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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술자리 전설의 비기 ‘뿅가리스웨트’의 진실!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우먼동아일보

2015. 11. 16

안 올 것만 같던 2015년의 끝자락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11, 12월은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때이자 ‘알코올 시즌’이기도 하다. 연말 술자리 레이스가 아직은 남 일 같겠으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술자리 전설의 비기 ‘뿅가리스웨트’의 진실!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의 비기, 뿅가리스웨트
들어는 보았는가. 한 잔, 두 잔 먹다가 나도 모르게 취해버린다는 문제의 술. 상대를 빨리 취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후배에게 귓속말로 전수해주던 그 비법을 말이다. 알코올의 쓴맛을 싫어하던 그녀를 부담 없이 취하게 만들기 위해 남자들이 부단히도 노력했던 그 전설의 레시피. 이름하여 뿅가리스웨트다.

“랄랄라라라, 랄라라라라~ 날 좋아 한다면~” 1990년대 산토리니 바닷가 마을에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부르던 손예진이 광고하던 그 이온 음료. 수분을 몸에 빨리 흡수시켜 갈증을 해소하고 언제나 촉촉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아 인기를 끌었던 그 음료. 혹자는 손예진이 좋아 물보다 더 많이 마셨다는 그 이온 음료, 포카리스웨트다. 누군가에게는 ‘순수의 결정체’인 이 음료가 술자리에선 ‘뿅가리스웨트’란 다소 불순한 이름을 지닌 폭탄주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온 음료가 수분 흡수를 도와줘 소주에 타 마시면 한 번에 ‘뿅’ 가게 만들 수 있다는 막연한 논리 때문이다. 술자리 인기 아이템으로 20년 넘게 꾸준히 ‘추앙’받고 있는 ‘뿅가리스웨트’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먼저, 뿅가리스웨트가 빨리 취하게 만드는 게 맞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 해답을 얻기 위해 필자는 한 가지 무모한 도전을 기획했으니 이름하여 ‘강소주 마시기 대회’다. 신체 건강한 20, 30대 남성 5명의 지원을 받아 필자까지 6명의 장정이 30분 동안 안주 없이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취하는 과정을 체혈을 통해 그대로 기록했다. 1병을 스트레이트로 마신 뒤 30분 뒤 1차 체혈, 그리고 또 30분 뒤 2차 체혈, 총 2시간 동안 4차례의 체혈을 통해 혈중 아세트알데히드(알코올 주성분인 에탄올이 간에 의해 한 번 분해된 상태) 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혈액 속 아세트 알데히드의 농도가 짙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취했다는 뜻이고, 반대로 농도가 옅어진다는 것은 술에서 깨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리 실험이라곤 하지만, 정확한 기록을 위해 켜둔 실험실의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장정 6명은 대낮부터 얼굴이 뻘게져 있었다. 기분은 좋아지고 처음에 서먹서먹하던 필자와 실험자들은 어느새 피를 나눈 형제가 돼 있었다. 술을 한 병 다 비운 뒤 30분 후부터 혈중 아세트알데히드의 농도가 점점 높아졌고,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점차 농도가 낮아졌다.

3일 뒤 ‘피를 나눈 6명의 실험자’가 다시 실험실에 모였다. 이번엔 소주 한 병과 딱 그만큼의 이온 음료가 같이 놓여 있었다. 소주 한 잔에 이온 음료 한 잔. 가장 널리 제조되는 뿅가리스웨트의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우리는 그 뿅가리스웨트를 만들어 30분 동안 마셔대기 시작했다. 실험 조건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다만 이온 음료만이 더해졌을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실험자 6명 모두 이 뿅가리스웨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며 술자리에서 시도했던 경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같이 “더 빨리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분 때문인지 지난번 실험 때보다 더 빨리 얼굴이 빨개지는가 하면, 취기를 호소하는 실험자도 발생했다. 우리는 모두 뿅가리스웨트의 효능(?)에 대해 확신하며 실험에 임했다. 그리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섭취 30분 후부터 4차례의 체혈 과정을 거쳤다.




술자리 전설의 비기 ‘뿅가리스웨트’의 진실!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font color="#333333"><b>1 2</b></font> 알코올과 이온 음료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고자 실험에 나선 장정들.<font color="#333333"><b> 3</b></font> 강소주만 마셨을 때보다 이온 음료를 섞어 마셨을 때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더 낮게 나타났다.


숙취 성분은 1급 발암물질
그런데 실험 결과는 반전이었다. 6명 모두 강소주를 마셨을 때보다 뿅가리스웨트를 마셨을 때,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뿅가리스웨트 실험 때 한참 높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험 결과지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그토록 맹신했던 전설의 비기가 씨알도 안 먹히는 헛소문이란 뜻이다. 강하게 믿어왔던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사람의 멘탈은 견디기 힘들 만큼 휘청한다. 실험 결과지를 받아든 6명의 남성 실험자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공포, 극도의 공허함에 치를 떠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도대체 왜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더 낮아진 걸까. 쉽게 말하면, 왜 이온 음료와 함께 먹었을 때 술에 안 취하고 오히려 더 빨리 깨는 것일까. 알코올 의존증 치료 전문 병원인 다사랑 중앙병원의 전용준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흔히 이온 음료는 흡수가 빠르다는 인식 때문에 술과 같이 마시면 빨리 취한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사실 이온 음료는 술과 혼합되면서 알코올을 희석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취했다는 건 무엇일까. 자고로 취함이란 하늘과 땅이 뒤섞여 한데 동화된 것을 이름이요, 천하가 머릿속에 들어오니 머리가 무겁고 속이 뒤틀려 안의 것을 밖으로 내뱉는 것을 말함이요, 천지의 이치를 한 번에 깨달아 취하고 취해도 목의 갈증이 쉼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로 웃음이 나니,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는 것을 말한다. 만취한 사람의 특징이다. 웬 선문답이냐고 비웃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취한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취하게 할 수도, 취기를 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알코올의 주성분인 에탄올이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그 중 20%는 위에서 흡수가 되고, 나머지 80%는 위를 통과해 소장에서 흡수가 된다. 그런데 이 에탄올은 우리 몸에 유해한 요소이므로 반드시 분해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간에서는 에탄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출동시킨다. 이름하여 ADX. 이 알코올 분해 효소는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바꿔버린다. 하지만 아세트알데히드도 우리 몸에 유해한 요소다. 따라서 이 아세트알데히드는 또 다른 분해 효소 ALDH에 의해 아세트산으로 바뀌고 그제야 비로소 안전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술이 깨는 과정이라고 하며,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간은 쉼 없이 에탄올과 싸우며 알코올의 독소를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없앤다.

취함이란 결국 간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 우리가 숙취라고 부르는 것은 체내에 남아 있는 아세트알데히드가 혈관을 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돌아다니며 우리 몸의 여러 세포를 공격하며 나른하게 만들거나, 구토를 유발하거나, 두통을 발생시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아는가? 이 아세트알데히드는 알코올이 분해돼 생기는 1차 대사 물질이자 1급 발암물질이란 것을. 즉, 간이 해독하지 못하는 범위의 알코올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섭취하다 보면 아세트알데히드란 발암물질로부터 몸을 지켜내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온 음료는 알코올을 희석시킬 뿐 아니라 알코올을 몸 밖으로 빨리 배출시키는 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온 음료가 알코올 흡수를 더 촉진한다는 말은 잘못된 상식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뿅가리스웨트는 새빨간 거짓이었던 것이다. 뿅가리스웨트의 민얼굴을 파헤쳐보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럼, 그동안 뿅가리스웨트에 취한 척 연기를 했던 사람들은 뭐지?’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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