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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용기 있는 자들의 행복한 대화록

미움받을 용기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5. 05. 15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한 책, ‘미움받을 용기’가 출간 넉 달 만에 25만 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두 저자,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 씨를 만났다.

용기 있는 자들의 행복한 대화록

‘미움받을 용기’의 공동 저자인 고가 후미타케와 기시미 이치로 씨(왼쪽부터).

흔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코드가 맞는다’는 표현을 쓴다. 살아온 환경이나 나이, 지식 수준, 관심사가 비슷한 경우 ‘코드’가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한 경우도 그렇다. 이는 때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공감대를 넘어 지적 유대의 형태로 발현된다. 우리가 수천 년 전에 살다 간 성인이나 철학자의 이론에 매료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 또한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의 코드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61)와 자유기고가 고가 후미타케(42)의 만남도 그랬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의 코드가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건 1백 년 전 시대를 살다 간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덕분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9년, 20대 후반의 고가 씨가 우연히 기시미 씨의 저서 ‘아들러 심리학 입문’을 집어들면서 시작됐다. 아들러 심리학에 심취한 고가 씨는 아들러의 이론에 관한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찾는 것이 날것 그대로의 아들러 이론이라기보다 기시미 이치로라는 철학자의 필터를 통해 걸러진, ‘기시미의 아들러학’이었음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들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며,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스스로가 정한 미래라는 목적론을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으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 또한 환경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가질 ‘용기’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란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자처하라는 뜻이 아니라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자신 앞에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인생’이 있고, 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후자를 택하라고, 그래서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한 자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철학과 수다 떨기

고가 씨가 아들러 심리학에 빠져든 지 10여 년이 지난 2010년, ‘아사히 신문’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던 그는 신문사로부터 인터뷰 기사를 의뢰받고 동경하던 기시미 씨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이미 아들러 철학에 심취해 있던 자유기고가와 평생을 아들러 연구에 바친 철학자. 이들의 만남은 시작된 순간부터 뜨거웠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철학자의 연구실은 이후 5년간 아들러 심리학을 뜨겁게 갈구하는 젊은 작가의 공부방이자 놀이터, 쉼터가 됐다. 두 사람은 문답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나갔고, 그 오랜 기간의 대화는 아들러 심리학을 정리하는 쉽고도 깊이 있는 출판물로 완성됐다. ‘미움받을 용기’는 5년여에 걸친 이들의 탐구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들 ‘아들러파’를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는 것은 마치 아테네의 광장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유쾌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아들러의 메시지는 성과주의, 물질만능주의, 전통과 관습에 매몰돼 스스로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적잖은 울림을 준다.

WD |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근간으로 한 철학서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책의 감수자 김정운 소장(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의 추천사를 보면 그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이 책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시미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안일한 방식으로 답을 제시하려 들지만 ‘미움받을 용기’는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오는 것처럼 바로 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힌트’를 주는 것이죠.

WD | 책 전체를 대화법으로 서술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기시미 소크라테스는 그의 생을 통틀어 저서를 단 한 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모두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 전해질 뿐이죠.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 대화를 통해 사상을 탐구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입니다.

WD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들러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 건가요?

기시미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생존해 있다면 정신과 의사나 카운슬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플라톤은 임상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이론을 해석한 사람이며, 아들러는 플라톤의 사상을 가장 심도 깊게 연구한 사람입니다. ‘누구도 일부러 원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아들러의 주장 역시 플라톤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죠. 이는 누군가 좋은 일이라 생각해서 한 행동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나쁜 결과를 원해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길 원하는 엄마는 없지만 엄마의 선행이 때로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 아들러는 엄마가 애초에 자신의 행동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용기가 부족한 것

용기 있는 자들의 행복한 대화록

‘미움받을 용기’의 핵심은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WD | 자신이 하는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도 아들러의 심리학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론 자체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실천은 다른 문제니까요.

기시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럴 때마다 ‘당신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싫어하는 거네요’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실천하려는 용기가 부족한 겁니다.

WD | 어느 독자가 ‘분노의 제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글을 봤습니다. 책에서는 ‘상대에게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정중하게 말하라’고 했지만, 그럴 경우 상대가 자신을 무시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내용이었죠. 일면 맞는 얘기 같습니다. 차분하게만 대응한다면 상대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었다거나 화가 났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가 사람들은 화를 내야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상사와 부하직원 같은 관계에서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상대가 모를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시미 분노를 통해 순간적으로 상대를 억압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발심이나 또 다른 분노를 키울 수도 있죠. 오히려 부드러운 화법으로 ‘이렇게 하면 좋겠다’ 혹은 ‘이런 행동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죠.

WD | 아들러의 이론을 만나고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실제로 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였다든가….

고가 물론이죠. 남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됐고, 특히 부모님이 내게 뭘 원하는지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아,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들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게 됐다고 말하는 게 옳겠군요.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께 효도하고픈 마음은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살지는 않습니다.

WD | 부모님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고가 설득하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죠. 결국 실천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었어요.

기시미 부모가 원하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자식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 애쓰다 실패하면 자식은 그때부터 부모를 탓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불행이 부모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고 선택도 본인의 몫입니다. 고가 씨처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부모도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저 역시 아들러 심리학을 알게 된 후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됐습니다.

WD | 고가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뜻인가요?

기시미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고민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 이 사람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관심과 동정을 받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정말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A로 할까, B로 할까 고민하는 동안에는 결정이란 걸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결정할 용기가 없기에 고민을 하는 것이죠.

WD | 그래도 사람이 아예 고민이란 걸 안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요.

기시미 제 경우엔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특히 고민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공들여 쓴 원고를 실수로 날려버린다 하더라도 ‘이걸 어째’ 따위의 고민을 하지 않아요.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는 한 줄도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이죠.

WD | 책 제목이 ‘미움받을 용기’인데 주부들은 집안에서 역학관계상 오히려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주 야단을 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남편에게도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서는 남에게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원하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가정에서 주부가 그랬다간 큰일 아닌가요.

기시미 스스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화술이 필요합니다. 옳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남편과 아이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면 말하는 방법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스스로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에게 ‘공부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은 강요가 되고 말죠. 설거지를 하는 남편 옆에서 ‘세제를 그렇게 많이 쓸 필요 없어. 그건 낭비야’라고 지적하거나 빨래를 널고 있는 남편에게 ‘탁탁 털어서 널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도 괜한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대화의 방법을 바꿔보라

용기 있는 자들의 행복한 대화록

‘미움받을 용기’의 핵심은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WD | 낭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기시미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 지적하지 말고 시간을 조금 두고 말을 꺼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의 노고에 대해 감사와 격려를 표현하는 것이 먼저죠. 문득 생각난 것처럼 ‘지난번에 설거지 해줘서 고맙고 기뻤어’라며 남편의 공을 치하한 다음 살짝 지나가는 얘기처럼 세제의 적정 사용량에 대해 말해주면 남편도 다음에는 분명 기억할 것입니다.

WD | 예시가 매우 상세한데요, 실제 본인의 경험담인가요?

기시미 (웃으며) 그렇습니다. 집에서 가사일을 곧잘 하는 편입니다.

WD | 고가 씨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내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나요?

고가 아내와 대화할 때 인터뷰를 하듯 물어보는 편입니다. 대화법은 여러모로 유용하죠. 고민이 있어 보이거나 무언가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든가 ‘듣기 싫어’ 따위의 말로 대화를 단절시켜버리면 안 돼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카운슬러들의 상담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상대방도 마음을 열고 들어주죠.

기시미 흔히 가족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말을 다 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가족과도 카운슬링의 틀을 하나 마련해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대할 때 나만의 대화의 틀이 있으면 감정을 다치지 않으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죠. 야단을 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살짜리 아이가 우유가 가득 든 컵을 들고 걸어오다 바닥에 죄다 흘려버렸어요. 그럴 때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가 나서서 바로 바닥을 닦고 아이를 훈계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먼저 ‘내가 닦을까?’라고 하더군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일들이 모두 처음부터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실수인 거죠. 아이가 우유를 또 흘린다면 물어보세요. 우유를 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제 아들은 앞으로는 앉아서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답을 찾을 것입니다. 이런 대화 과정에 분노라는 감정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일을 벌인 당사자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WD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기시미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부터 실천해보기 바랍니다. 이웃이 변하고 세상 사람들이 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고가 이 책은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좋은 길잡이가 됐으면 합니다.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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