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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전날도 작품 남겼다” ‘라이브 드로잉’ 대가 김정기 작가 별세

SK·송민호 협업으로 유명…향년 47세 “누구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작가”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입력 2022.10.06 16:40:30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재 한국만화 기획전에서 드로잉 쇼를 선보이고 있는 김정기 작가.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재 한국만화 기획전에서 드로잉 쇼를 선보이고 있는 김정기 작가.

“역사상 이런 작가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즉흥적이고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김현진 슈퍼애니 공동대표)

밑그림 없이 앉은 자리서 일러스트를 그려나가는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 김정기(47. 슈퍼애니 공동대표)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10월 3일 저녁(현지 시간) 별세했다. 고인은 지병으로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나 꾸준한 약물치료와 운동·식단관리로 최근까지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김 작가는 9월 15일~10월 8일 열린 프랑스 파리 개인전 등 유럽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10월 2일 파리 생제르맹FC 축구 경기 전 드로잉 행사를 마친 김 작가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미국 뉴욕 코믹 콘 행사 참석을 위해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 도착 후 심장에 이상 증세를 느낀 그는 공항 응급센터를 찾았고 급성 심근경색 판정을 받았다. 응급조치를 마치고 파리 외곽 북동부 지역의 한 공립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김 작가는 2001년 KTF 간행물 ‘Na’로 데뷔했다.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라이브 드로잉 쇼를 선보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SK이노베이션 광고 ‘혁신의 큰 그림(Big Picture of Innovation)’으로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기업 비전을 밑그림 없이 큰 도화지에 그리며 역동적으로 풀어낸 것. 그는 이 광고를 시작으로 본격 유명세를 타면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블리자드 등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도 이어갔다.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사랑채 기획 전시에도 참여해 이목을 끌었다.

“응급센터 잠시 의식 있을 때도 행사 불참 미안해 해”

그는 작고 직전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왔다. 파리 생제르맹 FC 드로잉쇼 작품은 그의 유작이 됐다. 고인의 이번 유럽행에 동참했던 김현진 대표는 “워낙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그날(사망 전날) 숙소에 돌아와서도 낙서를 몇 작품 남겼다. 평소 김 작가는 힘든 일을 마치고 나서도 그림을 그리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김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작품 활동에 있어 든든한 동반자였다.



지난해 ‘김정기, 디아더사이드’ 전시를 기획한 롯데뮤지엄 관계자 역시 “항상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작업하시던 고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관람객들과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셨고, 일러스트 작업을 무척이나 의미 있게 생각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항상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작가였다. 사실상 작품이나 다름없는 그의 사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다음은 김현진 대표가 전한 일화다.

“김 작가에게 ‘행사 시간이 촉박할 땐 사인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고 했더니, ‘책 사인할 때는 아무도 뭐라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동하는 6시간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날 처음 다툰 것 같다. 샤를드골 공항 응급센터에서 잠시 의식이 있을 때도 뉴욕 행사에 불참하게 된 걸 미안해했다.”

김 작가는 10월 3일 사망했지만, 사망 소식은 10월 5일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유족이 프랑스로 이동해야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0~11일 경 프랑스 현지에서 화장 절차를 밟고 이동 허가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한국에서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사진제공 뉴스원




여성동아 2022년 10월 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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