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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살림 예술가 효재 치유공간 ‘이웃’으로 가다

“세월호 유족과 밥상 나누고 싶어요”

글·황유영 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2014. 10. 07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을 잔인하게 할퀴었다. 아직도 딱지가 앉지 않은 유가족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온전히 그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그저 따뜻한 밥을 지어 대접하고 함께 울어주기 위해, 그곳에 효재가 갔다.

살림 예술가 효재 치유공간 ‘이웃’으로 가다
2014년 4월 16일. 한복 디자이너이자 살림 예술가인 효재(56)는 중국 광저우에 있었다. 제주도로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중국에 전해졌다. 그리고 영원같은 시간이 흘러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마주했다. 충격 속에 멍해있던 효재는 정 박사의 얼굴을 보고서야 정신이 맑아졌다.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달았다. 정 박사는 사건 이후 옷 몇 벌만 챙겨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하고 있었다. 효재는 당장 보자기에 짐을 쌌다. 그렇게 소박한 밥상이 안산으로 옮겨갔다.

평범한 밥상이 치유의 매개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로에 위치한 ‘이웃’은 세월호 유가족의 사랑방을 자처한다. 아름다운재단이 마련한 이 공간에서 정혜신 박사는 유가족들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상담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이웃’의 핵심은 탁 트인 공동의 공간이다. 유가족은 이곳에서 함께 밥을 먹고 안마를 받고 지치면 누워 잘 수도 있다. 밥을 먹는 것 같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조차 힘들어하는 유가족들이 편안하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살림 예술가 효재 치유공간 ‘이웃’으로 가다

1 효재는 정혜신 박사(오른쪽 두 번째)와 자원봉사자들에게 보자기의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했다. 배경 그림은 김선두 화백이 보내온 ‘봄소풍’.

전국 각지의 농부들이 보내온 식재료들,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연락을 해온 사람들…, 이 공간을 채운 것은 이웃의 사랑이다. 한쪽 벽면을 채운 ‘봄소풍’이라는 그림은 김선두 작가(중앙대 교수)가 보내온 것이고 탁자 위에 놓인 손수건, 예술 작품처럼 쌓여 있는 작은 소반에는 효재의 손길이 담겼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상의 사소함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내길 바라는 세심한 배려가 있을 뿐이다.

“정혜신 박사가 ‘이웃’을 만들며 내게 한 말은 그저 밥상을 나누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식구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일컫는 식구라는 말은 혈육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죠. 느긋하게 밥을 나누어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유가족은 물론 그들의 슬픔을 보듬는 이들도 함께 치유되기를 소원합니다.”



유가족에게 차가운 그릇을 내기가 못내 미안했던 효재는 후배 도예가 이창숙에게 부탁해 그릇을 빚었다. 도예가 이창숙은 심장 수술 전력이 있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이창숙도 마음을 담아 그릇을 빚었다.

효재가 식단을 짠 ‘이웃’의 정성스러운 끼니는 식탁이나 교자상이 아니라 1인용 소반에 차려진다. 정해진 시간 없이 언제든 이곳을 찾는 이에게 새 밥상을 낼 수 있다. 쌓아두기만 해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는 소반에도 정성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접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웃’의 밥상은 특별하지 않아요. 집에 항상 있는 달걀, 쉽게 구할 수 있는 두부, 물 좋은 오징어 등 소박한 일상의 음식으로 상을 차리죠. 여기 오시는 분들이 익숙한 음식을 먹으며 익숙한 에너지를 느끼면 좋겠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이 여전히 유가족의 마음 안에 곰삭고 있어요. 저는 쉽사리 이해할 수도 없는 아픔이지요.”

살림 예술가 효재 치유공간 ‘이웃’으로 가다

2 상담실에는 효재의 방석과 한성대 전완식 교수의 그림이 놓여 있다. 유가족들이 언젠가 일상을 회복한 후 아이들이 잠든 그곳을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져다 두었다. 3 정성이 느껴지는 보자기 포장. 4 눈물을 닦다 손수건에 무심히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보며 상처를 천천히 치유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함께 치유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일상의 회복

‘이웃’의 곳곳을 정성으로 채운 효재는 자원봉사자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원봉사자들에게 특별한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정 박사의 부탁을 받은 효재는 한달음에 안산으로 달려갔다. 강의라는 딱딱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따뜻했던 시간에 대한 대가는 정혜신 박사가 건넨 옥수수 2개.

효재는 “색은 치유의 힘이 있어서 밝은 색을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며 색색의 보자기를 꺼냈다. 분홍색 보자기를 고무줄로 몇 번 동여매자 빈 티슈 상자 위에 꽃 한 송이가 피었고 평범한 두루마리 화장지는 바라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예술 작품이 됐다. 그렇게 효재는 다 쓴 생수통, 눈에 보이는 들풀,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통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바꿔냈다. ‘이웃’을 찾는 유가족에게 하나라도 더 들려 보내주고 싶은 마음. 효재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신이 먹기 위해 멸치볶음 하나도 만들기 쉽지 않을 텐데, 반찬 같은 걸 싸서 돌아갈 때 들려주고 싶어요. 예쁘게 포장하면 받는 사람 마음도 행복해지겠죠. 종이 가방이나 비닐봉지 대신 보자기를 사용하면 그 행위 자체로 환경 운동이 됩니다. 일상을 포장하고, 그들에게 들려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효재는 앞으로도 틈이 나는 대로 ‘이웃’에 가서 일손을 보탤 예정이다. 그는 언젠가는 유가족의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치유가 이루어지고 상처 난 마음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날 거라고 믿고 있다.

“옛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수저에 빗대어 말했어요. 수저 들 힘만 있어도 된다는 말은 곧 그 작은 힘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위로예요. 저는 가슴 아프게 우리 곁을 떠난 아이들에게 상을 차리는 기분으로 ‘이웃’에 동참했습니다. 이웃들이 함께 그리고 오랫동안 한길을 걷다 보면 안산 지역이 다시 피어나고 치유될 날이 곧 오지 않을까요?”

살림 예술가 효재 치유공간 ‘이웃’으로 가다

5 효재의 손을 거치면 가위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도 예술작품이 된다. 6 도예가 이창숙 씨가 ‘이웃’을 위해 직접 빚은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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