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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태영호 아내 오혜선 “김일성 일가의 운명이 나의 운명인 줄 알았다”

김현미 기자

2023. 02. 21

한국에 온 지 7년. 북한에서 특권을 누리며 살았으면서 어떻게 감히 북한을 배신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오혜선 씨는 이렇게 말한다. “북한에는 김 씨 일가를 제외한 특권 향유자는 없어요. 노예가 되어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건너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주영 북한대사관 넘버 2 태영호 공사·가족 망명’ ‘첩보전 방불케 한 태영호 가족 망명 작전’ ‘북 외교관 태영호, 가족과 함께 한국 입국’. 2016년 대한민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군 북한 외교관 일가족 망명 사건의 주인공은 태영호였다. 2년 뒤 북한 외교관의 삶과 북한 체제의 허상을 폭로한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을 써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고, 다시 2년 뒤에는 제21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갑)에 당선됐다. 한국에 와서 가장 성공한 북한이탈주민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태영호를 떠올렸다.

반면 함께 온 아내 오혜선 씨와 두 아들 주혁·금혁 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지난 7년의 침묵을 깨고 오혜선 씨가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더미라클)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남편이 국회의원이 된 지 어언 3년이 되어오는데 그동안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부정적인 시선도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배신자, 변절자, 심지어 간첩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왜 우리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대부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시고 갑자기 한국 사회에 ‘뚝’ 나타나서 국회의원까지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남편이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해도 본인 말을 누가 듣겠어요. 아, 이것은 아내인 내 몫이구나 생각했죠.”

김일성 일가의 운명이 나의 운명인 줄 알았다

태영호 의원의 아내로 살아온 오혜선 씨가 탈북 7년 만에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더미라클 출판사)를 출간했다.

태영호 의원의 아내로 살아온 오혜선 씨가 탈북 7년 만에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더미라클 출판사)를 출간했다.

1966년생인 혜선 씨는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항일 빨치산 가문’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성장기를 보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등장하는 여성 빨치산 출신 할머니,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을 지낸 아버지, 김일성 일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호위총국에서 검식준의(식사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관)로 일했던 어머니까지 대대로 흠잡을 데 없는 가족사였다.

특히 셋째 할아버지 오백룡(본명 오수현)은 김일성의 최측근으로 호위총국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을 역임했으며 한때 그의 큰아들이 공군사령관, 작은아들이 해군 정치위원을 지내 오 씨네가 북한군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혜선 씨는 부러울 것 없었던 그 시절을 이렇게 기록한다.



“빨치산 가문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나의 평생 운명인 줄 알았다. 그리고 김일성 일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고 믿었다.”
-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에서

1976년 8월 혜선 씨 가족이 관용차인 볼보 승용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함경남도 속후(북청)의 군 휴양소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장면은, 그 시절 남한의 중산층 가정과 다를 바 없었다. 바닷가에서 어른들은 낚시를 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거나 조개껍질을 줍고, 큰 솥을 걸어 어죽을 쑤어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비상소집 명령이 떨어지면서 일가족은 휴가를 중단하고 평양으로 복귀했다.

혜선 씨는 훗날 그것이 판문점에서 벌어진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북한군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면서 무력 충돌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어쩌면 제2의 한국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어린 혜선은 밤을 새워 피란 배낭을 꾸리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공식적으로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추월한 시점은 1974년이다. 바꾸어 말해 그 이전까지는 통계상 북한이 더 잘살았다. 김일성의 사과로 일촉즉발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체제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김일성 정권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는 50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일성의 고향 만경대에 위치한 인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며 혜선 씨는 조선소년단에 입단했다. ‘원수님의 길을 따라 힘차게 나가자’는 조선소년단 행진가를 부르는 소녀의 심장은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불타올랐다.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외국어학원(외국어 전문 중등교육기관) 영어과에 진학했다. 북한에서 ‘대외 부문 일군’이 되려면 평양외국어학원을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국제관계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중 한 곳에 진학하는 것이 엘리트 코스였다. 당연히 학원의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 실력뿐 아니라 가정환경, 재력도 좋아야 입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오백룡 가족이야? 오백룡 일가야?’라고 부를 때마다 정말 내가 특별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학원에 다닐 때 권력을 누리다가 부모님들의 죄 아닌 죄로 없어지는 애들을 보면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권력이 무섭더라고요. 학원이 6년 과정인데 졸업할 무렵 1학년 입학 때 만났던 아이들 가운데 평범한 집 애들은 대부분 남아 있지만 간부 집 자녀들은 거의 다 없어졌어요. 딱 1명 남았더라고요. 김 씨 패밀리. 김일성 5촌 조카만 있었어요.”

아무도 그 친구들이 왜 사라졌는지 묻지 않았고, 물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의 불행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애써 외면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삼수갑산(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오지)으로 쫓겨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뼛속에 새겨졌다. 어른들은 ‘태양의 곁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고 너무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고 했다.

1987년 혜선 씨는 평양외국어대학 졸업을 앞두고 남편을 만났다. 단짝 친구 명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신랑감은 공화국 역사에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소년 유학생’ 출신에,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와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베이징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였다. 비록 간부 집안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북한에서 ‘만점짜리 신랑’이었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그해 10월 결혼했다. 남자가 근무하는 외무성과 여자가 근무하는 무역성은 김일성광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나란히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듬해 첫째 아들 주혁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신장증을 앓는 주혁이는 여섯 살이 될 때까지 혼자서 걷지도 못할 만큼 허약했다. 북한 의료 수준에서는 주혁이를 살릴 방법이 없었고 고기 1근 살 돈도 안 되는 남편 월급으로는 약값을 대기 어려웠다.

땅 위의 천국에서 첫째를 살리고 둘째를 얻다

1996년 4월 남편이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았다. 주혁이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간절히 바라던 해외 파견이었다. 덴마크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식이요법을 병행했더니 주혁이는 어느새 학교도 다니고 운동도 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큰아이가 어느 정도 회복되니 둘째를 낳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북한 외교관들은 자식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다. 대사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으니 조용히 둘째를 낳으라고 승인했다. 둘째 아들 금혁이가 태어났다. 덴마크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6개월까지 가정방문으로 건강검진을 해주고 애로 사항들을 해결해주었다. 혜선 씨는 땅 위에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 무렵 북한에서는 매일 끔찍한 아사와 기근 소식이 들려왔다. 북한은 땅 위의 지옥이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4년 반 만에 돌아온 평양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졌고 배급이 사라져 장마당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그럴수록 머지않아 실력만 있으면 잘 사는 세상이 올 거라며 사람들은 자식 교육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2004년 남편이 다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로 발령받았다. 혜선 씨는 런던 동남쪽에 있는 한인타운 뉴몰든을 방문해 식재료를 사고 한국 드라마를 빌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제일 처음 본 드라마가 ‘겨울연가’죠. 그 드라마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한국에 와서도 두세 번 더 봤어요. 지금도 다시 보라고 하면 새로운 감정으로 볼 것 같아요. 각박하게 살다가 ‘가을동화’ ‘파리의 연인’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따뜻한 감정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 나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지, 나도 언젠가는 저런 생활을 할 거야, 우리 애들도 언젠가는 저렇게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거야’라는 꿈을 꾸게 됐죠.”

외국에서 지낸 8년은 혜선 씨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복지제도는 사회주의국가의 전유물이라는 북한의 선동과 달리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무료교육과 무상 치료를 실시하고 있었고 혜선 씨 가족은 그 혜택을 온전히 누렸다. 심지어 평양 외교가에도 영국의 복지제도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런던은 외교관과 그 자녀들의 치료를 위한 파견지로 인식될 정도였다.

2008년 혜선 씨 가족은 다시 평양 생활을 시작했다. 유럽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창의성을 배운 아이들은 북한으로 돌아와 복종과 충성을 배웠다. 유럽에서는 행운아였던 아이들이 북한에서는 문제아가 됐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조건 참아라, 무조건 견뎌라”였다.

“자유와 민주주의 맛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겠죠. 인생은 자유를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로 딱 갈라지거든요. 북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능한 한 아이들이 자유를 몰랐으면 했지만 애들은 이미 어떤 말은 부모에게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알았던 거죠.”

혜선 씨는 곧 평양으로 돌아온 게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큰애가 평양의학대학에 입학한 뒤 날마다 돈을 달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선생님들이 교재니 시험이니 하면서 아이에게 매일 돈을 요구해요. 제대군인 학생들은 매점에서 주혁이 앞으로 외상을 달아놓았어요. 해외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편입생들이 약탈의 표적이 되는 거죠. 애는 엄마에게 이런 사정은 말하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돈, 돈’ 했어요. 직장 동료들에게 학교의 실상을 얘기했더니 아무도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오 동무, 그럼 그 교원은 어떻게 먹고살겠소? 월급도 없고 배급도 안 주지, 그 선생도 가족이 있으니 먹고살아야 할 게 아니오’라고 두둔하더군요. 둘째 금혁이는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녔는데, 간부급 자녀들이 선망하는 학교라 학생들의 배경도 대단하고 경쟁도 치열했어요. 어느 날은 패싸움을 벌여 머리를 맞고 들어오기도 하고 칼로 허벅지를 찔려서 피를 흘리며 오기도 하고, 모든 게 기괴했어요.”

2013년 남편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부임하면서 두 번째 런던 체류 기회가 왔지만 첫째 주혁이는 평양에 남겨두어야 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해외 파견 시 1명의 자녀만 동행이 허락됐다. 자식을 인질로 삼아 외교관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년 뒤 공화국 외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자 오 씨 가족에게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왔다. 외교관들에게 대학생 자녀를 본인 부담으로 외국에 데리고 나가 공부를 시키라는 김정은의 방침이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이과생들로 제한한다는 방침이었다.

자식들에게 노예의 삶을 물려줄 수는 없다

1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구갑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과 아내 오혜선 씨. 2 2021년 이화여대 북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오혜선 씨가 남편 태영호 의원과 기념촬영을 했다.

1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구갑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과 아내 오혜선 씨. 2 2021년 이화여대 북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오혜선 씨가 남편 태영호 의원과 기념촬영을 했다.

평양의학대학에 다니던 주혁이가 런던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오 씨는 북한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주혁이의 대학 졸업과 함께 북한 송환일이 가까워지자 선택의 순간이 왔다. 남편은 “당신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어머니가 보고 싶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나는 괜찮아. 부모님은 이미 떠나가셨고, 형제들은 평생 인생 막바지에 살았으니 고생을 견뎌낼 수 있겠지만 당신 형제들은 다르잖아”라며 재차 아내의 탈북 의지를 확인했다.
2016년 7월 북한 체제와 영원히 작별하는 순간 남편은 하염없이 울었다. 형제들과 친척들, 자기를 믿어준 지인들은 물론 인간으로서 지나온 모든 과거와의 작별이었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노예의 삶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결심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7년 동안 남편은 국회의원이 됐고, 혜선 씨는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큰아들 주혁 군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고, 둘째 금혁 군은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다. 혜선 씨는 한국에 와서 자유롭게 자기의 미래를 가꿔가는 두 아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한다.

#오혜선 #평양 #런던여자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뉴시스
사진제공 태영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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