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joelkimbeck_kaleidoscope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친애하는 K-Beauty에게

Joel Kimbeck

2017. 07. 11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미국에서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절대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임을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만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 위에 전구 마크가 나타나 반짝하고 불이 켜질 만큼의 새로운 발상이나, ‘왜 그걸 미처 몰랐을까’ 하고 이마를 탁 칠 만큼의 반전이 숨어 있는 번뜩이는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애초에 그런 마법 같은 해결책이 존재했다면, 모두가 그리 어렵지 않게 미국이라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아마도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에 우문(愚問)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질문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건 현답(賢答)과는 거리가 먼,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혹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냐고.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잘못된 판단을 해서, 지금까지 온 것은 아니냐고.

지난 4월 말 나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2017 동아 K-뷰티 미래 포럼’에 강연자로 초청받아 한국의 뷰티 업계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브랜드들의 사례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 포럼에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고 국가의 큰 기간 사업의 하나로까지 거론되는 한국 화장품 산업 전반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K-뷰티 제품의 높은 기술력에 대한 정보는 물론 화장품 산업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과 해외 수출입 관련 다양한 안내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브랜드의 컨설팅과 디자인 그리고 광고 및 홍보를 위한 비주얼 제작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뷰티 제품의 기술력이나 새로운 성분 등에 대한 부분보다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즉 제품의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부터 브랜드를 받쳐 주는 스토리와 브랜드를 대변하는 비주얼 등에 포커스를 맞추어 강연을 했다.

한국의 뷰티 브랜드들이 해외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전부가 뭉뚱그려져서 K-뷰티라고 불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또 브랜드 중에서 해외, 특히 미국 시장에서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성분이 좋고 효과와 효능이 뛰어난 제품이라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브랜드가 정확히 인지되지 않는 이상,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발현될 기회조차 제공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리딩 브랜드들은 매 시즌 발매하는 새로운 제품군의 홍보와 함께, 소비자들에게서 브랜드가 소원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고 재정비하는 데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미 많은 한국의 패션 브랜드와 뷰티 브랜드들이 전 세계 트렌드의 중심지이며 패션 및 뷰티 산업의 최대 격전지라 불리는 뉴욕에 출사표를 내고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어느 한 브랜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것도 어쩌면 한국 브랜드의 제품력이나 기술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 뉴욕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충성도를 높여줄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구축되지 못한 것이 큰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는 뷰티 산업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뉴욕은 ‘살아남는 자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의 많은 패션과 뷰티 브랜드들이 뉴욕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진출을 꾀했지만, 처음 진출했을 때의 포부를 뒤로하고 철수를 결정한 사례를 수차례 보아왔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그저 좋기만 한  것’으로는 격전지인 뉴욕 시장에서 확실한 성과를 낼 수가 없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거기에 내가 관여해서 진행한 한국과 뷰티 브랜드의 얼개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일본, 스웨덴, 뉴욕 등에 근거지를 둔 기업들이 브랜드 개발 때부터 확고하게 아이덴티티들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한국 뷰티 브랜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세우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브랜드의 색깔 분명한 제품만 과감히 편집하는 전략은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야 한다. 범람(氾濫)이라는 말 그대로, 제품과 제품 관련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확실하고 명료하게 그 콘셉트나 콘텐츠가 전달되지 않는 제품은 자멸의 길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제품력이 우수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해내는 우수한 패키지까지 갖추어졌지만, 제품의 셀링 포인트를 확실히 짚어내는 스토리텔링을 전개해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채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결국 제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퀄리티이겠지만, 이미 다양한 제품들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확실히 소비자들에게 각인되기 위해 제품력 하나만을 내세우는 것은 위험천만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퀄리티를 뒷받침할 수 있는 패키지, 제품의 텍스처 혹은 제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 히스토리를 포함한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토리, 또 구매 욕구를 최고조로 북돋아 주는 광고와 매거진 화보 등 비주얼 메이킹까지. 이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합창단처럼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하나의 제품이 복잡다단한 사고를 지닌 인간을 최종적으로 구매라는 단계까지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소비욕을 발현시키는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접근 방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탁월한 제품력뿐만이 아닌 제품이 가진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사전에 구축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한 사람에게 진정 브랜드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역으로 묻는다.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되돌아와서 제대로 된 길을 가야 할 것이며, 만약 아직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잘 준비해서 올바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진출하기 전에 그 마켓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브랜드 자체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뷰티 시장에서 성공한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단 하나도 잘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라는 곳은 여러 가지를 두루두루 적당히 잘하는 것보다 특별히 잘하는 한 가지를 더욱더 인정해주는 사회이기에, 뷰티 브랜드 역시 한국에서는 원 맨 밴드처럼 모든 장르의 제품을 출시하는 브랜드이더라도 미국 시장에서는 브랜드 고유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제품군만으로 과감히 편집해보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미국 시장에서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 확실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면, 그저 그런 K-뷰티가 아니라 정확한 브랜드명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브랜드 컨설팅과 광고 만드는 일을 한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제공 조엘 킴벡 디자인 최정미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