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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story

작가 서장원이 건네는 꽤 괜찮은 위로

글 김지은

2021. 07. 30

지난해 단편 ‘해가 지기 전에’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신예 작가 서장원이 첫 번째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그녀가 말하는 작품과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 

“‘괜찮았어’ 정도의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들 피곤한 상태로 책을 읽을 텐데, 그래도 ‘오늘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대신 책을 읽어야지’ 결심했는데 읽고 나서 더 안 좋은 마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의도가 그런 것이었다면 서장원(31)의 첫 번째 단편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다산책방)’는 확실히 성공적이다. ‘몇 편만 읽고 자야지’ 생각하고 펼쳐든 소설집은 밤을 꼴딱 새워 다 읽어버렸을 만큼 흡입력 있고 신선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해가 지기 전에’에서 두 주인공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방으로 가 커피를 내렸는데, 소설이 끝날 때쯤에는 어쩐지 두 주인공의 씁쓸한 여운이 남겨지는 듯해서 조금 쓸쓸하기도 했다. 마치 소설집 제목 그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나도 몰랐던 내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또 꽤나 괜찮은 위로가 되었다.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작가 서장원은 등단하자마자 다산북스가 선정한 ‘오늘의 젊은 문학’ 시리즈 두 번째 작가로 이름을 올리며 작품집까지 선보인,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예다. 신춘문예에 일곱 번이나 낙방해 많이 낙심한 터였다지만 소설이란 장르에 관심을 가진 게 스물세 살 때부터였다니 글쓰기를 시작한 지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녀는 서울예술대(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서사창작전공 전문사를 졸업하며 작가로서의 내공을 탄탄히 쌓아왔다.


소설가 한강에 반하다

“한강 작가님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의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채식주의자’ ‘여수의 사랑’ 등이요. 그러다 ‘아, 소설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나도 해봐야지’ 생각했죠.”

서장원은 고등학교 때까지 그 흔한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는커녕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소설을 써보겠다며 다니던 대학까지 때려치운 건 다소 엉뚱해 보였다.



“그 전에는 철학 전공이었는데, 적성에 잘 맞지 않아 재미가 없었어요. 때마침 서울예대에는 다른 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학생을 위한 특별전형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운 좋게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수 있었죠.”


발레리나와 소설가의 공통분모

작가 서장원의 첫 번째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작가 서장원의 첫 번째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소설가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나날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이라는 게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공무원 시험공부처럼 합격이라는 명확한 보상이 따르는 분야는 아니니까요.”

서장원은 소설을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전했다. 예전에는 소설에 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두루 만나거나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여행을 다니고, 힘든 일을 겪어야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집필을 위해 책상머리에 앉고 보면 실제로 경험하거나 눈으로 보고 들은 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에게도 그 자신 혹은 주변 지인들의 모습이 투영되지 않은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소설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훈련과 연습이더라고요. 발레리나들이 정말 혹독하게 연습을 많이 하는 것처럼요.”

매일 직접 커피를 끓이거나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 오는 것, 그리고 그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읽고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리 바쁜 날도, 아무리 귀찮고 게을러지고 싶은 날에도 빼놓지 않고 하는 그녀만의 훈련법이다.

대신 서장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공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서사에 더 많이 집중한다. 서사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책을 탐독하고, 또 무수히 많은 시간과 공간을 관찰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소설은 굳이 감정을 나열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내면에 쉽게 이입되곤 한다. 평론가 인아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대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 혹은 무대 위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초기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을 너무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요. 자꾸 시련을 주고 원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사람을 너무 많이 괴롭히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게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좋을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 사람 곁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때부터 등장인물 곁에 누군가를 두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서장원의 말대로 그녀는 운이 참 좋은 편일 수도 있다. 일평생 문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소녀가 소설책 몇 권에 반해 그 어렵다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한 번에 입학을 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예술교육의 요람 한예종에까지 단번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한예종에서 2년간 6편의 단편을 썼고, 졸업 후 딱 1년 만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겉으로 보면 물 흐르듯 순탄해 보이는 인생인데 그녀는 의외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좋은 작품들을 보면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기도 하죠. 이런 훌륭한 작품을 읽으면 되지, 굳이 나까지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생계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등단 전까지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책을 좋아해 다행이긴 하지만 소설만 써서는 생계가 어렵다 보니 무얼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라는 속내를 전했다.

모든 면이 그렇듯,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후 주변의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린 것만도 아니다. 특히나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든 건 서울예대를 졸업한 후였다고. 더 이상은 자신의 작품을 봐줄 교수님도, 서로를 독려해줄 학우들도 남아 있지 않다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한예종에 다시 입학한 건 인생에 딱 한 번 남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학생 수가 3명밖에 되지 않은 덕에 서울예대를 다닐 때보다 더 세세하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그만큼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한다.

최근에 그녀는 생전 하지 않던 SNS(@noxbokk)도 시작했다. 팔로어가 고작 2백 명 남짓인 초보 인스타그래머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하다 보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소한 공간으로는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7월 30일에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책의 기분’에서 작은 북 토크도 예정되어 있다(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온라인으로 변경될 수도 있다).

“등단 후 일상이 크게 달라질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제 소설을 발표할 지면이 생겼으니 독자들의 피드백 정도는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아직 그 정도까진 기회가 안 되더라고요. 소설이 예전처럼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 제가 좀 더 열심히 쓰면서 독자분들과의 소통을 더욱 성실히 해야 할 듯해요.”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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