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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Fashion

버버리는 왜 남성복 패션쇼에 여성 모델을 세웠을까

글 오홍석 기자

2021. 03. 04

팬데믹의 여파로 영국 패션하우스 버버리의 2021 F/W 컬렉션은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버버리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관객 없이 열렸다. 맨즈웨어 컬렉션에 여성 모델이 등장했고, 남성 모델은 실크 플레어스커트를 휘날리며 런웨이를 누볐다.

지난 한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타인과의 대면 접촉이나 여행, 운동 같은 활동들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반영하듯 버버리의 CCO(Chief Creative Officer) 리카르도 티시는 ‘이스케이프(ESCAPES)’를 테마로 2021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티시는 “도시를 벗어나(escape) 교외에서 모험을 즐겼던 버버리의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1835~1926)를 오마주해 그가 살던 20세기 초 공예와 아웃도어 웨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모델들은 버버리의 클래식 아이템인 트렌치코트, 과감하게 소매를 삭제한 바시티 재킷, 변형된 형태의 울 더플 코트를 입고 런웨이에 등장했다. 버버리의 시그니처 코드인 애니멀 킹덤의 사슴뿔을 모티프로 한 니트 비니와 말발굽을 형상화 한 롱부츠도 선보였다. 백팩과 함께 부착된 길이가 제각각인 우산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은 ‘남성복 단독 프레젠테이션’이란 타이틀을 무색케 한 여성 모델들의 등장과 젠더리스 아이템들이었다. 여성 모델들은 오버사이즈 애니멀 프린팅 셔츠에 활동이 용이한 바이시클 팬츠를 입고 거대한 메신저 백을 멘 채 무심한 표정으로 런웨이를 누볐고 남성 모델들은 단아해 보이는 실크 플레어스커트를 휘날리며 무대에 올랐다. 여성 모델을 남성복 런웨이에 등장시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리카르도 티시는 “성 유동성(Gender Fluidity 남성, 여성, 트랜스젠더 등 모든 성을 유연하게 오가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다. 그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공포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버버리의 ‘올드’한 이미지를 젊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는 티시다운 답변이었다.


모피 사용 중단에 이은 또 하나의 파격적인 시도

젠더리스 트렌드는 2017년부터 패션계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패션 디자이너들이 의상과 소품을 통해 남녀 간의 장벽을 허무는데 그쳤다면 티시는 아예 남성복 무대에 여성 모델을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티시는 “버버리를 이전보다 관능적이고 부드러운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남성복에 여성성을 어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티시의 젠더에 대한 관심사는 이전부터 지속해 왔다. 2010년 오랜 시간 자신의 비서로 일했던 트랜스젠더 모델 레아 티(Lea T)를 당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지방시의 런웨이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버버리의 CCO로 부임한 뒤 2019 F/W 버버리 캠페인에 다시 레아 티를 등장시켰다. 당시 선보인 컬렉션은 배우 유아인이 참여하기도 해 국내에서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태생의 리카르도 티시는 세계적인 패션 명문학교 센트럴세인트마틴(CSM)을 졸업하고 2005년부터 12년간 LVMH그룹 소속의 지방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다. 비욘세와 마돈나의 무대의상을 제작하고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등 여러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시상식 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2018년 버버리의 CCO로 부임한 뒤 모피 사용 중단 선언과 인종과 성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는 모델 기용으로 버버리를 외면하던 젊은 세대로부터 주목받았다. 2020년 팬데믹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은 버버리가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 티시의 컬렉션으로 다시 핫한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제공 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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