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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ritique

새로운 시스터후드, 미화되지 않은 여성들의 연대

글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입력 2022.03.08 10:30:02

스크린과 TV에 ‘이상한’ 여자들이 많아졌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아름답거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그녀들.
각종 미디어의 서사에서 이토록 여성이 두드러진 적이 없었다. 2월에만 JTBC ‘서른, 아홉’, tvN ‘킬힐’ 등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나란히 첫 방송했다. 과거 여성 캐릭터가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여자 아니면 관능적인 악녀를 지겹게 오갔다면,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영화와 소설,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고정적인 부속품의 껍데기를 벗겨내려 한다.

미디어 속 여성은 점차 똑똑해져 가고, 더 이상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치장은 오히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됐으며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애티튜드는 덤이다. 그런 식으로 차츰 서사의 중심부에 여성도 자리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보면 모든 변화는 남성 캐릭터가 독식해온 파이를 하나둘씩 나눠 갖는 과정이었다.

우정에도 ‘여성스러움’이 있나요

앤드루 부잘스키의 영화 ‘그녀들을 도와줘’.

앤드루 부잘스키의 영화 ‘그녀들을 도와줘’.

그렇다면 여성들의 우정은 어떤 모습인가. 남성들의 우정과 과연 어떤 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가장 ‘쿨해 보였던’ 한 남자 선배는 스마트폰에 띄운 SNS 창을 보면서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의 언어를 조롱했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셀카에 달린 “예쁘다~” 같은 댓글과 “고마워~” 하는 식의 낯간지러운 답글들. “여자들은 대체 왜 이런 의미 없는 말들을 나누느냐”고 선배가 말하자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 이상하다고 여긴 적은 없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오가지 않을 말 같았고, 어딘가 가식적이면서 알맹이 없는 대화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그런 식의 대화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배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지만, 감정이 풍부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정확하고 분명한 대화를 선호했다. 가끔은 의도와 무관하게 오해를 사거나 상처를 주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여성의 우정이 (남성의 우정만큼) 덜 거추장스러워질 순 없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나의 20대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희한한 문답에 골몰하던 나 역시 남성들의 ‘브러더후드’가 어떤 건지 몰랐고, 미디어 속에서 미화된 남성의 우정을 무의식적으로 닮아가려 했을 뿐이다. 정확히 모를수록 환상을 갖는 법이기에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한 여성의 우정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시 처음 그 댓글들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당시 여자들이 남긴 댓글은 솔직하고 배려 넘쳤다. 남을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작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선량한 말에 기꺼이 선량한 말로 화답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조금 간지럽고 어색해 보여도 대수롭게 여길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의 탁월한 공감대

2019년 개봉한 아리 애스터 감독 영화 ‘미드소마’를 보러 간 극장에서 당황한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대니에게 재앙 같은 일이 벌어진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동생이 부모님과 동반자살을 한 것이다. 엄청난 슬픔과 상실의 시간을 관통하는 동안 대니는 오래된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그런 대니를 점점 성가시게 느끼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대니를 전형적인 ‘징징대는 여자’로 희화화한다. 너무하다 싶은 마음으로 스크린을 보는데 바로 앞 좌석 남자들이 연거푸 웃음소리를 흘렸다. “저런 여자들 잘 알지”라는 말을 속닥거리면서 말이다. 아니, 하루아침에 온 가족을 잃게 되면 누구라도 제정신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이상한 걸까.

표현 방식은 굉장히 낯설지만 결국 ‘미드소마’는 대니의 감정적 회복에 관한 영화였다. 꺼림칙한 풍습을 가진 낯선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얻고 회복 단계로 진입하는 주인공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기이하다 못해 현기증마저 도는 영화 플롯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엷게 지은 대니의 미소에서는 얼핏 안도감이 느껴졌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내 것처럼 헤아리는 일이다. 영화 안팎에서 목격한 일로 인해, 어쩌면 정말 남성의 우정에서는 찾기 어렵고 여성 사이 우정에서 많은 것이 ‘공감의 영역’인지도 모르겠거니 추측했다.

말하자면 감정의 영역이 도드라지고, 조금 더 따뜻하고 섬세하면서, 배려와 공감에 기반을 둔 우정. 이런 수사로 여성의 우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다시 의문이 가득해진다. 여성 서사의 확장을 반기며 만난 영화에서 정작 카타르시스를 느낀 순간은 그렇게 반듯한 형용사 몇 개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권력욕과 승부욕에 사활을 거는 여자들, 계산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여자들, 구차하고 지질해서 결코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할 성정의 여자. 속된 말로 망가지는 그 여자들이 내게 희열을 줬다.

불완전한 모습마저도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감독 장 마르크 발레의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를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여성들의 연대가 이 드라마의 핵심인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마냥 닮고 싶은 영웅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평판에 민감한 ‘레네타’는 과잉 행동을 하고, 심각한 오지랖을 가진 ‘매들린’은 어디를 가나 트러블을 일으키는 싸움꾼이다. 그런가 하면 남편과의 사이에 뿌리 깊은 문제가 있지만 가끔은 공모자가 되고 마는 ‘셀레스트’ 같은 캐릭터도 있다. ‘빅 리틀 라이즈’에 등장한 여자들이 선하기만 했다면 드라마가 주는 생생하고 복잡한 파동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앤드루 부잘스키의 영화 ‘그녀들을 도와줘’도 같은 맥락에서 즐겁다.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펍 ‘더블 웨미’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손바닥만 한 티셔츠에 손바닥만 한 핫팬츠를 입는다. 더블 웨미의 마케팅 전략은 3B. 가슴(boobs), 맥주(beer), 빅 스크린(big screen)이다. 직원들은 일상적인 대상화에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 매니저 ‘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른다. 불법 세차 모금 활동을 벌이거나 금고 털이 미수범을 눈감아준 것처럼, 떳떳하지 못하고 의뭉스러운 행동들 뒤에는 더블 웨미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리사의 시스터후드가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특유의 해맑음으로 섹스어필을 남발하는 한 직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수줍은 여자도, 밝히는 여자도 있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문소리·김선영 배우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조연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문소리·김선영 배우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조연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망가지는 여성들의 연대는 한국 콘텐츠에서도 이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문소리·김선영 배우에게 여우주연·조연상을 모두 안긴 이승원 감독 영화 ‘세자매’도 그렇다. 삶의 위태로움을 애써 무시하고 겉으로 완벽해 보이고자 하는 둘째(문소리)는 가식적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허구한날 “미안하다”를 남발하는 첫째(김선영)는 답답하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셋째(장윤주)도 허술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알코올 하면 시즌 2 제작을 확정한 티빙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 속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거친 대화와 부딪치는 술잔 속에 각자 힘들고 부끄러웠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이러한 서사에 대한 평은 갈린다. ‘술꾼도시여자들’을 보고 어떤 이는 “술 좋아하고 남자 밝히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불편하다” 말했고, 또 어떤 이는 “재미로 보라”며 응수했다. 나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못한 채로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현명한 여자도 있지만 미련한 여자도 있다. 수줍은 여자도 있지만 밝히는 여자도 있다. 휘황찬란한 비속어를 편안하게 구사하는 여자도 있다. 좋아하는 걸 마음껏 즐기고, 좋아하는 상대에게 마구 ‘흘리는’ 여자도 있다. 물론 재미만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올바름과 착함만으로는 여성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중문화가 다루는 여성 이미지에 재정립이 필요하다면 여성이 어떠한 수식에도 제한받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여성 서사가 남성 서사의 파이를 나눠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틀을 지워내기 위해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면 결국 또 다른 억압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시샘하고 질투하는 남성들, 연약하고 예민한 남성들 이야기도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여성이 더 이상 단편적인 ‘캐릭터’가 아닌 복잡다단한 ‘인간다움’을 쟁취하기를 바란다.

#시스터후드 #미드소마 #빅리틀라이즈 #세자매 #술꾼도시여자들 #여성동아

사진제공 tvN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로튼토마토



여성동아 2022년 3월 6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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