전해온 고군분투기.
임슬아 버즈벌 CS 매니저가 동료 개발자와 나눈 대화.

임슬아 버즈벌 CS 매니저가 동료 개발자와 나눈 대화.

신문방송학과 철학을 전공한 비(非)이공계 출신이지만, 디지털 광고 플랫폼 역할을 하는 IT회사에서 기술지원 CS(Customer Service)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나의 언어 한계가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매일 생소한 기술 언어를 들으며 한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오류 재현이 안 되니 디버깅(debugging·개발 단계에서 발생하는 버그를 찾아내 수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라거나 “연동 이슈가 발생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스 코드(설계 파일)를 받아보자”는 등.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한자와 영어의 기이(奇異)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에 골치 아파하는 문과 출신이다.

단축키 알려주는 동료

“단축키 좀 알려드려야겠네.”

옆자리에 앉았던 개발자 동료가 초면에 건넨 말이다. 키보드 치다가 마우스를 만졌다가 다시 키보드로 손이 가는 내 모습을 보며 어지간히 답답했던 것 같다. 그는 말짱한 키보드가 절반씩 쪼개져 있는 괴상한 키보드로 브라우저 탭을 여기저기 이동하며 단축키를 알려줬다. 참고로 그 이상한 키보드는 ‘스플릿 키보드(split keyboard)’이며, 어깨 말림 방지를 위해 키보드 사용량이 많은 직군에서 선호도가 높은 종류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당시 그가 단축키를 현란하게 사용하는 모습에도 놀랐지만, “단축키를 알려주겠다”며 무척 신이 난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단축키뿐 아니라, 그는 시간이 날 때 종종 개발 지식을 알려줬다. 고객사 개발자로부터 온 문의에 답변하는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 그의 조력은 굉장한 도움이 됐다. 옆자리 짝꿍 개발자 외에도 친해진 개발자 동료 모두가 나의 개발 독학 프로젝트를 응원해줬다. 입사 당시 자바(Java)와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도 헷갈렸는데, 이젠 자바로 앱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코린이(코딩+어린이)’가 됐다. 나의 작고 소중한 개발 작업은 원격 저장소 링크에 공유돼 있는데, 든든한 개발자 동료(이자 스승님)들이 방문해 조용히 ‘좋아요’를 눌러주곤 한다.

자기 일을 제쳐두고 친절하게 개발 지식을 알려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회식 자리에서 친한 개발자 셋에게 물었다. 짠 것처럼 세 사람 모두가 한 답변은 “열심히 개발 지식을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것. 본인들이 좋아하는 개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있다면(그게 더욱이 비(非)개발자 출신의 동료라면), 기꺼이 개인 시간을 써서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개발자에게 개발은 단순히 직장을 다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늘 흥미로운 대상이며 잘하고 싶은 놀이인 듯했다. 같이 놀 사람이 늘었다는 생각에 나의 공부를 반기는 것 같다. 분명 그들의 문화는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그 덕에 나도 간단한 앱을 만들 수 있는 실력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쓰는 스플릿 키보드는 아니지만, 타건 소리가 끝내주는 무접점 키보드를 구비해놓고 자유자재로 단축키를 쓰고 있다. 다음 달에는 애플 트랙패드를 하나 살까 한다. 이 정도라면 개발자 옆자리에 앉아도 부끄럽지 않은 동료가 된 것 같다.

개발자와 팀으로 일하는 법

버즈빌은 고객사가 복잡한 코딩 없이 앱에서 디지털 광고를 구현할 수 있도록 일련의 코드 꾸러미를 제공하는 회사다. 정확히는 ‘SDK(Software Development Kit·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개발하는 곳. 나는 고객사에게 SDK 연동 가이드 문서를 제공하고 연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의에 대해 답변하는 일을 한다. 개발자 출신의 연동 엔지니어(Integration Engineer)와 함께 일하고 있다.

CS 매니저는 가이드 문서와 제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사 문의를 해결하는 일을 한다. 반면 연동 엔지니어는 가이드 문서를 보완하고 오류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는 업무를 중심으로 고객사 문의를 해결한다. 이렇게 직무상 역할이 나눠져 있지만 고객 문의 및 요청 사항에 대응하는 업무를 함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대가 가진 역량을 흡수하게 된다.

이제는 연동 엔지니어도 친절함이 담뿍 담긴 ‘쿠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나도 고객사가 전달한 버그를 개발 환경에서 직접 재현해보고 있다. 문과와 이과, 출신은 달라도 같은 일을 하며 서로의 역량이 스며들고 있는 것. 그 결과 이제 ‘CS 매니저’ ‘연동 엔지니어’라는 명칭보다 ‘기술지원팀’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당연히 서비스 질은 높아졌다.

비개발자와 개발자가 함께 일한다는 것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같은 CS를 나는 고객 서비스(Customer Service)로, 개발(연동?) 엔지니어는 컴퓨터 사이언스(Computer Science)로 생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가 고객이 요구하는 개발 작업이 있으니 이를 반영해달라고 말하면 개발자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피해가 갈 수 있어 반영이 어렵다는 식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객 응대가 지연되는 상황을 막으려 내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원하는데, 왜 안 된다고만 하는 걸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만의 생존 전략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하는 일은 고객사 개발자와 내부 개발자 사이의 가교 역할이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개발 진행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틈날 때마다 고객의 갑작스러운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을 가졌다. 개발팀 회의록을 찾아보기도 하고, 개발자들이 대화하는 슬랙 채널을 기웃거렸다. 그 과정에서 개발팀이 안정적인 제품을 개발하려면 고객의 무리한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논리에 힘을 실어 조율점을 찾는 방향을 택한다. 협업하는 개발자를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는지, 혹은 내가 납득할 만한 지점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방식이 오히려 더 빠른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발자 없이 일할 수 없는 비개발자 CS 매니저의 생존 전략이다.

조직문화가 된 개발자의 문화

나는 가끔 스스로 속해 있는 환경을 멀리서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마치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의 관점으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회사의 제품이 IT를 활용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문화가 곧 조직문화로 발전하는 양상이 재미있다. 일례로 개발자들의 문화 중 ‘사후 검토(postmortem)’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버즈빌의 조직문화로 발전했다.

사후 검토는 죽은 사람을 검시하듯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실시하는 검토 회의다. 회의 참가자가 자유로이 의견을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개선해 나가는 방식이다. 버즈빌에서 사후 검토란, 기술 장애가 발생했을 때 유관 담당자가 장애 타임라인을 기재하고 원인을 분석해 재발 방지 대응책을 고민하는 기술적 방법론이다.

이는 우리 회사의 고유한 ‘회고 문화’로 발전했다. 비개발자 직군 역시 업무 프로세스가 잘못됐다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재발 방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를 질책하기보다, 자발적으로 개인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다.

아직 서툴지만 나도 어떻게 하면 고객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이드 문서를 제공할지 고민한다.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를 고민하기도 한다. 고객에게 제공된 가이드 문서에 참고할 만한 이미지가 더 많았더라면, 다양한 용례를 제공했더라면…. 개발자가 안정적인 제품 개발을 고민하듯, 나 또한 사후 검토를 통해 일회적인 고객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고객 서비스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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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신문방송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한 문과생 기술지원 매니저. 백화점 마케터를 거쳐 디지털 광고 플랫폼 역할을 하는 IT 회사 버즈빌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 임슬아



여성동아 2022년 8월 7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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