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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슈 메이커’ 에이미가 직접 밝혔다 검사와의 진짜 관계, 사건의 전말

글·김지영 신동아 기자|사진·홍중식 기자

2014. 03. 14

올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리 검사’ 사건의 핵심 인물인 에이미. 검사와 연인 사이라고 밝힌 그에게 프로포폴 사건 당시 자신에게 구형을 내린 검사와 연인으로 발전한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1년간 두 사람에게 벌어진 일들을 소상하게 들었다.

‘이슈 메이커’ 에이미가 직접 밝혔다 검사와의 진짜 관계, 사건의 전말
1월 춘천지방검찰청 소속 전모(37) 검사가 변호사법 위반 및 공갈 혐의로 구속기소돼 세간이 떠들썩하다. 현직 검사가 공갈 혐의로 기소된 건 검찰 역사상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이 사건이 연예인 에이미(32·본명 이윤지)의 성형수술 부작용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 검사가 2012년 1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서울 강남 C성형외과 최모 원장을 상대로 에이미의 성형수술 부작용을 이유로 협박해 무상으로 7백만원 상당의 재수술을 하도록 하고, 치료비 보상 명목으로 9회에 걸쳐 모두 2천2백5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의심한다. 전 검사가 최 원장의 휴대전화에 ‘당신 병원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 ‘부숴버리겠다’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최 원장이 2천2백50만원을 전 검사의 통장에 넣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후 전 검사를 두고 ‘에이미의 해결사’라는 비난이 일자 에이미는 1월 21일 jtbc 방송에 출연해 전 검사와의 관계를 “연인 사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2년 9월 전 검사가 에이미를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시작됐다. 그 일로 에이미는 그해 11월 1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 약물치료 강의 수강 24시간을 선고받았다. 담당 검사와 피의자라는 불편한 관계로 만난 이들이 대체 어쩌다 사랑하게 됐을까. 두 사람 사이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월 7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에이미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었다. 에이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체로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지만 전 검사의 혐의에 관한 질문에 답할 때는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프로포폴 공급책으로 의심받아



▼ 전 검사는 2012년 프로포폴 사건의 담당 검사다. 그를 원망했을 법한데.

구속기소까지 갔을 땐 너무 미웠다. 내가 구속 수감되기 전날 고려대병원에서 C형 간염 판정을 받았다. 방송 끝나고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밖에 나가면 안 된다, 큰일 난다고 하더라. 몸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그러고 다음 날 구치소에 들어갔는데 검사님은 내가 아픈 것도 꾀병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날 프로포폴 공급책으로 의심했던 것 같다.

▼ 의심을 산 이유가 뭔가.

내가 2012년 4월 네일 숍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을 때 주삿바늘이 팔에 꽂혀 있었고, 가방에 프로포폴 주사기가 든 박스가 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난 사실대로 말했다. ‘프로포폴을 많이 맞은 건 맞지만 네일 숍에서 불법 투약한 적은 없다. 자궁에 물혹이 생겨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간호사가 정신이 들기도 전에 날 깨워 챙겨주는 대로 나왔다. 병원에서 나와 다음 날 방송 준비 때문에 네일 숍에 갔는데, 가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간호사가 내 몸에서 주삿바늘을 빼지 않은 것도 몰랐고, 내 가방에 쓰다만 프로포폴 주사기 박스를 넣은 줄도 몰랐다.

▼ 전 검사가 믿지 않았나.

네일 숍에 가기 전 병원에서 수술받은 건 믿었는데 주사기가 박스째 나오니까 의심을 거두지 못하더라. 이분이 정말 엄격하다. 처음엔 내 얼굴도 안 보고 타이핑만 했다. 지나치게 곧고 융통성이 없어서 이 검사가 날 되게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내가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면서 C형 간염을 치료받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내가 한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중엔 나한테 오히려 미안하다고 얘기하더라.

▼ 어떤 점을 특히 미안해했나.

조사할 때 내 눈이 노래지고 얼굴이 누렇게 떠 있더란다. 황달도, 간 수치도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C형 간염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한다. 그런데도 내가 잘 지내서 고마웠던 것 같다. 춘천구치소에 입소하기 전 그곳 사람들이 에이미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더라. 말썽쟁이라서 사람들과 만날 싸울 거라고. 얘만은 멀리하자는 분위기였다는데 오히려 나는 모범수처럼 잘 지냈다. 그랬더니 조사가 다 끝난 날 검사님이 지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누가 뭐래도 에이미 씨 말 다 믿어요.” 그게 너무도 고마웠다.

“구치소 밖이 더 무서웠다”

‘이슈 메이커’ 에이미가 직접 밝혔다 검사와의 진짜 관계, 사건의 전말
구치소 안에서 한방을 쓴 다른 수감자들이 판사에게 탄원서에 가까운 편지를 쓸 때, 그는 전 검사에게 세 통의 편지를 썼다. 전 검사가 조사를 마치고 그에게 건넨 책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와 따뜻한 말을 떠올리며 ‘열심히 살겠다. 많은 것을 깨우쳐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밖에서 꺾은 꽃을 말려 보내기도 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 이제 삶에 중요한 것이 뭔지 알겠다. 이런 소소한 것이 삶의 행복이구나 싶다’고도 적었다.

답장은 없었다. 그러다 집행유예로 출소하던 날 전 검사는 자신과 검찰 직원들이 쓴 편지 6통을 그에게 건넸다. 전 검사의 편지에는 ‘꿋꿋하게 잘 버텨줘서 고맙다. 난 믿는다. 다 잘될 거다. 아픈 거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출소 후 잘 지냈나.

구치소 안보다 밖이 더 무서웠다. 구치소에서는 모두 아홉 명이 한방을 썼는데 그 사람들은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려고 한다. 서로 빼앗을 것도 없고. 근데 밖에서는 내게 돌을 던지고 별의별 욕을 다했다. 온갖 협박도 당했다. 프로포폴 맞고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유포하겠다는 사람부터 어쩌다 차 사고가 나면 “에이미네” 하며 앞에 드러눕는 사람, 3개월 동안 따라다닌 스토커도 있었다. 그 스토커가 엄마에게 전화해 에이미 동영상이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나중에 그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돈이 많아 보여서요”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삶이 절망스러웠다. 연예인이 된 후 내가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일들이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날 호구로 보는구나, 이름도 얼굴도 바꾸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나 싶었다. 너무 힘들 땐 검사님에게 전화해 하소연했다.

▼ 구치소에서 전 검사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나.

그건 아니고, 출소 후 과자를 좀 보내드리려고 형사님에게 전화했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검사님에게도 보내고 싶다고 했더니 직접 전화해보라며 알려줬다. 근데 검사님은 콩 한 쪽도 받으면 안 된다고 단번에 거절하셨다.

▼ 그러면 둘이 언제부터 사귄 건가.

2012년 11월 하순일 거다. 처음 통화하며 나중에 한번 보기로 하고 11월 중순 집 근처에서 만났다. 그다음 주에도 내가 C형 간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면서 전화했더니 마음에 걸렸는지 동충하초를 잔뜩 싸 가지고 오셨다. 동충하초가 간에 좋다더라. 그러고 그다음 주 세 번째 만난 날 검사님이 내게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내가 에이미 씨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계속 만나고 싶다”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교제가 시작됐다.

▼ 전 검사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사실 검사님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근데 검사라는 무거운 타이틀 안에 있는 여린 속을 발견하고 나서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자기가 검사인데도 사람 들을 구속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다. 내 힘든 얘기를 다 들어주며 자기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친구들도 그 사람은 검사를 할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선한 마음을 지닌 검사여서 참 존경스러웠다. 날 걱정해 동충하초를 가져다주고, 내가 힘든 상황을 못 이겨내는 것 같으니까 악플들 속에서 좋은 글만 모아 복사해서 선물로 주고 그랬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믿음직스럽고 존경심이 드는 사람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병원도 날 받아주지 않았다”

교제 후 전 검사는 그를 ‘윤지(에이미의 한국 이름) 씨’나 ‘에이미 양’이라 부르고, 그는 전 검사를 계속 ‘검사님’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오빠라고 부르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계속 존경심을 갖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 데이트는 어떻게 했나.

검사님 본가가 서울이라 매주 어머니와 가족을 만나러 오면서 내게 들렀다. 둘이 만나면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서 서울 남산이나 청담동의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정말 건전하게 만났다. 플라토닉 러브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 연인끼리 아무런 스킨십도 없었나.

내가 C형 간염을 앓고 있어서 검사님이 날 많이 배려해줬다. C형 간염은 타액이 아닌 혈액으로 전염된다. 그 사람은 내가 아프면 자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며 몹시 미안해했다. 스킨십도 되게 조심스럽다고 했다. 검사님이 제일 많이 한 스킨십은 안아주는 거였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어쩌다 볼이나 입에다 뽀뽀한 게 다였다. 첫 키스도 좀 늦게 했다. 작년 3월인가에. 그것도 키스가 아니라 뽀뽀였다. 집에 데려다주면서 맨 처음엔 볼에다 하더니 입에다 하더라.

▼ 부모님에게도 교제 사실을 알렸나.

교제한 지 몇 달 뒤에 얘기했다. 엄마는 우리가 만나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봐 걱정하셨지만 만남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검사님을 만나고 나서 속이 깊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이슈 메이커’ 에이미가 직접 밝혔다 검사와의 진짜 관계, 사건의 전말
▼ 둘이 만나면 주로 무슨 얘기를 했나.

요즘 기분은 어떤지 나 혼자 막 떠들었다. 검사님은 주로 듣는 편이었고. 그러다 성형수술 부작용 때문에 힘들다는 것도 털어놨다.

▼ 성형수술 부작용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나.

재수술을 하려고 찾아간 병원마다 날 받기를 꺼렸다. 내가 ‘에이미’이기 때문이었다. 부작용의 심각성을 다들 알았지만 자기들은 책임지기 싫으니까 처음 수술받은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검사님이 데려간 다른 병원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처음 수술한 병원에 가서 다시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오면 병원이 타격을 받는다면서.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검사님에게 전화해서 “한번 죄인은 끝까지 죄인인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그날 검사님이 병원에 오셨다.

내가 자립하길 바랐던 ‘검사님’

대체 어느 부위에 부작용이 생겼기에 그토록 여러 차례 재수술이 필요했던 것일까. 에이미는 “말하기 쑥스럽다”며 잠시 망설이더니 “수감 전 엉덩이에 보형물 넣는 수술을 받았는데 살 짼 부위가 아물지 않고 자꾸 벌어졌다. 잘 때도 옆으로 누워 자야 했다”고 털어놨다.

에이미의 말에 따르면 전 검사는 에이미가 흥분해 건강이 더 나빠질 것을 염려하며 남자친구로서 최 원장을 만나 재수술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갈 방법을 조율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차례 재수술 후에도 부작용이 거듭돼 에이미는 결국 미국에 있는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았다.

▼ 전 검사가 최 원장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을 아나.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검사님이 술 마시다 화가 나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고의는 없었을 거다. 원래 말을 신중하게 하는 분이다.

▼ 다른 병원 치료비 명목으로 2천2백50만원을 받는 과정에서 전 검사가 최 원장을 협박하지 않았나.

보상 차원에서 서로 잘 끝내기로 하고 원만히 합의된 걸로 안다. 수술을 하고 또 해도 낫지 않으니까 더는 그 병원에 내 몸을 맡길 수 없는 상태였다. 그쪽에서도 “더는 못하겠다, 다른 병원에서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 전 검사가 2천2백50만원을 포함해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보내준 걸로 알려졌다. 부잣집 딸이 왜 전 검사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았나.

2008년 ‘악녀일기3’에 출연하면서부터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집에서도 나왔다. 집안에서 방송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직업이 생겼으니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검사님도 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하길 원하며 드문드문 돈을 보내줬다. 미국에서 요리 기술을 배워보라고 했고, 자신도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으니 집과 학교를 알아봐 달라며 돈을 보냈다. 얼마 전 통장 정리를 해보니 그게 모두 6천7백만원이더라.

▼ 전 검사와 결혼 약속을 했나.

검사님이 미국에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거기서 터전을 만들어놓은 다음 각자 할 일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근데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계속 검사님 곁에 있는 게 검사님을 위해 잘하는 일인지, 검사님도 그걸 바라는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 전 검사의 가족을 만나봤나.

만나지 못했다. 변호사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봐도 안 가르쳐준다. 많이 신경 쓰인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 죄송할 뿐이다. 진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만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된 분인데…, 나 때문에 검사직을 박탈당하면 죄책감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울음).

전 검사는 2월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그는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 “나 자신에 대한 사건이라 스스로 법률적 판단이 어려운 만큼 변호인과 더 상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유·무죄 주장은 추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3월 7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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