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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암살’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흥행 마술사가 됐을까?

우먼동아일보

2015. 09. 10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날린 야구 선수는 존재한 적이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영화계에는 그와 비슷한 상황을 현실로 만든 감독이 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최근 개봉작 ‘암살’까지 직접 연출한 영화 5편을 모두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이뤄낸 흥행불패 신화의 비밀.


‘암살’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흥행 마술사가 됐을까?

“최동훈 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3년의 인생을 온전히 바칩니다. 그러나 자만하지 않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듣습니다.”<br><font color="#333333"><b>-안수현, ‘암살’ 제작자 &amp; 최동훈 감독의 아내</b></font>


영화 ‘암살’이 8월 15일 광복절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7월 22일 개봉해 한 달도 안 돼 거둔 성과였다. 사실 이 영화는 연출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실패한 적 없는 최동훈(44) 감독의 작품이고, 전지현 · 이정재 · 하정우 · 오달수 · 조진웅 · 최덕문 · 김해숙 등 화려한 출연진이 등장함에도 막이 열리기 전까지 흥행에 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 지금까지 관객몰이에 성공한 적 없다는 충무로의 징크스가 우려를 키웠다.

1백8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만큼 손익분기점(BP)이 ‘누적 관객 7백만’으로 상당히 높았던 ‘암살’은 이 같은 부담과 편견을 떨쳐내고 젊은이들에게 역사의식과 애국심까지 불어 넣으며 올해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개봉 28일째인 8월 18일, 1천만 관객 돌파 이후 본지와 단독으로 만난 최 감독은 “BP를 넘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관객들이 기대 이상의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그동안 마음 졸였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실은 엄청난 모험이었어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1930년대 이야기에 그 금액을 투자하신 분들도 대단한 거죠. 촬영하는 내내 그들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 속에서 제작비가 아깝지 않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그런 긴장 관계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암살’의 누적 관객 1천만 돌파로 그는 윤제균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쌍천만 감독’ 반열에 올랐다. 또한 감독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2004 2백12만)부터 ‘타짜’(2006 4백2만), ‘전우치’(2009 6백7만), ‘도둑들’(2012 1천2백98만), ‘암살’까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5편의 영화가 모두 대박을 터뜨려 영화사에 남을 흥행불패의 신화를 일궜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찍은 ‘암살’
최 감독이 ‘암살’ 이야기를 구상한 건 2006년 ‘타짜’ 개봉 당시 이름 없는 독립군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접하면서다. 이때부터 그가 1930년대 독립운동사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거듭해 탄생시킨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 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다. 최 감독은 중국 상하이 로케이션과 국내 최대 규모의 세트 촬영을 통해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51정의 총기와 1930년대 클래식 카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완성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일제강점기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14년 8월 27일 시작된 촬영은 2015년 1월 31일까지 1백3회나 진행됐다. 참여한 스태프들도 2백여 명에 달한다. 최 감독은 “‘도둑들’을 할 때는 친구들과 소풍을 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를 찍을 땐 친구들과 등산을 하는 느낌이었다”며 “말 많이 안 해도 서로 고충을 헤아리고, 그렇게 힘들게 산 하나를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암살’에 ‘도둑들’의 출연 배우들(전지현, 이정재, 오달수, 최덕문, 김해숙)을 다시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의리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 캐릭터와 잘 맞아서예요. 전지현 씨와 이정재 씨는 ‘도둑들’ 때와 정반대 이미지로 쓰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오달수 선배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배우고요. 달수 선배와 ‘도둑들’을 하기 전부터 함께하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신 분이라 타이밍이 안맞았어요. 최덕문 씨는 ‘도둑들’에서 출연 분량이 적었지만 대학로에서는 유명한 분으로, 연기 톤이 아주 좋아요. 목소리도 좋고 어벙한 듯 보여서 정직한 캐릭터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해숙 선생님은 촬영 도중 합류했어요. 만주에서 경성으로 간 암살단을 마중 나오는 사람이 한국적 풍모면 좋겠어서 적임자인 김해숙 선생님을 급히 섭외했어요. ‘비중이 작은 역인데 한번 와서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셨죠.

이번 영화에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있나요.
제가 찍은 5편의 영화가 다 아쉬워요. 다 미완성 같고.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선 영업 비밀이라 밝힐 수가 없어요. 혼자만 알고 있죠. 하하하.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장면은 밝힐 수 있습니까.
(웃음) 그건 많아요. ‘암살’ 멤버들 모두 기대치보다 훨씬 매혹적으로 캐릭터를 소화해줬거든요. 굳이 하나를 뽑으라면, 이정재 씨가 죽음을 맞는 라스트 신이 가장 좋았어요. 지난해 아주 추운 겨울에 엔딩 장면을 찍었는데 기온이 영하 13℃까지 떨어져 땅이 다 얼어 있었어요. 이정재 씨가 언 땅에 쓰러지면 위험하니까 땅을 죄다 깨서 고운 모래를 깔았어요. 매트리스를 놓으면 쓰러질 때 흙이 튀어서 가짜처럼 보이거든요. 그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이정재 씨가 몸을 옆으로 일직선으로 날리며 쓰러져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근사한 실루엣이 나왔죠. 촬영할 땐 이정재 씨가 그렇게 쓰러져서 다들 놀랐어요. 저도 ‘정재 씨, 어깨 수술했는데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안 다친 쪽으로 쓰러졌더군요. 이정재 씨가 영화 ‘빅매치’를 끝내고 수술을 했는데 재활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사실 ‘암살’ 촬영할 때도 재활 중이었고요. 신이 인간에게 2개의 어깨를 준 것에 감사했죠.

이정재 씨의 연기에 관해 평이 아주 좋던데, ‘도둑들’ 때와 정반대 이미지를 입히고 싶었다는 감독님의 의도가 제대로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어요.
배우들은 연기하다 보면 어떤 이미지로 굳어지게 돼요. 그 이미지를 한번에 깨기는 어려워요.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외연을 넓히는 게 중요한데, 이정재 씨는 ‘관상’에서의 연기도 좋았고 이 영화에서도 고독한 아웃사이더인 염석진 캐릭터를 잘 살려냈죠.

‘암살’이 ‘도둑들’의 흥행 스코어를 깰 수 있을까요.
못 깰 것 같아요. 신작이 많이 나와서요. 영화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어서 억지로 잘되게 할 수 없어요. 이번에는 ‘BP만 넘어라’ 그랬는데, 이미 누적 관객이 1천만을 넘었으니 지금부터는 덤이라고 생각해요.


‘암살’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흥행 마술사가 됐을까?

박봉의 연출부 생활 즐기며 매일 시나리오 써
2000년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했던데, 서강대 국문과 출신이 무슨 생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나요.
어릴 때부터 책 보는 걸 좋아해서 국문과에 갔는데, 학업보다 교내 영화 동아리 활동에 더 열중했어요. 강의가 없을 땐 영화 동아리에 가서 살다시피 했죠. 영화를 공부하니 그쪽 일을 하고 싶었지만 감독은 못 될 것 같았어요. 정말 영리하고 감각적인 사람만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감독은 못 돼도 열심히 하면 시나리오 작가까지는 되겠지 싶었어요. 그렇게만 돼도 무척 행복할 것 같아서 대학 졸업 후 1년간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영화 아카데미를 다녔죠. 이후 충무로에 입성해 ‘범죄의 재구성’으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그전까진 변변히 돈을 벌지 못했어요. 처음 영화판에 뛰어들었을 때는 ‘연봉’이 1백30만원이었죠. 그때는 생활이라는 걸 안 했어요. 그냥 돈을 안 쓰고 살았죠. 부모님은 그런 저를 걱정하면서도 제가 워낙 밝게 지내니까 묵묵히 믿어주셨어요.

연출부 시절, 박봉에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영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즐거웠어요. ‘아, 내가 진짜 영화를 찍는 현장에 있다니! ’ 이 일이 좋았어요. 임상수 감독님과 같이 술 마시는 것도 좋았고요. 감독님 밑에서 연출부를 1년 조금 넘게 했는데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때는 일이 많아서 미래를 불안해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으니 결혼 생각도 슬슬 할 때 아닌가요.
독신으로 지낼 생각이었죠.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기꺼이 감수하는 게 마땅하지만, 가정을 꾸려 다른 사람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건 반칙이죠. 그래서 연애도 한번 안 했어요. 연애 자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책을 보면 ‘매일 조금씩 글을 써야 한다’는 구절이 나와요. 구로사와 아키라뿐 아니라 좋은 감독들은 다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출부를 할 때는 피곤해도 매일 조금씩 시나리오를 썼어요. 감독 데뷔 전까지 아주 범상하고 쓰레기 같은 작품 10편을 써서 공모전에 냈는데 다 떨어졌죠. 그렇다고 상처 받진 않았어요. 내용이 후지니까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원래 상처를 잘 안 받는 긍정적인 성격인가요.
상처를 잘 받는 긍정적인 성격이죠. 하하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를 끝까지 써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보통 중간에 막히면 포기하는데 아무리 내용이 후지고 거지 같아도 끝까지 써야 해요. 저도 그 버릇을 계속 들인 거죠.

시나리오를 어떤 방식으로 쓰나요.
친한 친구 한 명을 데려다놓고 쓸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요. 도둑 5명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하는 식으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요. 영화가 이렇게 시작해, 하면서 15분 정도 얘기하고 나서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걸 쓸지 말지를 결정해요. 제가 이야기하는 도중 딴짓을 하거나 화장실 다녀올게, 그러면 이건 벌써 망한 거예요. 그렇게 스토리를 먼저 짠 다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스토리 속에 넣죠. 어떤 때는 한 달 만에 쓰고, 어떤 때는 석 달 정도 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범죄의 재구성’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2년쯤 걸렸고,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임 감독님 밑에 있다가 영화사 싸이더스로 이적해 쓴 시나리오였는데, 그 안에서도 평가가 안 좋았어요. ‘내용이 어렵다. 한국 사람은 스릴러를 안 본다. 흥행은 고사하고 영화적으로 가치가 없다. 주인공이 5명인 영화는 안된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치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하듯이 제작 허락이 떨어졌는데, 모든 배우가 출연을 거절해서 엎어지기 직전까지 갔고, 마침 박신양 선배가 하겠다고 해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죠.


촬영 분량 넉넉히 찍고 편집 과정에서 옥석 가려
‘범죄의 재구성’이 관객몰이에 성공한 뒤에도 그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편견의 벽에 부딪혔다. ‘타짜’ 시나리오를 내놨을 때는 “원작이 워낙 유명해 관객들 반응이 시큰둥할 거다. 도박 영화는 사람들이 안 볼 거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전우치’를 찍을 때는 “드디어 미쳤구나”라는 말까지 들었다. ‘도둑들’도 “스타가 많이 나오니 출연 분량을 놓고 싸울 거다. 분쟁의 씨앗이 될 거다”라는 우려를 샀다. 하지만 “촬영 현장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했던 작품은 ‘도둑들’이었다”고 최 감독은 말했다.

“‘암살’도 ‘암실’이라고들 했어요. 하하하. 어떤 작품이 흥행할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흥행을 노리고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좋은 반응을 얻고자 한다면 흥행을 신경 쓰기보다 작품을 얼마나 매혹적이게 만들 건지, 어떤 매력으로 어필한 건지를 더 탐구해야죠. 관객이 보기엔 어떨 것이라고 예단해 그에 맞출 필요도 없고요.”

그동안 그가 연출한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다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거냐”고 묻자 최 감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떼거리로 나오면 방만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질서 정연해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반대예요. 사람의 삶은 늘 예측 불가능하며 질서 정연하지 않잖아요. 방만해도 마무리만 잘하면 되고요. 저는 그 방만함이 좋아요. 그 안에 질서를 만들어놓으면 관객들이 다 알아서 퍼즐 조각을 맞춰가죠.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오면 천재가 되거든요(웃음).”

그가 추구하는 연출 포인트는 재미. “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재미있고 매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연출 철학이다. 하지만 촬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편집이라고 한다. 편집 과정에서의 옥석 가려내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는 일단 많은 분량을 찍어요. ‘타짜’는 원래 분량이 4시간이었어요. 그걸 걸러낼 때는 배우가 연기를 가장 잘하고 제일 좋은 뉘앙스를 풍긴 장면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때는 욕망과 의도가 가득한 일종의 미친 관객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죠. 제가 연출한 다섯 작품 모두 같은 편집 기사와 작업했어요. 신민경이라는 편집기사죠. 편집기사는 감독에게 스스럼없이 다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저를 아주 잘 까요. 1초도 불편해하지 않죠.”

2004년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연애와 담을 쌓고 살던 그는 2007년 영화 프로듀서 안수현 씨와 결혼했다. 안씨는 ‘암살’ 제작사인 케이퍼필름의 대표다. 2000년 영화 일을 하며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청첩장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3년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친구로 지냈고, 1년간 흑심을 감춘 친구로 지내다 넘쳐나는 사랑을 폭로할 수밖에 없어 3년간 연애를 해왔다’는 것.


프로듀서인 아내와의 결혼, 전지현과의 만남 계기도
이들 부부가 감독과 제작자로 손발을 맞춘 첫 번째 영화 ‘도둑들’에 이어 두 번째 협업의 결과물인 ‘암살’도 1천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자 이들 부부의 파트너십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안 대표는 남편이기 이전에 감독으로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최동훈 감독은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밤을 새우며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합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멋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얘기하고 뛰어다닙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3년의 인생을 온전히 바칩니다. 그러나 자만하지 않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듣습니다. 제작자에게는 최고의 파트너인 감독입니다.”

최동훈 감독도 안 대표가 영화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큰 이야기부터 손톱만 한 이야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죠. 스토리텔링은 제 역할이고, 아내는 제가 쓴 걸 냉정하게 읽어주죠. 아주 냉정하게. 그런 것들이 되게 많아요. 군데군데 정말 많이 섞여 있죠. 에피소드를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조언을 지치지 않고 해줬어요.”


같은 영역에서 일하는 부부로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부부가 서로 통닭을 튀기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하하. 둘이 같은 공간에서 계속 일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늘 함께 있는 게 싫은 적은 없어요. 아내는 제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지죠.

전지현 씨와의 인연도 안 대표로부터 이어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둘은 영화 ‘4인용 식탁’에서 프로듀서와 배우로 만났어요. 그때부터 친분이 있던 아내에게 전지현 씨를 소개받아 ‘도둑들’을 하면서 처음 만났죠. 만나보니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라서 캐스팅을 결정했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남달랐어요. 이래서 전지현이구나, 했죠. 그때는 지현 씨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때였어요. 해외 영화 ‘블러드’와 ‘설화와 부채의 비밀’이 기대만큼 잘 안돼서요. 근데 배우는 무덤 속에서도 살아나옵니다. 작품이 계속 깨져서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다시 멋지게 귀환하는 게 배우죠.

그런 믿음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백윤식 선생님을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와! 탤런트라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배우였구나.’ 탤런트가 영화배우보다 못하다는 게 아니라 홈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적 포스가 뿜어져 나왔거든요. 이후 ‘범죄의 재구성’을 같이했는데 연기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어요. 그래서 배우를 쓸 때는 나이도 불문, 성별도 불문하죠.


시대극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또 한 번 ‘흥행 마술사’임을 입증한 최동훈 감독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에로틱한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장르지만 “매사가 도전”이라며 포기를 모르는 그에겐 이 역시도 창작 욕구를 샘솟게 하는 즐거운 과제일 터.

“임권택 감독님처럼 현역으로 오래 활동하는 게 꿈이에요. 그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제 나이가 70대가 됐을 때 ‘매드맥스’ 같은 영화를 찍고 싶어요.”



글 · 김지영 기자|사진 · 조영철 기자 케이퍼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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