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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 개정안, 우리 밥상엔 무슨 일이…“고품질 흰쌀밥·잡곡밥 가격 폭등, 세금 인상 우려”

문영훈 기자

2022. 10. 25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정기국회 7대 핵심 입법 과제로 내세우면서 국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우리 밥상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10월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골자는 정부가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택적으로 실시해왔던 쌀 공급 초과분 매입, 즉 ‘시장격리(쌀 매입)’를 객관적 조건만 맞으면 매년 의무화하겠다는 것. 정부와 여당은 “쌀 공급과잉이 심화하고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반대에 나섰지만,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쌀값 폭락으로 인해 농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단독 처리를 강행했다.

하지만 농업정책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을 촉진해 장기 관점에서 농가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품질 쌀 생산량이 줄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자급률이 낮은 다른 곡물의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쌀 공급과잉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쌀 소비량은 날로 줄지만 생산량 감소 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2011년 71.2kg에서 2021년 56.9kg으로 감소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연평균 2.2%씩 감소했으나 생산량은 최근 10년간 0.7%씩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쌀 농가가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는 등 각종 대책을 실시해오고 있다.

양곡관리법은 말 그대로, 양곡을 효율적으로 수급 관리하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제정됐다. 현행 양곡관리법은 정부가 시장상황과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쌀 매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 경우 시장격리에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시장격리의 실시 여부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셈. 문재인 정부는 2018~2020년 3년간 시장격리를 실시하지 않았다.

올해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9월 기준 20kg 쌀 가격이 지난해 동기 대비 1만 원 하락한 4만1000원 선에 거래되자 10월 초 쌀 45만 톤에 대한 시장격리 계획을 발표했다. 쌀을 매입해 쌀값을 지난해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민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현행법의 내용 중 시장격리에 대한 정부의 선택권을 박탈해버렸다. 양곡관리법 시행령을 통해 규정된 객관적 조건(쌀의 예상 수요량 3% 초과, 쌀 가격 5% 이상 하락)이 만족되면 재정 여건이나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정부가 무조건 시장격리에 나서야 하는 것. 정부와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해 대통령의 서명 절차를 마치면 정식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저렴한 쌀밥 못 먹고, 잡곡밥 가격 상승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과연 민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우리 밥상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우선 쌀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거나 올라가지 않아 저소득층에게는 보다 싼 가격에 흰쌀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쌀 가격이 5%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시장격리에 바로 나서 가격을 올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쌀값이 떨어지지 않으면 즉석밥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즉석밥을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쌀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당장 원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좀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보다 맛있는 흰쌀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높은 품질의 쌀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프리미엄 쌀’은 향과 찰기, 영양 성분이 일반 쌀보다 뛰어나지만 재배가 까다롭다.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품종과 관계없이 정부가 같은 가격으로 공급과잉분을 매입하기 때문에 고품질 쌀을 생산하려는 농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공급과잉이 발생하더라도 쌀을 정부가 사준다고 생각하면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고품질 쌀을 재배할 유인이 줄어든다”며 “소비자 수요가 늘어 수도권 인근에서 고품질 쌀을 생산했던 농가가 다시 일반 쌀 재배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프리미엄 쌀을 찾는 소비자는 매년 크게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1kg당 8000원이 넘는 고급 쌀 매출은 2018년에 전년 대비 15.7%, 2019년 18.3%, 2020년 24.1% 늘어났다. 반대로 일반 쌀 매출은 매해 약 3%씩 감소했다. 농식품부는 이에 맞춰 국비를 들여 고품질 쌀 유통 활성화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이러한 정책과 상충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개정안이 통과되면 잡곡밥을 먹으려는 국민은 값싼 수입 잡곡을 사거나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국산 잡곡을 사 먹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격리 의무화는 잡곡을 기르던 농가가 쌀로 생산 작물을 바꿀 유인이 되기 때문.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작되면 아무리 쌀이 남아돌아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농가들은 자연스럽게 가격 리스크가 큰 잡곡을 포기하고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쌀 쪽으로 농작물을 바꾸려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벼농사가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가 용이해 (시장격리 의무화가 아닌) 지금도 타 곡물에서 벼로 바꾸는 농가가 있다”며 “정부가 쌀 공급과잉분을 무조건 사준다면 벼를 선택하는 농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잡곡 생산 줄어 식량안보 오히려 위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과잉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농해수위에서 단독처리했다. 10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및 국민발언대 ‘쌀값 정상화’ 편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과잉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농해수위에서 단독처리했다. 10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및 국민발언대 ‘쌀값 정상화’ 편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오히려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다른 곡물의 식량안보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급률이 90%를 상회하는 쌀과 달리 다른 작물의 경우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1970년 곡물자급률은 80.5%에 달했지만, 2020년 20.2%로 떨어졌다. 밀가루 자급률은 1%를 하회하고, 콩은 30% 수준에 그친다. 국제 정세에 따라 달라지는 수입 작물 가격은 밥상 물가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입 콩 가격이 오르자, 올 1분기 국내 두부 생산 업체가 줄줄이 두부 가격을 인상한 것이 그 대표 사례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72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내년부터 전략작물 직불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밀과 콩 등 타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지원금을 줘 잡곡의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 민주당은 “타 작물 재배 지원사업을 통해 쌀 과잉생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량자급률도 높이고 쌀 가격도 안정화하겠다는 법안 발의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이와 같은 정책이 시장격리 의무화와 결합하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민들이 (쌀이 아닌) 타 작물을 선택하지 않아 책정된 예산을 쓰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지원사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매년 1조 원 세금, 쌀 매입에 쓰인다”

또한 일반 가계에선 세금 인상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매년 쌀 매입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재정은 결국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농식품부가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5~2021년 9번에 걸쳐 쌀 298만2000톤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데 쓰인 세금은 4조6780억 원에 달한다.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생산 농가 확대에 따라 과잉생산된 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이에 따라 쌀 매입·보관에 사용되는 정부 재정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9월 발표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 내용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초과 생산량은 올해 25만 톤 규모에서 점차 증가해 2030년에는 64만여 톤까지 늘어난다.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여 처분하는 경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결국 세수를 늘리든, 농식품부가 쓰는 다른 예산을 감액하는 방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며 “전자의 경우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후자는 스마트팜이나 바우처 지원사업 등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게 된다”고 말했다.

농업정책 전문가들은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을 떨어뜨리는 공급 측면에서의 정책보다 쌀 생산 농가를 줄이면서 동시에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공급을 통제하는 방식은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쌀 소비를 늘리는 것이 답”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는 콜레스테롤·글루텐이 없는 쌀이 건강한 식품으로 알려져 소비가 느는 추세”라며 “한국에는 쌀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어 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과거에 비해 먹을 게 많아졌고, 저출산 시대에 쌀 소비량 감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곡물 음료, 주류 등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 생산에 초점을 둬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고품질쌀 #과잉공급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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