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foodie

한 끼에 진심인 편, 홈그라운드 안아라 대표

글 이미주

2021. 07. 15

서울 옥수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 경사진 언덕을 오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를 즈음 민트 프레임의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 및 문화 행사 전문 케이터링 업체에서 제철 산물을 이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간편식과 개성을 더한 요리를 판매하는 델리 숍으로 거듭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의 근거지가 될 홈그라운드를 조목조목 살펴봤다.

익숙한 듯 새로운, 모던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

1 홈그라운드의 델리밀을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스타그램 계정(@ara_home_ground)에서 예약 공지를 확인할 수 있다.  2 키친 맞은편. 각종 집기와 식재료, 와인 등이 정리돼 있다.  3 홈그라운드에선 다양한 레이블의 내추럴 와인도 만날 수 있다.

1 홈그라운드의 델리밀을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스타그램 계정(@ara_home_ground)에서 예약 공지를 확인할 수 있다. 2 키친 맞은편. 각종 집기와 식재료, 와인 등이 정리돼 있다. 3 홈그라운드에선 다양한 레이블의 내추럴 와인도 만날 수 있다.

머위땅콩 볶음된장, 방아땅콩 페스토, 비름고수 페스토 미트볼 등 홈그라운드(@ara_home_ground)의 메뉴는 익숙한 듯 새롭고, 편안하면서 특별하다. 페스토, 패티, 콩포트 같은 서양 조리법을 따르지만 머위, 방아, 두릅, 죽순 등 고유 한식 재료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SNS에서 곶감말이로 유명해진 홈그라운드는 정확히 말하면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의 안아라 오너 셰프가 이끄는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다. 미술관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 기획과 푸드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안아라 대표는 아티스트로서 직접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최근에는 제철 재료를 사용해 가정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델리를 판매하는 숍, 홈밀어겐을 론칭해 특정 부류가 아닌 대중과 소통 중이다. “2020년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화려한 음식이 놓인 어떤 멋진 장면을 구상하고 구성하는 일을 해왔다면, 이후에는 각자의 눈앞에 놓인 한 그릇 음식을 통해 매 계절 나오는 산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먹는 이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한 코로나19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그러했듯이, 미술 전시 업계에서 푸드 콘텐츠로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축적하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안아라 대표에게 2020년은 몹시 혹독한 해였다. 홈그라운드 브랜드를 처음 선보였던 2015년,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곧 관련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갤러리의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을 도맡아 진행했다. 이후 접근성을 고려해 스튜디오를 서울 성동구 옥수동으로 옮겼고, 내실을 다질 요량으로 정규 직원을 채용해 ‘푸드 디자인’이라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며 정점에 이를 즈음 코로나19가 터졌다. “꽃 피기 직전, 봉오리가 맺혔을 때 사그라든 것 같아 굉장히 아쉽긴 해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예전처럼 행사 케이터링 일을 다시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모든 행사가 취소되는 상황에서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고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돌아갔다. “한곳에 묶여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고 홈그라운드 론칭 이전에 식당 운영 전반을 아주 밀도 높게 경험했기에 음식점은 다시 안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이나 팝업 키친을 통해 우리 음식을 궁금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분들과 같이 이 역경을 이겨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과 홈그라운드의 음식을 언제든 맛보고 싶은 소비자들의 염원이 만나 탄생한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는 델리 숍과 예약제 식당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요리사가 된 그래픽 디자이너

안아라 대표와 함께 홈그라운드를 이끄는 요리사들. 곶감말이를 전담하며 일본 가정식을 접목한 메뉴를 선보이는 에이코 씨, 한식 베이스의 델리 숍 메뉴를 담당하는 류혜진 씨, 안아라 대표, 디저트와 음료 · 콜드 파트를 맡은 문다은 씨, 그리고 홈그라운드의 마스코트 베라(왼쪽부터).

안아라 대표와 함께 홈그라운드를 이끄는 요리사들. 곶감말이를 전담하며 일본 가정식을 접목한 메뉴를 선보이는 에이코 씨, 한식 베이스의 델리 숍 메뉴를 담당하는 류혜진 씨, 안아라 대표, 디저트와 음료 · 콜드 파트를 맡은 문다은 씨, 그리고 홈그라운드의 마스코트 베라(왼쪽부터).

안아라 대표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미술 잡지 ‘아티클’에서 편집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요리와는 도통 접점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인생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멀리서 보면 많은 학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듯이 디자인과 요리도 전혀 다른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저 취미로 즐겁게 해오던 것을 업으로 하게 될 줄은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네요(웃음).” 안아라 대표의 인생을 통째로 바꾼 ‘나비효과’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소소한 일탈에서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업계에서 ‘포스트 백종원’으로 평가받는 장진우 대표가 있었다. 훗날 이태원 경리단길의 명소가 된 장진우식당은 원래 장진우 대표의 작업실로, 2010년대 초반 그는 작업실로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흥미로운 식재료와 음식 사진 등을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했는데, 이런 장진우 대표의 활동을 눈여겨본 안아라 대표가 장진우식당의 설거지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진우 씨의 공간과 요리가 궁금하던 차에 장진우식당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떴어요. 때마침 디자인 관련 회사에 이력서를 쓰던 시기라 환기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식당 일은 처음이었지만 타고난 일머리로 설거지뿐 아니라 공간 정리, 요리까지 척척 보조했다. 그렇게 5개월쯤 지났을 때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게 돼 다시 디자인 업계로 돌아갔다.

예약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제철 메뉴. 델리 숍의 모든 음식을 선보이는 샘플러 플레이트인 델리밀 정식, 완두감자수프, 여름 채소 라타투이, 오미자베리 에이드, 여름 샐러드(노란 플레이트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

예약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제철 메뉴. 델리 숍의 모든 음식을 선보이는 샘플러 플레이트인 델리밀 정식, 완두감자수프, 여름 채소 라타투이, 오미자베리 에이드, 여름 샐러드(노란 플레이트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

하지만 장진우식당의 잔상은 오래갔다. 요리 비전공자인 장진우 대표가 정성 들여 낸 용감한 음식들이 문득문득 생각났고, 책상과 혼연일체가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낼 때마다 숭고한 육체노동이 주는 묘한 개운함이 떠올랐다. 사업 확장을 준비하던 장진우 대표의 프러포즈 고사하기를 여러 번, 결국 감성이 이성을 이겼고 2013년 장진우식당에 정식 입사해 조리와 운영을 도맡았다. 요리 비전공자인 안아라 대표를 총괄 셰프로 발탁한 데에는 장진우 대표의 안목과 혜안이 있었겠지만(그리고 머지않아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혹독한 현실을 감내하는 것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눈뜨면 식당에 가고 집에 들어오면 요리책을 보다 잠이 드는, 그야말로 주경야독 생활이 반복됐어요. 매일 다른 메뉴를 만들어야 하는 장진우식당의 콘셉트에 부합하기 위해 당시 출간된 파이돈(Phaidon) 출판사의 쿡북을 비롯해 좋은 요리책은 몽땅 섭렵했고요. 몸이 퍽 고달픈 시절이긴 했지만 함께 일하는 재기발랄한 친구들 덕에 요리 인생에서 그때를 가장 뜨겁고도 신나게 보냈던 것 같아요.” 스테이크를 수백 장 굽고, 파스타를 수만 그릇 내면서 애써 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이 기억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냄새만 맡아도 맛이 가늠됐고, 스테이크의 탄성만으로 굽기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렇게 장진우식당에서 알차게 2년을 보낸 후 특유의 무모함으로 홈그라운드를 오픈해 요리사로서,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의뢰하는 소모임 식사 준비를 시작으로 숍 오프닝 케이터링 등 소소한 출장 요리가 점점 입소문 나면서 자연스럽게 홈그라운드의 음식은 문화예술계의 틈새로 흡수됐다.

담담하면서도 담대한 안아라표 델리

1 다채로운 홈그라운드의 델리 메뉴. 두릅 죽순 아스파라거스 초절임, 머위땅콩 볶음된장, 주꾸미 꼴뚜기 방울토마토 오일 절임, 믹스베리 콩포트, 라임바질 마요네즈, 방아 페스토(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2 당근감자 커리 퓌레와 하귤 드레싱의 토마토 참외 마리네. 3 델리 숍의 효자 상품인 곶감말이. 4 식물성 오일을 사용해 만든 담백한 블랙올리브 스콘.

1 다채로운 홈그라운드의 델리 메뉴. 두릅 죽순 아스파라거스 초절임, 머위땅콩 볶음된장, 주꾸미 꼴뚜기 방울토마토 오일 절임, 믹스베리 콩포트, 라임바질 마요네즈, 방아 페스토(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2 당근감자 커리 퓌레와 하귤 드레싱의 토마토 참외 마리네. 3 델리 숍의 효자 상품인 곶감말이. 4 식물성 오일을 사용해 만든 담백한 블랙올리브 스콘.

홈그라운드는 현재 상시 오픈 공간인 델리 숍과 델리를 활용한 단품 식사를 맛볼 수 있는 예약제 식당을 운영 중이다. 애초에 출장 요리를 위한 작업실로 구한 공간이라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공간도 협소하지만, 지방에서도 알고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모든 메뉴에 채소를 폭넓게 사용해 동물성 재료를 먹지 않는 사람도 함께 어울려 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 “많은 분이 홈그라운드를 비건 식당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비건 옵션을 둔 식당이에요. 채소를 베이스로 요리를 하고 그 위에 동물성 식재료를 얹으면 처음부터 고기만 생각하고 만든 메뉴보다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낼 수 있거든요.” 실제로 홈그라운드는 비건이든 논비건이든 상관없이 맛과 영양, 간편함과 독창성을 가치로 두고 현대 한식 메뉴를 개발한다. 식물성 마요네즈, 한국의 나물을 이용한 페스토, 해산물로 만든 향신 오일 절임, 채소 절임, 샐러드 키트, 식물성과 동물성 재료로 각각 만든 패티와 디저트를 기본 구성으로 절기마다 제철식재료를 사용해 메뉴를 바꾸는 식이다.



메뉴를 개발할 때마다 안아라 대표가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은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면 좋겠다”이다. “식당 밥이 특별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고객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창업자에겐 기회가 많아지죠. 홈그라운드의 가치는 특별한 레시피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차리듯 모든 메뉴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요리사들의 마음가짐에 있어요. 저희의 성의를 알아주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고요.” 그래서인지 홈그라운드의 모든 메뉴는 매사에 들뜨지 않고 담담하며, 한편으론 무모할 정도로 담대한 안아라 대표와 꼭 닮아 있다. 이쯤 되니 기존 요리사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작년에 큰 위기를 겪은 후 다행히 올해부터는 안정화에 접어들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않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다만 10년이든 20년이든 늘 유쾌하게 꾸준히 새롭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에서 요리사로 취직한 것처럼 어떤 ‘사고’를 치는 순간이 또 오지 않을까요?”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하면서 일상이 달라졌고 외식 문화도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집단만큼 개인도 동일하게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 개인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에 대한 연구가 늘었고, 대규모 식당에서조차 어느 때보다 개인 손님에 더 집중하는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 장막이 완전히 걷히게 되더라도 우리 삶 속 깊숙이 파고든 이러한 가치 변화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홈그라운드 같은 작지만 옹골진 델리 숍이 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진 홍태식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