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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아이 받는 여의사의 진료실 토크

새 생명 탄생까지 의사는 살얼음판

글·이용주 | 사진·REX 제공

2013. 11. 06

산부인과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둘이서 왔다가 셋이 돼 돌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늘 행복한 피날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산, 유산, 사산과 같은 불행한 결과도 염두에 둬야 한다.

새 생명 탄생까지 의사는 살얼음판


전공을 산부인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보람과 즐거움이었다. 산부인과에는 종양내과처럼 의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말기암 환자도 없고, 내분비과처럼 당뇨와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으로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이도 없다. 또 재활의학과처럼 매번 비슷한 운동과 치료를 반복 설명해야 하는 지루함도 없다. 산부인과 환자는 젊다. 가임기의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이어서 병원 대기실의 분위기마저 화사하다. 여기에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드라마틱한 피날레가 있다. 둘이서 왔다가 셋이 돼 돌아가는 아름다운 광경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그러나 실제 분만 현장에서 20년을 살다 보니 보람이 허탈로, 즐거움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막달이 다 돼 자궁 내 태아가 사망하면 아무리 산전 진찰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순식간에 멱살을 잡히고 돌팔이 의사가 된다. 또 예정일이 지나 일어난 자궁 내 태아 사망에 대해 태반, 탯줄의 상태를 들어 하나하나 원인을 설명해도 그 산모 부부에게 의사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원수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무엇이 문제일까.
산부인과 환자들은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출산은 병이 아니라고 여겨서인지, 새 생명의 탄생을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피날레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조산, 유산, 사산과 같은 불행한 결과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임신부의 건강 상태도 천차만별이다. 모든 아기가 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차라리 임신 전부터 지병이 있는 경우는 더 조심하고 만약 불행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만, 평소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이들은 임신 중 닥치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임신 초기 갑자기 태아가 자라지 않아 계류유산 가능성이 있을 때 의사는 마음속으로 확진을 해도 한두 번 더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임신부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준다. 임신중독증으로 점점 혈압이 오르고 몸이 붓고 아무리 약을 쓰고 안정을 취해도 호전되지 않고 배 속 아기가 잘 크지 않을 때 임신부는 의사를 원망한다. 왜 미리 혈압이 오를 거라고 말해주지 않고, 약을 처방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산전 초음파 검사가 100% 기형을 잡아내는 것도 아니다. 초음파 검사를 수차례 하고도 태어난 뒤 장협착이나 기도·식도의 구조적 이상, 미세한 구개열, 폐나 심장의 이상, 뇌기능 이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면 산모는 왜 태아일 때 발견하지 못했느냐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어느 할머니는 귀한 3대 종손주가 이마를 4분의 1가량 덮고 있는 점(피부색소 과침착)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왜 배 속에 있을 때 입체 초음파를 하고도 이걸 알지 못했느냐며 그간의 진료비를 물어내라고 악을 썼다. 또 임신 34주 만에 자궁 내 태아가 죽자 임신부의 친정어머니는 이틀 전 산전 진료 때 태아가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왜 그때 바로 수술로 꺼내지 않았느냐고 병원을 한바탕 뒤집어놓고 갔다. 34주에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지 않으면 당장 제왕절개술로 꺼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지만, 여덟 달 동안 배 속에서 키운 아기를 잃은 산모의 상심을 생각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한번은 산전 검사에서 문제가 없던 경증의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나고 한 달 뒤 백혈병 진단을 받자 할머니가 잊을 만하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의료진이 아이를 다운증후군으로 만든 것 같다고 원망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의사가 동네북도 아니고 체육관의 샌드백도 아니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있듯이, 아무리 건강한 임산부이고 소문난 명의가 진료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확률적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항상 존재한다. 태고적부터 여인들이 아무 문제없이 아이를 잘 낳아왔다면 뭣 하러 산전 진찰을 받겠는가. 아이가 똑바로 있는지 거꾸로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집에서 낳을 수 있다면 뭣 하러 병원까지 가서 분만을 하겠는가. 의사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최대한 낮추고자 노력할 뿐이다. 만약 불가항력적인 것까지 미리 다 잡아내 예방할 수 있다면 그는 의사가 아니라 신이다.

새 생명 탄생까지 의사는 살얼음판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으며,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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