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탈 없이 일해왔다는 건 그만큼 업계에서 신뢰도가 높다는 의미다. 배우 박효주는 2000년 장진 감독의 단편영화 ‘극단적 하루’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50여 편의 작품을 해왔다.

매 작품 맡은 역할에 100% 녹아들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어느덧 어떤 배우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날렵한 얼굴선 때문일까. 형사 역할만 7번을 했다는 박효주는 최근 자신과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섰다. SBS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주인공 하영은(송혜교), 황치숙(최희서)의 여고 동창이자 주부인 전미숙 역할을 맡은 것.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두 친구와 달리 집안일에 지쳐 피로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녀는 찰진 대사로 정적인 극 분위기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실제 그녀는 잘 웃고 유쾌한 성격에 운동에도 능한 팔방미인이다. 최근 종영한 SBS FiL 예능 ‘평생동안’에서 김성령, 장영란 등과 MC를 맡았던 박효주는 밝은 미소로 시종일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일이 없을 때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그녀는 유튜브 채널 ‘박효주’에 영상을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어떤 매력을 갖고 있을지 궁금증을 품고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박효주는 여린 몸에 강인한 오라를 뿜어내는, 많은 것을 갖췄지만 시종일관 겸손한 사람이었다.

interview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재밌게 보고 있어요. 드라마 속 전미숙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희 드라마는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폭넓게 보자면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미숙은 영은의 친구이자 한 남편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요.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면 한 번쯤 만날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죠. 어떤 직업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지 않은, 나와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촬영이 없을 때 저 역시 전업주부이기도 하고, 아이를 돌보기도 하니까요. 모니터링을 하면서 느꼈는데 너무 본연의 내 얼굴이 나오더라고요(웃음). 그간 어떤 캐릭터 안에 제 자신을 숨겼다면 이번에는 제 민얼굴이 나오는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 박효주 씨의 결혼 생활은 어떨지, 어떤 엄마일지 궁금했어요.

모든 배우들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연기할 때나 작업을 할 때 제일 힘이 되거든요. 남편은 그저 늘 곁에 든든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딸아이가 다섯 살인데 사실 엄마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아요. 아직 드라마나 영화를 볼 나이가 아니라서요. 대신 최근 진행을 맡았던 ‘평생동안’은 보여줬어요. 엄마가 예쁜 옷을 입고 나오니까 반가웠던 것 같아요. 차근차근 엄마의 일을 알려주고 싶어요.

친구로 등장하는 송혜교, 최희서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저희가 드라마 안에 역할이 주어져서 만난 인연이긴 한데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첫인상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덕분에 친구 역할로 만나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었죠. 굉장히 소중한 인연을 만난 것 같아요. 송혜교, 최희서 배우뿐만 아니라 남자 배우들과도 친해져서 서로들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2000년 데뷔 이후 쉬지 않고 활동해왔어요. 올해도 SBS ‘라켓소년단’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데,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요즘 한창 영화 ‘세 번째 아이’를 찍고 있는데, 그날따라 추웠고 하필 비를 맞는 장면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나는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연기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컸고, 그 과정에서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일을 굉장히 사랑하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물론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재단해야 해서 힘들어요.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야 하는 두려움도 항상 있고요. 그렇지만 매 순간 사랑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첫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장진 감독님과 함께 단편 영화를 찍었어요. 그날의 떨림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카메라 앞에서 너무 떨려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거든요. 정재영, 신하균, 임원희 등 여러 선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쿨한 척했죠. 그 후 몇 달 동안 이불 킥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비결이 뭘까요.

다행히 살이 많이 찌는 체질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무용을 오래 한 덕분에 기초체력도 어느 정도 있고요. 그런데 갈수록 몸이 굼떠져서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 싶었죠.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많아져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되도록 운동하려고 해요.

유튜브 ‘박효주’에 꾸준히 서핑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어떤 계기로 서핑에 매료됐나요.

30대 후반 즈음 여러 가지 변화를 맞이했어요. 가정을 꾸려 아이도 가졌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기도 했죠. 그때 생각은 복잡해졌는데 삶은 단순하고 간결해졌어요. 웃고 행복하게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짧다는 생각이 커졌거든요. 그러면서 ‘지금껏 해보지 않은 걸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물 공포증이 있는데 그걸 바꿔보고 싶어 가기 싫어도 억지로 서핑을 하러 간 거예요.

첫 서핑 후 큰 에너지가 생기는 걸 느꼈어요. 새로운 일에 반응하는 나를 보는 것도 반가웠죠.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없구나’ 하는 것도 느꼈고요. 서핑은 제게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요.

김성령 배우와도 같이 서핑을 즐기는 등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랜 배우 생활로 얻은 인연이 많은 편인가요.

확실히 어렸을 때는 동료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어요. 작품 끝나면 소원해지기 마련이었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어요. 배우라는 직업군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가 있어요. 물론 가족들은 항상 응원해주고 큰 에너지를 주죠. 하지만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면 동료들이 큰 힘이 돼줘요. 작품 하면서 친해져도 계속 이어지기 어려운데 김성령 선배는 특별해요. 첫 드라마 선배로 지금까지 계속 연결되는 거 보면 인연인 것 같아요.

12월호 표지모델인데 올 크리스마스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지금 하고 있는 영화 작업이 연말에 끝날 예정이에요. 올해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으로 너무 바쁜 한 해여서 가족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어요. 크리스마스만큼은 남편, 딸과 함께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_{사진 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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