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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력 보존하면 난임 예방은 물론 극복도 가능합니다”

난임 치료 전문의 제일병원 박찬우 교수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지호영 기자 | 디자인 · 박경옥

2016. 07. 05

피임을 하지 않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인 ‘난임’ 부부의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더불어,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태아 건강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난자동결’과 ‘배아동결’을 통해 가임력을 보존하면 난임 예방은 물론 극복도 가능하다는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의 박찬우 교수를 만났다.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학적으로 ‘난임’이라 한다. 난임은 아시아 부부 10쌍 중 한 쌍, 한국에서는 약 7쌍 중 한 쌍이 겪고 있는 문제다. 난임으로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인원도 2006년 17만8천 명에서 2014년 21만5천 명으로 20%가 늘었으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가운데 30대 난임 진료 인원은 2011년 13만6천5백69명에서 2013년 14만2천5백70명으로 4.4%가 늘었다.  
 
이들이 난임으로 겪는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 자료를 보면, 체외수정 시술자의 67.6%, 인공수정 시술자의 63%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임은 여전히 오해와 정보 부족, 사회적 분위기, 개인적인 치료 장벽으로 인해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난임 전문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의 박찬우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는 이처럼 최근 난임 인구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여성의 배란 장애나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 외에도 현대인들이 겪는 스트레스나 환경호르몬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경우에도 스트레스 등으로 성욕이 감퇴하고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난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수정과 착상이 잘되고, 수정란 역시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임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타이밍’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의학적으로는 결혼 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한다는 가정 아래 약 1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을 난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30대 중후반을 넘어선 부부라면 6개월 정도만 임신이 되지 않아도 난임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가임력은 30대 초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30대 후반부터 급격히 줄어드는데, 최근에는 20대에도 난소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져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따라서 결혼 전후, 병원을 찾아 자신의 난소 기능과 난소 나이를 체크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난임 치료와 예방은 가임력 보존이 우선 

환경적 유해 요소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 등 항산화 물질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난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방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난임을 극복할 수 있을까?  
 
성인 여성의 경우 배란을 위해 여러 개의 난포가 동원되고 이 가운데 하나의 난포가 선택되어 배란되는 사실을 역이용하면 난임 예방과 동시에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가임력 보존’이라는 최신 의료 기술이다.
 
‘가임력 보존’이란 가임능(임신 가능한 생식 능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암이나 기타 질병의 치료에 앞서 의학적 시술로 가임능을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결혼과 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본인의 건강이나 사회경제적 여건상 가장 건강한 상태의 난자로 임신할 수 없는 경우 난자냉동보존, 배아냉동보존 등의 가임력 보존 방법을 고려해봄직하다.  
 
박 교수의 전문 분야인 ‘난자동결’과 ‘배아동결’은 가임력 보존을 위한 가장 최신의 검증된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최근에는 난자 혹은 배아를 보다 효과적으로 동결할 수 있는 ‘유리화동결법’이 개발되어 임신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난자동결은 난소에서 다수의 난자를 획득하기 위해 과배란 유도제를 주사한 후 난자를 채취, 성숙 난자를 동결 보존하는 방식이다. 향후 임신을 시도할 경우 동결 난자를 융해해 정자와 체외수정시킨 다음 배아를 이식한다. 난자 융해 후 이식 주기당 임신 성공률은 약 40%로, 임신 성공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난자의 동결 당시 나이다.  
 
최근에는 결혼 후 임신과 출산을 계획할 수 없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미혼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서도 ‘성숙난자동결’을 통해 난자를 보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젊고 건강한 시기의 난자를 보존해두면 결혼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보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숙 난자를 이용한 동결은 과배란을 유도하지 않고 미성숙 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성숙시킨 후 동결하는 것으로, 생리 주기와 무관하게 시행할 수 있어 항암 치료 등이 임박한 경우에도 효과적이다. 폐경 이후 동결 난자를 이용해 임신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배아동결’은 난임 환자에서 시험관아기 시술 후 잔여 배아를 동결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방법. 시험관아기 시술에 준해 생리 시작 후 2~3일째에 과배란 유도 주사제를 투여, 다수의 난자를 채취한 후 체외에서 정자와 수정시킨 배아를 동결하는 것이다. 과배란 유도 주사제 투여부터 난자 채취까지 약 2주가 소요되며, 최근에는 생리 주기에 관계없이 과배란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 난임 치료의 길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 실험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사춘기 이전의 여성 암 환자나 소아암 환자에게도 ‘난소조직동결’ 방식으로 항암 치료 이후의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난소조직동결은 난소 조직 자체를 떼어내 동결하는 방식으로, 난소 조직에서 채취한 미성숙 난자를 체외에서 성숙시켜 추가로 동결하기 때문에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난소 조직을 얻기 위해서는 복강경 수술이 필요하다.
 


암 환자에게도 임신과 출산의 길 열려 

난임 환자의 절박한 심정에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난자·배아·난소 조직의 동결 방식 개발로 가장 큰 수혜를 입고 있는 사람은 암 환자들이다. 실제로 난소 기능을 현격히 떨어트리는 항암 치료제가 있어 예전에는 항암 치료로 인해 임신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유방암 등 여성 암 진단 직후에도 가임 보존 수술을 실시해 시험관아기를 출산하는 등 긍정적인 사례가 많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난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데는 병원 내에 구축된 선진화된 협진 시스템도 크게 한몫한다. 박 교수가 지적한 대로, 최근의 성공 사례는 암 전문의와 난임 전문의가 각자의 입장에서만 환자를 바라보지 않고 환자에게 필요한 시술과 조치를 다각적인 방법으로 고려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또한 주산기(아이의 출생 전후 시기로, 임신 28주부터 생후 1주일 사이) 전문의와의 협진을 통해, 연령대가 높은 고위험군 산모의 난임 치료 이후 임신과 출산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도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가임력 보존을 위해서는 협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 스스로 자신의 가임력을 점검해보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20대, 피임이 필요한 연령이라면 피임 전 가임력 평가를 먼저 해보는 것이 향후 혹시 모를 난임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박 교수는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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