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interview

재벌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깬 ‘마인’ 이나정 PD

글 정혜연 기자

2021. 07. 20

재벌가 이야기는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흥행 보증수표이긴 하나 제작진은 이를 참신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는다. 이나정 PD는 드라마 ‘마인’을 통해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압도적인 비주얼로 구현해낸 동시에,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와 여성 서사를 엮어내 새로운 재벌가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배우 이보영 김서형과 함께 선 
이나정 PD(가운데).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배우 이보영 김서형과 함께 선 이나정 PD(가운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을 고르라면 단연코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시작 전부터 기대감을 모은 tvN 드라마 ‘마인’은 방영 내내 화제를 뿌렸고, 6월 27일 마지막 회 시청률 10.5%를 찍으며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드라마는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장자와 서자의 갈등, 그 속에서 욕망의 발톱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장르적으로 블랙코미디와 미스터리, 휴먼드라마가 혼재돼 있지만 모든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며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진정한 행복과 진짜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두 여주인공의 여정이었다. 주연 이보영, 김서형은 제 옷을 입은 듯 완벽하게 재벌가 며느리로 분해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극에 푹 빠져들게 했다. 박혁권, 이현욱, 옥자연, 박원숙 등 조연 배우들도 각각 제 몫을 다해 주연 배우들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했다. 또 고급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대저택과 다양한 미술품, 여배우들의 화려한 스타일링, 블루 다이아몬드를 필두로 실제 명품 주얼리 브랜드의 고가 제품 등 재벌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해 매회 화제가 됐다.


격이 다른 상류층 라이프스타일 그리려 4개월 준비

그 중심에는 전작 ‘품위있는 그녀’로 재벌 드라마 일가를 이룬 백미경 작가와 연출을 총괄한 이나정 PD가 있다. 특히 이나정 PD는 주역 캐스팅부터 극 중 ‘카덴차’와 ‘루바토’로 등장한 촬영 장소 발굴, 내부 인테리어 세팅과 주요 요소들까지 빠짐없이 챙겨 격이 다른 상류층의 일상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 종영 후 진행된 서면 인터뷰에서 이나정 PD는 “화면상으로 진짜 상류층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상당 기간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상위 1%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볼거리가 풍부하되 비주얼이 식상하거나 산만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시청자들의 눈과 귀가 호강하는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고요. (촬영에 앞서) 비주얼 프리 프로덕션 팀을 만들어 4개월 정도 콘셉트를 준비하며 2021년 상류층은 어떤 건축물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쓰고 입고 먹는지 조사했어요. 이를 토대로 촬영 감독, 미술 감독 등 스태프에게 만들고 싶은 이미지와 방향성을 분명히 전달해 함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숱한 재벌 드라마를 봐왔지만 시각적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PD는 “고급스러움에 대한 기준도 새롭게 제시하고 싶었다. 비움과 채움을 확실히 선택해 실제 부자들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획 의도 덕분에 캐릭터들이 욕망을 드러내며 추악해질수록 상류층의 모든 고급스러운 요소와 대비를 이루며 두드러져 보였다. 이 역시 이 PD가 일찌감치 의도한 바였다.



“극 중 인물들은 고급스러운 곳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관계는 엉망진창이고, 공허한 욕망에만 매몰돼가죠. 그런 모순적인 감정들을 아이러니하게 펼치고 싶었어요. 또 그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여주인공들 각자가 ‘진짜 중요한 나의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티파니,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 주얼리 브랜드의 고가 제품을 착용하고 등장한 모습도 상당한 볼거리였다. 이 PD는 “실제 30~40대 젊은 상류층을 그리기 위해 단순히 요란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들이 아닌 과하지 않은 선의 실제 제품들을 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극 중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장치로 사용된 블루 다이아몬드는 직접 제작한 소품이라고 한다. 이 PD는 “실제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경매에 올라온 1백억~2백억원대 다이아몬드를 조사해 그와 비슷하게 제작했다. 고가의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커팅을 구현하기 위해 정성을 많이 들였고, 그만큼 제작 기간도 길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으로 배우들 역시 재평가를 받았다. 배우 이보영은 톱스타로 활동하다가 여행지에서 재벌 2세를 만나 연예계를 은퇴하고 재벌가에 들어간 뒤 남편의 친자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며 모성애를 쏟아붓는 한편, 가족 모임에서도 할 말은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서희수 역할을 마치 실제처럼 연기해 단연코 두드러져 보였다. 이 PD는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자를 캐스팅할 수 있었기에 작품에서 더 빛났다”고 평가했다.

“희수는 맑고 강한 캐릭터였는데 이보영 배우는 그 점을 독보적으로 표현해줬어요. 대기 시간에는 편안하게 있다가 촬영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몰입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많았죠. 지적이고 차분한 느낌이지만 그보다 직관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7회 엔딩(희수가 모든 진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유산하는 장면) 같은 폭발력 있는 장면들에서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엄청났어요.”

배우 김서형 역시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순간순간 인간미가 느껴지는 재벌가 맏며느리 정서현 역을 통해 ‘SKY 캐슬’ 이후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맡았던 기존의 강한 역할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을 정도로 정서현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 PD는 “순수하고 깊은 눈빛을 가진 김서형 배우는 짧은 신에도 그 캐릭터가 살아왔던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연기력을 보여줘 놀라웠다”며 “단순히 센 캐릭터로 소비되기에는 아까운 배우라 생각했고, 이번 작품을 통해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멋진 중심을 가진 배우라는 점을 많은 시청자가 느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연 배우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재벌가 자제인 아들을 되찾으려 개인 튜터로 취직하는 강자경 역의 옥자연은 OCN ‘경이로운 소문’에 이어 이번 작품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여주인공인 이보영과 팽팽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던 까닭에 캐스팅 단계부터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옥자연 배우가 ‘경이로운 소문’에 출연하기 전 영화 ‘속물들’을 보고 극 중 강자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 일찌감치 캐스팅했어요. ‘마인’ 1회의 부제목이 ‘낯선 사람들’이었어요. 주인공인 서희수, 정서현 두 여자의 삶에 한 여자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인데, 시청자가 낯설게 느낄 정도로 새로운 얼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옥자연 배우는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강한 포스가 인상적이었죠. 또 확실하고 강렬한 표현력으로 극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줬어요.”

서희수의 남편이자 효원가의 서자(인 줄 알았지만 사실 효원가의 피가 섞이지 않은) 한지용 역할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배우 이현욱 역시 ‘신의 한 수’로 꼽힌 캐스팅이었다. 이 PD는 “최근 영화 및 드라마를 보며 알게 된 배우인데 싸늘한 얼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다정다감한 남편인 줄로만 알았는데 중반부에 실체가 밝혀지면서 ‘흑화’ 하는 시점에 연기의 정점을 찍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또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 묘한 웃음을 주며 블랙코미디를 완성한 배우 박혁권, 박원숙은 작품 속에서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수십 년 연기 내공을 실감케 했다. 이 PD는 “박혁권 배우가 보여준 균형감 있는 감정 연기, 박원숙 배우가 그려낸 순혜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

드라마 ‘마인’

드라마 ‘마인’

‘마인’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한지용을 죽인 범인이 밝혀지며 두 여주인공이 의혹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들려준 독백과 엔딩 신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 PD는 “여러 의미에서 마지막 회 촬영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여주인공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중심에 섰다는 걸 이미지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서희수와 정서현이 가진 풍부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각각 담아냈고, 그들을 표현하는 부제목 ‘빛나는 여인들’까지 하나의 감정으로 이어 엔딩에 싣고 싶었죠. 원래는 정서현이 과거의 연인이었던 수지 최에게 전화를 걸고, 서희수가 분장실에서 내레이션하는 것만 대본에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두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것 같아 추가로 촬영을 했고, 만족스러운 엔딩이 나왔어요.”

마지막 회에서는 무거운 분위기가 걷히고 가볍고 밝은 에피소드가 여럿 등장했다. 이 가운데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정서현이 남편의 내연녀들을 불러 관계를 대신 정리해주면서 “임차 계약 끝났으니 처리하는 것뿐, 단칸방이라도 네가 직접 벌어서 살아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기존의 남성 의존적 삶을 살았던 고루한 내연녀 캐릭터들뿐 아니라 실제 ‘백마 탄 왕자님’을 갈망하는 의존적 여성들에게 일갈하는 것 같았다. 이 PD는 “차별화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흔히 약하고, 부드럽고, 조용한 성향을 지니면 ‘여성스럽다’고 하죠. 하지만 상대방을 위해 의리를 지키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위기의 순간에 맞닥뜨리면 강인하게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모습 역시 여성스러움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 확장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런 의도가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 만족합니다.”

사진제공 tvN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