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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overstory

유니크하게, 유난희답게.

editor_fashion 최은초롱 기자 editor_interview 정희순

2016. 12. 27





‘날씨가 쌀쌀해요. 단단히 차려입고 나오세요. 곧 뵙겠습니다.’

약속 시간 한 시간 전, 쇼핑호스트 유난희(52)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개 이런 종류의 살뜰함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에디터의 몫이다. 처음 만나는 인터뷰이와 서먹함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하는 일종의 물밑 작업이랄까. 고백하자면, ‘만나보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던 에디터의 철칙은 그녀의 ‘기습 문자’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그녀가 텍스트로 전한 ‘온기’ 때문이다. 유난희에게는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집 언니 같은 편안한 매력이 있었다. 질문을 하나 던지면 그녀는 10분가량 이어지는 긴 대답을 내놓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화법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천생 쇼핑호스트, 아니 영락없는 이야기꾼이었다. 

홈쇼핑 업계에서 유난희의 이름 석 자가 가지는 파워는 엄청나다. 국내 쇼핑호스트 1호, 업계 최초 1분당 매출 1억원 돌파, 첫 화장품 모델 쇼핑호스트, 억대 연봉을 받은 쇼핑호스트 1호,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쇼핑호스트 1호…. 이 모든 게 그녀를 가리키는 수식어들이다. 눈치챘겠지만, 공통점은 모두 ‘최초’라는 말이 붙는다는 거다.



“‘최고’라는 말보다 ‘최초’라는 말이 좋아요. 최고는 언젠가 뒤집힐 수도 있는 기록이지만, 최초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잖아요. 저는 다른 쇼핑호스트들이 진행하는 방송은 일부러 더 안 보려고 해요. 저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될까 봐요. 유난희의 정체성이 무어냐고 물으면 저는 ‘유니크’라고 말해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거,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거. 결국엔 제가 도전해서 이루어낸 일이 홈쇼핑의 새로운 길이 되더라고요.” 

그녀가 쇼핑호스트 일을 시작한 지도 올해로 꼬박 22년째. 유난희가 메인 호스트로 활약 중인 CJ 오쇼핑의 간판 프로그램 <유난희 쇼>는 지난 12월 6일 1백 회 방송을 맞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이니만큼 여기에 쏟는 그녀의 애정도 각별하다. ‘유니크’함을 추구하는 유난희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제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공연, 뮤지컬, 여행 등과 같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도 직접 읽어준다. 얼핏 보면 홈쇼핑이라기보다 꼭 토크쇼 같다. 화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유난희 쇼>는 케이블 채널 전체를 통틀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판매율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4050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훔친 셈이다. 1백 회를 이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리마인드 웨딩’ 이벤트를 꼽았다. 엄마이자 아내로만 살아온 여성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벤트다. 물건을 잘 파는 것만이 홈쇼핑의 목표였던 시대는 지났다. 고객과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홈쇼핑의 전설’ 유난희가 생각하는 홈쇼핑의 미래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유난희 쇼〉 1백 회를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사전에 공지를 내보냈는데, 이벤트 진행에 차질이 생겼음을 방송 직전에 알게 된 것이다. 당초 기획은 방송에 소개된 어떤 제품이든 구매한 고객 모두에게 작은 캔들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방송 시작 30분 전, 제작진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며 “특정 제품을 구매한 사람에게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유난희가 나섰다. “다 똑같은 고객인데 누구한텐 선물을 주고, 누구한텐 못 준다는 게 말이 돼요? 그거 내가 낼게요.”

“제가 그 말을 하니까 다들 입을 떡 벌리고는 아무 말도 못하는 거예요. 제작팀 막내는 달려와서 ‘언니, 그게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 그러세요’ 하면서 말리더라고요. 그런데 전 확고했어요. 20년 넘게 쇼핑호스트로 생활하면서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게 고객과의 신뢰였으니까요.”

결국 회사 차원에서 일이 잘 해결되면서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이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유난희가 덜컥 나섰다는 일화는 업계에 한동안 회자됐다. 그녀의 배짱은 30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한번은 구김이 잘 가는 마 소재의 옷을 팔면서 이런 멘트를 했단다. “여러분, 이 옷 되게 시원해요. 그런데 구김이 많이 가서 다려 입으려면 고생 좀 할 것 같아요. 기회비용 잘 따져보고 사세요”라고 말이다. 제작진의 얼굴은 사색이 됐고, 방송 후 유난희는 사장실로 불려갔다. 왜 그런 멘트를 했냐고 타박하는 사장님에게 “거짓말로 팔면 다 반품 들어와요. 정확히 알려드려야죠”라고 대꾸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사장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알았으니 나가봐” 하고 말했다. 이튿날 사내 곳곳에는 ‘정직하게 말합시다’라는 포스터가 붙었다.

“원래 제 성격이 과장을 못 해요. 제 오랜 팬들은 잘 알죠. 가급적 제 성에 안 차는 상품은 아예 맡지 않으려고 하는데, 간혹 어쩔 수 없이 도맡아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멘트가 참 형식적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 그럼 당연히 결과도 안 좋을 수밖에 없죠. 그건 해당 업체에게도, MD에게도, 제게도 슬픈 일이에요. 차라리 궁합이 잘 맞는 다른 쇼핑호스트와 함께 작업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봐요.” 

하기야 유난희를 거쳐 간 제품이 어디 한둘일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명품 전문 쇼핑호스트’로 활약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좋은 제품을 선별하는 유난희의 기준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깐깐한 건 당연한 결과다.

“꼭 스펙이 화려한 제품만을 명품이라고 보지 않아요. 가격이 비싼 물건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좋다고 느끼는 물건이 명품인 거죠.”

당장의 화려함에 취하기보다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유난희의 취향은 쌍둥이 아들 둘을 키우는 데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2014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모두 수능에 응시하지 않았다. ‘대학은 나중에 얼마든지 갈 수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게 엄마 유난희의 생각이었다. 

“수능 날, 아이들과 함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데이트를 했어요. 참 특이하죠? 요즘 큰아이는 운동도 하고, 보컬 레슨도 받고, 그림도 그리면서 지내요. 남들 보기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웃음). 작은아이는 몇몇 CF 광고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프리스타일 농구팀 소속 선수예요. 요즘엔 음반도 내보고 싶다면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아이들을 학원 한번 보내본 적이 없다. “앞으로는 꼭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다. 그러니 꿈을 찾는 것에만 집중해라.” 엄마 유난희가 두 아들에게 전한 말이다.

“싸구려 물건에 명품 라벨을 붙였다고 해서 명품이 될 수 없듯이,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명품이 될 수는 없어요. 중요한 건 안에 담겨 있는 가치예요. 마음속에 따뜻함을 품고 있는 사람이 진짜 명품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날씨가 쌀쌀하니 단단히 차려입고 나오라’던 그녀의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열어 봤다. 명품 골라주는 여자 말고, 스스로가 명품인 여자 유난희였다.


사진 김외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시스템(02-546-7109) 엠스웨그(02-3444-1349) 엠주 소니아리키엘(02-3446-7725) 지고트 지컷 에잇세컨즈(02-6911-0796)커밍스텝(02-6911-0829) 타임(02-3444-1709)
헤어 이민이(에이바이봄)
메이크업 김미소(애브뉴준오)
스타일리스트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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