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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column

브랜드의 퀄리티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

#Identity Matter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2021. 01. 1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예전처럼 자유롭게 뉴욕을 왕래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더 많이 묻기 시작했다. 지금 뉴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금 뉴욕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뉴욕에서 많이 팔리는 것은 무엇인지.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질문의 기저에는 코로나19가 사라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우리는 지금, 제품 및 그와 관련된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범람(氾濫)의 시대에, 소비자에게 확실히 콘셉트가 전달되지 않는 브랜드는 성공에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브랜드의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의 정립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소비자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시장에서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다. 하지만 아무리 퀄리티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미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라면 그것 하나만으로 승부수를 띄우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다. 검증된 퀄리티를 부각시켜주기 위해서는 브랜드만의 감각과 감성이 감지되는 로고와 매력을 배가시켜줄 패키지 디자인이 필요하고,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상승시킬 광고 비주얼도 필요하며, 주목도를 높일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다. 이 각기 다른 어프로치들을 일관된 목소리로 통합해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정립되면 이를 기반으로 충돌할 것만 같던 여러 어프로치들이 때론 융합하고 때론 소통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명확한 아이덴티티 정립을 위해선 기획 단계에서부터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특히 패션이나 뷰티 같은, ‘이성’만큼이나 ‘감성’의 역할도 중요한 마켓에서는 동일 카테고리의 다른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유무가 성공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2006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출범한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바이레도가 짧은 시간 안에 향수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니치 퍼퓸의 강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바로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정립’이 큰 힘을 발휘했다. 

바이레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창립자인 스웨덴 출신 벤 고햄은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 잠깐의 트렌드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100년 후에도 트렌디한 브랜드로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네이밍(Naming)’에 공을 들였다. 그는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감지되면서도 그 브랜드만이 가진 유니크한 감성 또한 스며들어 있는 ‘레덜런스(Redolence)’라는 단어에 착목했다. 단순히 ‘향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기억과 연관된 향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Redolence’에 ‘By’를 조합해서 탄생시킨 ‘Byredo’라는 네이밍은 ‘향기에 의한’이라는 문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줄임말이 주는 모던함과 유니크함이 느껴진다. 

벤 고햄은 브랜드 네이밍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어울리는 폰트(서체)의 개발도 함께 진행했다. 로고 디자인과 달리 폰트 개발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발렌시아가, 지방시, 질 샌더, 로에베, 디올 옴므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광고 비주얼을 제작했던 파리 베이스의 명망 높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M/M에 바이레도만을 위한 폰트를 의뢰했고, 그렇게 탄생한 폰트는 현재까지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비전을 그대로 표출하는 상징이 되었다.


당신이 소비하는 브랜드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한다

이케아와 바이레도의 협업으로 탄생한 캔들 컬렉션.
가운데가 바이레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햄이다.

이케아와 바이레도의 협업으로 탄생한 캔들 컬렉션. 가운데가 바이레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햄이다.

아트를 사랑하고 모던함과 세련됨을 잃지 않으며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유니크한 세계관이 느껴지는 바이레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구성 제품 하나 하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단순히 향기로서가 아닌 기억이 스며든 공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제품명을 탄생시켰다. 또한 브랜드의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엄선된 비주얼은 향수를 구매하는 소비자뿐 아니라 패션 피플까지 열광시킬 만큼 충분히 감각적이었고, 향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패션 브랜드 못지않은 마니아들을 확보하게 됐다. 유명 패션 브랜드 매장과 쇼룸에는 어김없이 바이레도의 향초가 켜져 있고 화장실에 바이레도의 핸드 워시가 비치돼 있으며, 바이레도를 쓰는 것은 감각적이며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브랜드 로고를 필두로 폰트의 배열이나 배치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은 물론이고 제품 전반의 분위기까지, 바이레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은 카피캣 브랜드를 배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바이레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향수 시장뿐 아니라 뷰티와 패션 시장 전반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얼마나 

그 브랜드를 강력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고, 또한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어느새 바이레도는 단순히 향수 브랜드를 넘어서 의류, 가방, 주얼리 라인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계속 도전을 진행 중이다. 같은 스웨덴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IKEA)의 향초 프로젝트도 맡아 3년여의 개발 끝에 곧 발매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이케아가 브랜드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던 향초의 대대적인 리뉴얼 파트너로 바이레도를 택한 것은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 이전의 1차원적이었던 향초의 향과 패키지가 새로운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며 변모하게 된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크다. 

또한 얼마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국 출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사마야 프렌치와는 브랜드 론칭 이후 처음으로 메이크업 라인도 출시했다. 메이크업 라인의 패키지 디자인은 기존 바이레도 제품들의 심플하고 모던한 패키지와는 다소 다른 느낌도 들지만, 바이레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이런 이질감이 유니크함으로 느껴지게 하는 설득력을 가졌다. 아마도 그 설득력의 원천은, 론칭 이후부터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통일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수해 온 시간과 고집의 산물일 것이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 답이다. 

그 기본에 충실하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정립이다. 코로나 시대이든, 코로나가 사라진 시대이든 그것이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제일 정확한 방도이고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바이레도의 성공이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기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려한 기술부터 구사한다면, 분명 금방 밑천이 드러나게 될 테니까.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사진제공 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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