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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TERATURE TRAVEL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평화가 깃든 새로운 세상 꿈꾸었던 백성의 도시

글&사진·남기환 여행작가

2015. 03. 05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세자의 자리에 있던 아비를 조부의 손에 잃은 비운의 왕은 운명적이게도 너무나 뛰어난 군주였다. 권문세가의 끊임없는 견제와 숱한 암살의 위협 속에서도 역대 조선의 왕들 가운데 최고의 성군으로 손꼽힐 만한 업적을 남긴 왕, 이산. 왕권과 목숨이 위협받는 시간을 버티느라 불면증에 걸린 왕은 자신의 모든 꿈을 실현할 이상 도시를 꿈꾸게 된다. 그곳은 자신을 지켜주면서도 백성은 선정의 세례를 받아 풍요롭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평화(파체·Pace)의 도시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왕은 선비의 복장을 한 채 저잣거리를 둘러보는 일을 즐겼다. 볕이 유난히 뜨거웠던 어느 오후, 화성유수부의 장거리를 걷던 그는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지닌 한 사내를 보게 된다. 그의 사람됨을 간파한 선비는 수원에 호적을 둔 이들을 특별 채용하는 과거가 곧 있을 거란 정보를 슬쩍 흘리고 사라진다. 대여섯 달 후 실제로 과거가 열리고, 2등과 큰 점수 차로 장원을 차지한 이야기꾼 김태윤은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선비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깜짝 놀란다.

반쪽 양반이라는 출신 배경 때문에 수많은 책을 독파하고 뛰어난 문장을 가졌음에도 과거로 입신할 생각은 진작에 포기했던 김태윤과 정조(1752~1800)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예상했던 것보다 김태윤이 훨씬 더 깊고 넓은 학식을 지닌 사실을 알게 된 정조는 태윤에게 막중한 ‘시험’을 또 한 번 내린다. 그것은 지금껏 없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을 쌓는 국가적 위업을 태윤이 설계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유학뿐만 아니라 서학(천주학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과학 기술과 학문), 건축, 수학 등에 두루 밝은 태윤이야말로 정조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줄 적임자였다.

여기에 정조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한 명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왕의 호위무관이자 조선 최고 무관 가문의 아들인 차정빈. 몇 대의 왕을 모시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신임을 얻은 그의 부친 차원일 외에는 무예로 이길 자가 조선에 없다고 알려진 그는 무관이면서도 학문의 수준이 상당했으며, 빼어난 용모로 도성 백성들과 조정 중신들 사이에서 선망과 시기를 한 몸에 받았다. 정조의 군사 개혁 상징인 장용영의 수장이면서 왕명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굽힘이 없는 얼음장 같은 차가운 성격도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그런 그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보살피며 아끼는 단 하나의 사람은 유겸이다. 남모를 사연을 안고 차원일의 대저택인 무원당으로 흘러들어와 정빈의 수발을 들며 사는 노비. 그러나 유겸은 여느 노비들과는 풍모와 분위기부터 달랐다. 정빈은 마치 친형제처럼 그를 가까이 두고 대접(?)해주었고, 이는 무원당의 불문율이기까지 했다. 유겸은 그에 대한 보답인 듯 진심을 다해 정빈의 시중을 들고, 무원당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며 숨어 살고 있다.



소설은 왕과 태윤, 그리고 정빈과 유겸을 중심으로 화성 축성과 화성유수부의 번성, 그리고 당시 권세를 휘두르던 노론과의 치열한 대립 등을 그려간다. 그런데 이야기의 큰 흐름을 쥐고 있으면서, 유겸과 태윤 그리고 정조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일관되게 묶어놓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천주학’이다. 태윤은 입신하기 전 자신의 재능을 알아챈 상단의 대행수 자운향을 통해 숱한 서적을 탐독하다 ‘서학’을 접하고 감화된 인물이며, 유겸은 태생적으로 천주교인의 집안에서 자랐고 사제가 되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 정조는 천주교의 인본주의와 서구의 과학 기술에 깊은 관심을 두며 태윤의 지식적 성향을 묵인한다. 정빈은 이 모든 걸 알면서 왕을 보필하고 유겸을 돌보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앞날은 종교와 사랑 그리고 정치라는 주제가 혼재되면서 결코 순탄치 않은 시간에 휩쓸려가게 된다. 역사는 정치의 틀로 셈해지기 마련이지만, 훗날 그 시간을 돌이켜 기록하는 태윤의 글은 시간 속에서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일러주고 있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서울의 사대문과 다르게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 구실을 한 것은 서울에서 내려온 왕이 처음 당도하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열린 책 읽기’의 즐거움, 역사소설과 만나다

지난해 발표된 이규진의 첫 소설 ‘파체’는 수원 화성이 축조되던 시점인 1794년 직전부터 완공 후 화성 일대가 번성하던 어느 시점까지, 소설의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하면 1801년 신유박해 즈음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사실 역사소설이 갖는 장점인 무한한 상상력은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작가적 자유’를 선사하곤 한다. 실존 인물들의 속내와 ‘어쩌면 그러했을 법한’ 사건을 가공해가며 흥미를 더하지만 자칫 역사적 사실을 오독하는 위험도 공존한다. 소설 ‘파체’ 역시 그 위험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작품인 듯하다.

우선 정조와 천주교의 연관성이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정조는 성리학의 근간을 굳건히 하면 서학은 자연히 소멸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집권 초기 ‘서학’에 대한 온건책을 폈는데, 소설의 ‘왕’은 이보다 훨씬 더 깊고 애틋한 관심과 호감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심지어 가까이 둔 이들이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며 교리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상세히 알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유겸의 출생 비밀에 정조와 한 궁녀의 인연을 설정하고 있는데, 아무리 장르적 허용을 감안하더라도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소설 ‘파체’를 읽는 즐거움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기존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감정 이입을 통해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더 풍부해졌다. 어찌 보면 실존 인물의 이름과 당시의 역사적 배경 등만을 따오고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작가의 창작에서 비롯되다 보니 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열린 구조를 한계로서가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잉태되는 출발점으로 삼은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홍수 조절을 담당하는 북수문인 화홍문. ‘파체’에서는 천주교도였던 주인공 김태윤이 여러 종교적 상징을 숨겨둔 곳으로 묘사된다.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1 팔달산에서 출발해 연무대를 오가는 화성행궁열차를 이용하면 수원 화성의 곳곳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2 동2포루와 동2치 사이에 위치하는 봉돈. 현존하는 봉화 시설로는 가장 발달된 형식이다.

동시에 ‘파체’가 안겨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역사소설답게 여러 정황들과 실제 역사적 증거 사이의 차이점과 일치점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지적 추리’에 있다. 우선 소설 어디에도 정조와 거의 한 쌍으로 연상되는 그 사람, 정약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모로 보아 정약용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인 김태윤이 화성을 설계하고, 정조의 뜻을 받아 백성을 복되게 하는 여러 민본주의 정책을 제안하는 이로 그려진다. 천주교에 일찌감치 귀의한 점 역시 정약용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여기에 김태윤이 화성 설계 당시 성 곳곳에 숨겨둔 것으로 묘사되는 여러 종교적 상징도 흥미롭다. 화성의 주요 시설 가운데 홍수 조절을 담당하는 북수문인 ‘화홍문’의 수문이 7개인 이유를 천주교의 7가지 성사(일생을 살면서 교인으로서 이행해야 하는 7가지 의례들)에서 따왔고, 수문의 형상이 무지개를 닮은 이유는 구약성경의 일대 사건인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벌하지 않겠다는 징표로 무지개를 띄워 보여준 데서 비롯되며, 역시 방화수류정의 정자 누각이 십자로 된 것, 정자 아래와 주춧돌 사이 벽돌에 86개의 십자형 무늬를 새긴 것 등에도 교리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에 14개의 총안(성 밖의 적을 향해 총을 쏘도록 만든 구멍)을 둔 이유가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14처를 말하는 점, 창룡문 안쪽의 공격형 돈대인 ‘동북공심돈’이 둥근 모양인 점은 천주교 미사에 쓰이는 성체를 상징한다는 것 등 화성 설계에 ‘신앙’이 매우 깊숙이 개입되었음을 ‘상세히’ 일러주고 있다. 이러한 설정이 쉬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역사소설이라 해도 ‘좀 과하지 않나’ 싶은 독자들도 적지 않겠지만, 조금만 호기심을 갖고 접근해보면 실제 정약용이 화성을 설계할 당시 앞서의 예들처럼 상당히 많은 종교적 상징을 성 곳곳에 남겨두었음을 인정하는 자료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약용은 천주교에 일찌감치 눈을 떠 세례까지 받았으며(세례명은 요한), 그의 삶에서 종교적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천주교인임을 이유로 유배의 길에 오르기도 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에 배교를 하고, 이 박해 당시 황사영 등 주변인들을 발고하는 등 그의 태도는 급변했지만, 적어도 화성 설계 당시만 해도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말년에 배교의 죄를 뉘우치며 살아갔다고도 전한다.

물론 정약용을 두고 천주교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한문학이나 한국사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특히 화성 설계에 종교적 상징이 폭넓게 적용됐다는 점은 더욱 펄쩍 뛸 만한 일일지 모른다. 결국 화성에 남겨진 정약용의 흔적은 이를 증명할 사료가 없으니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분히 달리 해석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천주교계의 경우 성 안팎에 담긴 종교적 상징과 더불어 주요 박해 당시 숱한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던 현장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화성을 중요한 천주교 성지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어 흥미롭다.

이렇듯 ‘파체’는 소설의 주요 시공간적 배경은 정조 시대와 수원 화성에 두고 있긴 하지만, 사건과 인물을 한 줄기로 엮어가는 이야기의 짜임은 종교에 의지하고 있다.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 ‘파체(Pace)’를 제목으로 지은 것도 그러하고, 천주교의 교리와 이에 감화된 이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그러하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소설이라는 특정한 장르에 스스로를 가두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또한 4백3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 등장 인물의 규모가 단출한데, 이는 이야기 구조에 집중력을 불어넣고 인물의 극적인 상황을 한껏 끌어 올려주는 장점을 지니지만 극 중 인물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고 있는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세계 성곽 건축사에서도 돋보이는 수작을 만나는 길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1 외부의 동향을 감시하는 4개의 적대 가운데 하나인 북동적대. 2 수원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 동쪽에 인접한 높은 벼랑에 세워진 방화수류정.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성(城)’이라고 할 만한 조형물이 그다지 많지 않고, 혹여 있더라도 그 흔적만 겨우 남아 현대적인 건축 기법에 추측을 더해 어설프게 복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수원 화성은 비록 1975년부터 1979년 사이 복원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현대에 복원했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고 한다. 그런 심사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규격과 건물의 특징, 재료의 가공과 공법, 인력과 예산의 투입 등 화성 축조의 ‘모든 것’을 그림과 수치 등의 기록으로 남긴 ‘화성성역의궤(1801)’였다. 이처럼 정확한 기록에 따라 만든 것이니 현대에 복원됐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하다는 의미로 떠난 곳이 ‘파체’의 현장인 ‘화성(華城)’이다.

수원 화성은 수원 도심을 여행하는 동안 어디서건 한 번 이상은 마주하는, 수원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전 세계 18세기 성곽 건축물 가운데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과학적인 곳은 드물다고 찬사를 받은 5.52km의 이 성은 정문인 장안문(북문)과 창룡문(동문)·화서문(서문)·팔달문(남문) 등 4개의 대문을 두고 4개의 높다란 감시대인 적대(敵臺), 성 밖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감시와 공격을 용이하게 한 치(雉), 성벽을 따라 혹은 성벽 안쪽에 높게 쌓은 공격형 구조물인 4개의 공심돈, 5개의 포루 등을 두루 갖춰 군사적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외관이 아름다워 “성이 아름다워 적이 공격할 의지를 잃고 두려워하게 만들라”는 정조의 의지를 잘 반영하기도 했다.

수원 화성은 성곽을 따라 크게 한 바퀴 걸어서 여행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만큼 수려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대문, 치와 공심돈, 그리고 성 안의 여러 누각과 훈련 시설 등을 하나하나 다 챙겨 본다면 하루를 꼬박 걸어도 부족할지 모른다. 이 여행의 출발점은 어디서건 상관없지만, 수원역에서 접근한다면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에서 시작하면 조금 더 편하다. 팔달문에서 시작해 남치와 남포루, 그리고 팔달산 줄기를 따라 비죽이 난 서남각루에서 다시 서남치로 이어지는 길인데, 조금 가파르기는 하나 수원 화성이 원래의 지형을 얼마나 탁월하게 활용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여러 성들은 읍성(성곽 안에 마을이 형성된)이나 산성(마을의 기능은 없이 방어와 대피 목적) 등 둘 중 하나의 구실만을 했는데, 수원 화성은 팔달산의 산세를 그대로 활용하는 한편, 북서쪽은 평지로 이어지게 지은 산성과 읍성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포루와 치 등에서 군사 시설인 총안(銃眼)과 현안(懸眼) 등과 더불어 견고한 성의 면모를 더듬어가는 동안 성벽 너머 시원하게 펼쳐지는 수원 시내의 모습은 사뭇 도시를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렇게 서남쪽을 둘러보다 보면 팔달산 정상의 누각인 서장대에 이른다. 왕이나 장군이 지휘하기 위한 곳으로 세워진 망루이자 지휘소인데, 과연 이곳에서는 화성 일대와 수원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을 2백20여 년 전에는 더욱 탁월한 전망을 선사했을 것이다.

여정은 서문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을 지나 수원 화성의 정문인 북문, 장안문으로 이어진다. 서울의 사대문과 다르게 수원 화성은 북문이 정문 구실을 하는데, 그 이유는 서울에서 내려온 왕이 처음 당도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특히 불룩하게 성 밖으로 모양을 낸 옹성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에서 보기 드문, 공격과 방어 모두에 용이하면서 바람을 막는 구실까지 하는 매우 과학적인 시설이다. 장안문을 비롯해 주요 사대문은 이러한 옹성을 둘러 미학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수원 화성을 상징하는 많은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장안문이다.

장안문 옆 북동포루 아래로 화홍문과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이 이어진다. 일일이 수원 화성을 다 챙겨 볼 겨를이 없는 여행자들이 장안문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둘러보고 가는 것도 장안문과 동북각루, 화홍문 등이 유난한 매력을 내뿜기 때문이다. 화홍문을 넘어 수원천을 건넌 여정은 군사들이 훈련을 하던 연무대와 우아하고 당당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 동북공심돈으로 향한다. 공심돈 역시 수원 화성이 아니고서는 우리나라에서 쉬 보기 힘든 성곽의 구조물인데, 우뚝 솟은 위용과 미려한 외관은 정말이지 적들도 넋을 잃고 봤을 것이 분명하다는 감탄이 절로 들 지경이다. 이윽고 소설에서도 등장한 창룡문(동문)을 지나 동편을 푸근히 감싸는 성곽을 따라가면 출발점이었던 팔달문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이 수원 화성을 따라 오로지 걸음으로 모두 둘러보고 헤아려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성은 단지 요새의 역할이 아니라 화성유수부라는 새로운 도시를 둘러서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졌기에, 당시 도시 하나를 넉넉히 감쌀 정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장대 아래, 행궁 위에서 ‘화성행궁열차’라는 이동 수단을 운행하고 있어 수원 화성 관람에 도움을 준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고, 성 안팎을 오가며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성곽의 곳곳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열차의 종착점에 이르러 연무대 한쪽에 마련된 국궁체험장에서 활쏘기도 체험해볼 수 있으나, 워낙 수원 화성을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주말이면 국궁을 체험해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곽 안편의 너른 들판은 봄이면 푸른 잔디가 올라 그림같이 푸근한 구릉이 펼쳐지는 듯한 풍경까지 선사할 것이다.

현실과 이상향의 경계로 남았던 성벽

수원 화성은 그 자체로 빼어난 건축물이지만 그보다 정조가 꿈꿨던 새로운 세상의 실재와 마주하는 묘한 감동을 전하는 곳으로 더 의미 있을 것이다. 당파 정치를 일삼고 왕권을 위협하는 이들이 득실대는,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아비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한양을 벗어나 백성이 국가의 든든한 보살핌 속에서 자유로이 상업과 생업에 종사하며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신도시’가 성읍 안에서 시도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력하면서도 폭압적이지 않은 왕권이 백성을 먼저 향하는 마음으로 다져지고, 그야말로 사람의 삶이 먼저인 평화로운 세상. 소설 ‘파체’가 말하는 이상향에 가까워지려 했으며, ‘평화’로 가득한 새로운 조선을 세우기 위한 ‘인프라’가 됐던 수원 화성은, 그때의 못다 이룬 왕의 꿈을 곳곳에서 만나는 듯해 더 큰 애잔함으로 현재의 우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 Travel Information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수원 화성 관람 정보

관람 시간 하절기(3~10월)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 요금 어른 1천원, 청소년 7백원, 어린이 5백원

문의 팔달문 매표소(031-228-2765)

화성행궁

수원 화성 내에 정조가 지은 행궁으로, 성 안의 최대 규모이자 대표 건축물로 꼭 둘러보기를 권한다.

관람 시간 하절기(3~10월)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 요금 어른 1천5백원, 청소년 1천원, 어린이 7백원

문의 화성행궁 매표소(031-228-4677)

화성행궁열차

운행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50분(하루 12회 운행하며, 운행 시간을 꼭 확인할 것)

운행 구간 팔달산(성신사) - 화서문 - 장안공원 - 장안문 - 화홍문 - 연무대(3.2km)

탑승 요금 어른 1천5백원, 청소년 1천1백원, 어린이 7백원

문의 팔달산 매표소(031-228-4683), 연무대 매표소(031-228-4686)

종합 이용 정보 문의 031-290-3600, www.swcf.or.kr

천주교 성지 순례 도보 체험

천주교에서 수원 화성과 주변의 옛 순교지 등을 성지로 지정, 걸어서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달빛 순례’라는 이름의 야간 답사 코스가 인기 있는데, 촛불을 들고 자원봉사자 혹은 사제의 안내로 수원 화성 곳곳에 남겨진 종교적 상징을 찾아본다. 모두 3개 코스로 구성돼 있고, 매월 첫 금요일마다 코스를 달리해 진행된다. 소설 ‘파체’의 배경과 실마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따라가볼 수 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문의 031-246-8844, http://suwons.net

추천 맛집 : 수원 통닭거리

프라이드치킨보다 ‘통닭’이라는 말이 더 그립다면 찾아가볼 만한 곳. 화성행궁 건너편 수원천변에는 말 그대로 숱한 ‘통닭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맛집 거리를 채우고 있다. 통째로 튀겨내 바삭한 식감을 자랑하며, 고소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해 오히려 그 ‘덜 세련됨’이 반가운 곳들. 수원의 대표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들이 여럿 있고, 통닭뿐만 아니라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등도 인기 메뉴다. 가격은 1마리에 1만4천원 선.

이규진의 ‘파체’ 탄생지 경기도 수원 화성
남기환 여행작가

월간지 ‘Travel&Culture’ ‘CASA Bistro’ 등을 거쳐 여행 전문지 ‘The Beetle Map’ ‘across’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편집 디자인 업체 ‘아쉬’의 대표이자 미국계 유통업체 ‘코스트코’가 발행하는 멤버십 매거진 ‘The Costco Connection’ 한국판의 편집인이다.



디자인·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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