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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아이 받는 여의사의 진료실 토크

다시 생각해보는 임산부의 권리

글·이용주 | 사진·REX 제공

2013. 10. 10

요즘은 임신을 하면 산전 진료를 위한 조퇴가 인정되고, 한 시간씩 조기 퇴근도 가능하며 연수, 교육, 단합대회 등에서 당당히 빠질 수 있다. 또 출산 후에는 상당 기간의 분만·육아 휴직이 보장된다. 그러나 가끔은 의사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편법을 요구하는 임산부들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는 임산부의 권리


첫 진료를 한 임신부에게는 일단 전업주부인지 직장맘인지 확인한다. 이후 진료 스케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은 대부분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한숨부터 쉰다. 출퇴근 하는 데 지하철로 한 시간이 걸린다는 둥 통근버스 타는 시간만 2시간이라는 둥 하며 임신과 직장 생활의 병행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나오는 말이 “이제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요?”이다.
다행히 요즘은 여성의 임신·출산을 장려하고자 법적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보장하고 있다. 산전 진료를 위한 조퇴가 인정되고, 한 시간씩 조기 퇴근도 가능하며 연수, 교육, 단합대회 등 행사에서 당당히 빠질 수 있다. 또 업종에 따라서는 임신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근무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임신을 확인하려고 생리예정일 전에 임신 확인을 위한 피검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의사가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편법을 요구하는 임신부들이 있다. A씨는 임신 초기 빈번한 출혈을 빙자해 ‘절박유산(임신 초기 질출혈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진단서를 요청했다. 출혈이 잦았다는 A씨의 말에 질강 안을 살펴보았으나 핏방울 하나 없었다. ‘절박유산’이 아니라고 했더니 왜 진단서를 안 써주느냐고 떼를 쓴다. 알고 보니 4주짜리 진단서를 받아야 자신은 병가를 내고, 그 자리에 시간제 강사를 쓸 수 있단다. 행정 편의를 위해(아니 마음 놓고 쉬기 위해) 1주짜리 진단서를 4주라고 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비하면 병가 시작 날짜를 주말이나 연휴를 피해 적어달라고 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B씨는 임신 초기 출혈이 잦더니 7주에 계류유산이 된 뒤 다시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가 또다시 8주에 유산을 했다. 습관성유산으로 마음을 졸일까봐 안쓰러워 수술 후 이런 저런 말로 다독였던 터라 더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그런데 두 번째 유산을 한 지 석 달쯤 지나 B씨의 친정엄마가 찾아와 첫 번째 유산 시기가 임신 20주 무렵이라는 허위 진단서를 써달라고 했다. 무슨 사정인가 했더니 휴직 처리 때문이었다.
B씨는 첫 번째 유산으로 병가휴직을 내고 복직하지 않은 채 두 번째 임신과 유산을 하자 처음 낸 병가를 계속 사용했다. 이후 직장에 복귀하려 하니 서류 미비로 그 기간만큼 무단결근이 될 상황에 처하자 편법을 요구한 것. 즉 20주가 지나 유산을 하면 단순 병가가 아니라 분만휴가가 돼 무단결근 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법적으로 보장되는 유산·사산휴가는 16주 이상 21주 이내는 유산·사산일부터 30일까지, 22주 이상 27주 이내는 유산·사산일부터 60일까지, 28주 이상인 경우 유산·사산일부터 90일까지다. 휴가 기간 중 임금도 지급된다. 상황은 유감이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단서는 떼 줄 수 없다고 하자 B씨의 친정엄마는 악담을 퍼부으며 병원을 떠났다.

하지도 않은 임신 확인 진단서 요구
C씨는 1년 넘게 분만·육아휴직을 쓴 뒤 복직할 때가 다가오자 얼른 둘째를 가져 휴가를 연장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임신은 되질 않았고 서류 제출 마감일이 다가오니 다급해진 C씨는 병원에 찾아와 “집에서 임신테스트를 했더니 양성이었다. 빨리 임신 확인 진단서를 써 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하지만 소변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피검사까지 해봐야 정확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하자 순식간에 아주 야박한 의사가 되고 말았다. 혹자는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환자의 편의를 좀 봐주면 어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갖 편법을 통원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다. 이런 이들로 인해 여성 인력의 경쟁력이 평가절하되고 수많은 가임기 여성들이 채용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편법으로 권리를 남용할 때, 누군가는 어렵게 얻은 직장을 지키려다 유산과 조산을 하고,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봐 분만휴가도 다 못 챙기고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을 한다.

다시 생각해보는 임산부의 권리


이용주 아란태산부인과 소아과의원 원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5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직장맘이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밤낮으로 새 생명을 받으며, 올바른 산부인과 지식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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