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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복수극은 나의 힘~ 장서희

우먼동아일보

2014. 10. 06

드라마 ‘인어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으로 복수의 대명사가 된 장서희가 4년 만에 돌아온 안방극장에서 다시 한 번 인기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신작 ‘뻐꾸기 둥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 그간 중국에서 장루이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한국적 장르드라마의 힘을 보여준 장서희의 끝없는 연기 열정을 들었다.

복수극은 나의 힘~ 장서희

KBS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가 시청률 20%를 넘어선 가운데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2010년 드라마 ‘산부인과’를 끝으로 안방극장에서 모습을 감췄던 장서희(42). 그 사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장루이시’라는 이름으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4년 만의 TV 복귀작 ‘뻐꾸기 둥지’에서 대리모인 이화영(이채영)에게 남편과 아이를 빼앗긴 후 복수를 다짐하는 백연희를 열연 중이다.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기자를 맞은 장서희는 잠깐 양해를 구했다. MBC에서 서울 상암동 사옥 이전을 기념하는 핸드 프린팅을 하기 위해 역대 연기대상 수상자 중 한 명인 그를 찾아온 것. 그는 2002년 드라마 ‘인어아가씨’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그가 ‘복수의 화신’으로 불리게 된 것도, 10여 년 조연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주연 연기자로 우뚝 선 것도, 중국에서 인기 스타로 발돋움한 것도 모두 이 드라마 덕분이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일하고 싶은 ‘워커홀릭’
지금의 인기를 가져다준 ‘인어아가씨’, 2009년 SBS 연기대상 수상작 ‘아내의 유혹’, 현재 출연 중인 ‘뻐꾸기 둥지’ 모두 복수극이다. 시청자의 뇌리에 ‘장서희=복수’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데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굳이 또 복수극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황순영 작가님, 곽기원 감독님과 친분이 있어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입장이니 양국에서 모두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 우리는 서정적이고 뮤직비디오 같은 드라마를 선호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잔잔한 가족극은 지루해한다. 중국에서는 ‘별에서 온 그대’처럼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와 여자가 인생을 진취적으로 개척하는 내용에 열광한다.

감정 소모가 큰 역을 하고 있어서 힘들지 않나.
연기하느라 힘든 건 견딜 만하다.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하는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전에는 연기자들이 일일드라마를 시청 연령층이 높아 등한시했다. 그런데 ‘인어아가씨’가 성공한 이후 일일드라마가 스타 등용문이 됐다. 또 ‘인어아가씨’처럼 센 내용의 드라마가 계속 나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배우가 이미지가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인데 복수극 하면 장서희를 떠올리니 뿌듯하다.  

‘뻐꾸기 둥지’의 백연희는 주위의 괴롭힘을 묵묵히 견디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와 흡사한 캐릭터다. 원래 성격도 두 여자를 닮았나.
둘 다 나와 안 닮았다. 자연인 장서희는 늘 즐겁게 산다. 그들처럼 상대가 괴롭힐 때 참지도 않는다. 정병국(황동주)처럼 남편이 지질한 불륜남이라면 가만 안 뒀을 거다. 아니, 그런 남자랑은 애초에 결혼도 안 했다.



실제 이상형은.
우리 드라마에 변호사로 나오는 이명운(현우성) 캐릭터가 좋다. 명운이는 백연희가 아이 딸린 이혼녀임에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이 여자만 보고 도와준다. 그처럼 조건보다 사람 자체를 보고 좋아하는 남자, 든든하고 항상 즐거움을 안겨주는 남자가 이상형이다.

그런 사람을 만났나.
아직 못 만났다. 개인 장서희로 보면 되게 심심한 삶을 살고 있다. ‘워커홀릭’이라 일밖에 모른다. 남자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남자친구가 그동안 없었던 건 아니다. 근데 내가 연애보다 일을 더 중요시하니까 ‘연락 왜 안 해? 아무리 일이 바빠도 전화 한 통 할 수 있잖아!’ 같은 투정을 남자가 나한테 한다. 아직은 결혼이나 연애보다 일에서의 성공이 더 절실하다.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일하다 보니 남자를 사귈 시간도 없고 있던 남자친구도 도망가는 것 같다.

일적인 면에서는 이미 성공한 것 아닌가.
더해야 한다. ‘인기를 더 얻어야지, 잘나가야지’가 아니라 내 일에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영역을 더 넓히고 싶다. 중국에서도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려면 좀 더 달려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 됐지만 아무래도 외국 배우라 자리 잡기가 더 힘들다.


복수극은 나의 힘~ 장서희

2002년 드라마 ‘인어아가씨’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한 장서희의 핸드 프린팅. <br>


중국에서 활동하며 ‘겸손의 위력’ 실감해  
장서희는 1993년 한중 합작 영화 ‘야망의 대륙’에 출연하며 중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중국 땅을 또 밟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10년 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인어아가씨’가 중화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중국에 초청된 것. 그때부터 그가 출연한 한국 드라마가 모두 중국과 대만 등지에 판권이 팔려 프로모션차 중국에 갈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2009년 ‘아내의 유혹’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현지화를 결심했고 중국 드라마 ‘림사부재수이’ ‘수당영웅’ 등에 출연하며 실천에 옮겼다.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특별 드라마인 ‘림사부재수이’는 중국 BTV와 CCTV에서 방영할 당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종영한 후에도 각 지역 채널과 위성 채널에 재편성됐다. 그가 중화권 꽃미남 스타 정원창과 함께 찍은 드라마 ‘경자풍운’도 2008년 방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전파를 타고 있다.    

중국 현지화를 꾀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나라 작품이 잘돼서 중국에 홍보하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 내에서의 활동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스타가 우리나라에 프로모션차 방문하는 건 단발성 화제로 끝나지만 만일 그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면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으로 중국에 머물며 작품 활동도 하고 중국 회사와도 일하면서 현지화에 주력했다.

중국에서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자신의 인기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인기란 장서희가 나왔을 때 ‘저 사람이 장서희지’ 하고 알아보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10대들 사이에선 우상이지만 어른들이 모른다면 진정한 인기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중국에서 중국 이름인 장루이시 하면 10명 중 7명은 안다. ‘인어아가씨’는 너무 유명해서 드라마 제목을 모두가 알더라. 그런 걸 보면 인지도가 꽤 쌓였다고 생각된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외모라는 평이 있다.
그런 것 같다. 장나라 씨나 나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더구나 성이 중국에도 있는 장씨라서 더 친근하게 느끼더라.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많았다. 한류라는 게 양날의 칼이더라.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중국 배우들 사이에서는 ‘비싼 돈 들여 외국 배우 데려다가 뭐하는 거야?’ 하는 반감이 있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말 걸고 인사하고 그랬더니 같이 작품하며 친해진 중국 배우도 많다. 내가 마음을 먼저 열면 그들도 마음을 열더라. 한동안 일부 철없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도도하게 굴어 한류에 나쁜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은 중국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대부분이 잘하더라. 중국에 진출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겸손하게 대하면 더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 활동을 10년 넘게 지속해온 장나라 씨나 채림 씨도 현지에서 굉장히 겸손하게 일한다. 중국인들이 그런 점을 높이 사니까 롱런할 수 있는 거다.

중국어를 잘하겠다.
사실 현지화를 목표로 중국에 가면서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잘하진 못하고 간단히 의사소통하는 정도다. 중국 영화는 동시 녹음을 하지만 드라마는 후시 녹음을 한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는데 같은 지역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여서 표준어를 자막처리하기도 한다. 외국 배우가 활동하기 좋은 여건이다. 그럼에도 중국어를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는 건 그들과 계속 교류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중국의 드라마 제작 환경이 많이 다른가.
중국은 드라마를 사전 제작한다. 그래서 쪽 대본도 없고 밤늦게까지 촬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제작 여건이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중국 스태프들은 한국은 그때그때 시청자 반응을 보고 드라마 대본을 쓰기 때문에 시청률을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더라.


복수극은 나의 힘~ 장서희

나이 먹으니까 남이 뭐라 하건 내 주관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 내겐 일이 너무도 소중하다. 연애도, 사랑도 다 해봤지만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크더라.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며 살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연하보다 푸근하게 감싸주는 연상이 좋아”
공식적인 데뷔연도는 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1989년이지만 그는 1981년 전국예쁜어린이 선발대회 1위로 뽑혀 9세 때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했다. 33년 차 연기 베테랑에게 욕심나는 배역을 물은 건 우문(愚問)이었다. 그는 얼굴 붉히지 않고 현답(賢答)을 내놨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안 해본 역이 있을까 싶다. 장르와 시공을 넘나들며 별의별 역을 다 해봐서 해보고 싶은 역이 없다. 다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생을 작품 속에서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내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작품이나 캐릭터를 선별할 때도 그 점을 고려한다.”

연기하다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나.
많다. ‘인어아가씨’를 하기 전까지는 연기자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늘 주인공 옆자리에 있다 보니 비교당하기 일쑤였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무명이라고 하대하고 무시하는 건 예사였다. 그 모든 설움을 ‘인어아가씨’에 출연하면서 해소할 수 있었다. 맺힌 한이 터져 나오는 대사를 하면서 서러운 마음을 다 풀었다. 연기할 때 악에 받쳐 하는 대사들은 내 진심이었다. 대사가 내 지난날을 보상해주는 것 같았다. 억울했던 감정을 해소하니까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복수극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겐 연기가 리얼하다고 칭찬받고, 나는 나대로 한풀이를 다했다(웃음).

동료들을 살뜰히 챙긴다고 하더라.    
조연을 하면서 설움 당한 상처가 깊기 때문에 그분들의 심정이 어떨지 잘 안다. 그래서 배역의 비중에 상관없이 함께하는 분들에게 잘하려고 한다. 특히 조연 배우들을 더 챙긴다. 주인공을 빛내주는 분들이니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여가를 어떻게 보내나.
여행을 즐긴다. 해외여행 중 기억에 남는 곳은 그리스 산토리니다. CF 광고에서 보던 아름다운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국내 여행지 가운데는 강원도 낙산사를 좋아한다. 유난히 그곳에서 촬영할 일이 많았다. ‘아내의 유혹’에서 물에 빠졌던 장면도 인근 바닷가에서 찍었다. 불교 신자라서 그런지 낙산사에 가서 기도하고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다.
지금도 늦었다.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이왕 늦은 거 제대로 찾아서 하자 싶다. 국적은 상관없다. 나이 차도 상관없다. 다만 집에서 막내로 자라다 보니 연하보다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연상이 잘 맞을 것 같다. 아래로 세 살, 위로 두 살까지 감당할 수 있다(웃음).

30대엔 시속 30km, 40대엔 시속 40km로 세월이 간다는데 나이 듦이 두렵지 않나.
두렵지 않다. 나이 먹으니까 남이 뭐라 하건 내 주관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 내겐 일이 정말 소중하다. 연애도, 사랑도 다 해봤지만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크더라.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며 살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영애 씨처럼 결혼해서 다복하게 사는 ‘절친’을 보면 부럽지 않나.  
결혼해서 예쁘게 살면 좋지만, 지금 내 삶에 만족한다. 외국에 나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는 건 큰 복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계속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후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인생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이를 실현해가는 타입이 못 된다. 지금은 ‘뻐꾸기 둥지’를 열심히 해서 잘 끝내자는 생각뿐이다. 배우로서 내 좌우명은 ‘주어진 일은 열심히, 나를 위해서 행복하게 살자’다. 10년 후에도 그런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그때도 배우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 아니던가.



글·김지영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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