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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양천구청장

동네마다 도서관 짓고, 엄마는 방과 후 선생님으로 ‘교육 1번지 맞춤형’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 디자인 · 유내경

2016. 05. 02

서울 양천구에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경력 단절 주부들이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에 매몰됐던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하고 있는 것.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생겨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양천구에서 학생으로, 엄마로, 주부로 30년 이상 살며 더 나은 삶을 고민해온 김수영 구청장이 가져온 변화들이다.



달빛마을, 고운달, 해맞이, 고운맘, 호롱불, 공감쉼터. 이 정감 넘치는 단어들은 서울 양천구에서 추진하는 1동 1작은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 탄생한 도서관의 이름이다. 김수영(52) 양천구청장을 만난 곳은 신정2동의 호롱불 작은 도서관. 기존의 좁고 잘 쓰지 않던 주민센터 2층을 개조해 만든 30평 규모의 아늑한 도서관에는 고전과 동화책, 실용서 등 다양한 서적 7천5백 권이 비치돼 있다. 아이들이 신발 벗고 올라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아열람실, 토론이나 회의가 가능한 테이블 등도 마련돼 있다. 엄마와 아이가 손잡고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생기자 주민들의 삶도 바뀌었다. 엄마들은 커피숍 대신 도서관에서 모이기 시작했고, 주말엔 가족이 함께와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소음과 분진 때문에 민원의 온상이었던 고물상이 있던 자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세워 만든 공감쉼터북카페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1동 1작은 도서관 사업은 김수영 구청장이 그리는 양천구 미래상의 시작점이다. 양천구 중에서도 목동은 강남과 더불어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숨 쉴 여유가 없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수영 구청장은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해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받는 공교육 모델을 만들어내는 혁신교육지구 유치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지난해 혁신교육지구를 유치하려고 했을 때 ‘명문대학 진학률도 높은 양천구에서 왜 굳이 그런 걸 하느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혁신 교육입니다. 목동을 중심으로 과열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됐을 뿐 좀 더 들여다보면 양천구의 공교육 여건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공교육 활성화를 통해 지역 내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진학이 아닌 진로 중심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한 체험을 통해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양천구 교육 정책의 핵심이다. 특히 주부들을 방과 후 교사로 양성해 아이들에겐 다양한 진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마을방과후강사 양성 과정은 구민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경단녀에겐 일자리를, 아이들에겐 진로 체험 교육 제공

“1백20시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어요. 연극 연출을 하셨던 분, 미술을 전공하신 분, 잘나가는 수학학원 강사였던 분, 증권사에서 일하셨던 분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올해부터는 이분들이 작은 도서관 등에서 직접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분들이 짜온 강의계획서를 봤는데 전공이 다양한 만큼 자연스럽게 융합 교육이 이루어질 것 같더라고요. 열정과 아이디어도 풍부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진로 교육의 모델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구청장은 종종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 비유된다. 남편에 이어 대통령에 도전하는 힐러리처럼 그도 남편 이제학 전 구청장에 이어 양천구의 구정을 맡고 있다. 하지만 힐러리와 그는, 누구의 아내라고 불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풍부한 정치적 연륜과 내공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더 닮았다. 김 구청장은 남편 이제학 전 구청장이 2011년 선거법 위반으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후 치러진 보궐 선거에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하고, 2014년 민선 6기 구청장에 재도전해 당선됐다. 그가 보궐 선거에 나섰을 땐 남편의 아바타니, 한풀이를 위해 나왔다느니 말이 많았지만, 이는 김수영 구청장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해였다. 김 구청장은 문학평론가를 꿈꾸며 대학에 입학했지만 군부 독재의 현실과 마주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며 여러 차례 구속됐고, 이후에는 여성가족부 여성희망일터지원본부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 여성특보, (사)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 이사, 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부소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왔다. 또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양천구에서 학생으로, 주부로, 학부모로 살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고스란히 정치적 자산이 돼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2014년에 서울시 주최 송년회 자리가 있었는데, 남편의 명패가 ‘양천구청장’에서 ‘양천구청장 부군’으로 바뀐 걸 보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2011년 보궐 선거에 나섰을 땐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양천구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 컸거든요. 남편이 전임 구청장이라는 점이 가끔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양천의 발전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부부에게 그 꿈을 위해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양천구 하면 전통적인 부촌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목동과 비목동 지역 간의 소득이나 생활수준 격차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이루고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이 지자체에 주어진 주요 과제다. 김수영 구청장이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두고 한 일이, 딱한 사정에 처해 있음에도 법적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발굴해 민관이 협력해 도움을 주는 ‘양천형 찾아가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목동의 교회가 신월동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동네 미용실에서는 무료 커트를, 치과병원에서는 무료 정기 검진을 해주는 식이다.

“제가 30년 전 양천구에 처음 이사 왔을 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지만 복지나 여성의 사회 진출 분야 등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구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양천구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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