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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채널A 이영돈 PD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3. 06. 17

‘착한 식당’을 찾아서 전국을 누비는 이영돈 PD가 나타나면 일단 식당 주인들은 긴장한다. MSG에 관한 방송을 본 주부들은 조미료에 손이 갈 때마다 그의 얼굴이 떠올라 흠칫한다. 그만큼 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최근 지난해 채널A에서 방영된 내용을 엮어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라는 책을 펴낸 그의 방송 뒷이야기.

CHAPTER 01 패러디계의 신데렐라 되다

채널A 이영돈 PD


이쯤 되면 신드롬이다. 신동엽, 김준현 등 내로라하는 개그맨과 아이돌 스타들이 앞다퉈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며 그의 흉내를 낸다.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보여주는 다소 어색하지만 신뢰가 가는 억양과 몸짓은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유행어는 이영돈(57·채널A 제작상무) PD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됐다. MSG를 잔뜩 넣은 냉면 육수, 불량 단무지, 염산 처리된 김 등 문제적 먹거리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자세 말이다. 그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고 할 때마다 정말 먹어도 되는지 걱정스러우면서도 ‘흑기사’ 같은 모습이 듬직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 PD는 방송계 미다스의 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추적 60분’ ‘생로병사의 비밀’ 등 SBS와 KBS를 오가며 화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 채널A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이름을 딴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이하 ‘논리로 풀다’)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하 ‘먹거리 X파일’) 등을 기획하고 진행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 특유의 무게감에 익숙한 그가 패러디계의 신데렐라가 된 소감은 어떨까.
“하하하.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남희석 씨가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광고에서도 쓴다고 하고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하더군요. ‘SNL 코리아’에서 신동엽 씨는 성적 코드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살짝 난감하기도 하지만 제가 PD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쪽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기분 좋게 웃는 그의 얼굴이 홀쭉해 보인다. 5월 20일부터 방영되는 ‘논리로 풀다’ 시즌2에서 간헐적 단식을 다룰 예정이라 얼마 전부터 실습에 들어갔는데, 그 때문이란다. ‘논리로 풀다’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들을 선정해 직접 체험하고, 그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서는 운명·사주 등에 관한 내용과 함께 흉가 방문, 로또 당첨 번호 예측 등을 했고 시즌2를 준비하면서는 전생 체험과 함께 최근 논란이 됐던 프로포폴도 맞아 봤다고 한다. 이 역시 몸이 고달픈 일이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죠. 방송을 하면서 제가 가진 호기심이 시청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로또 번호를 예측하는 게 가능할까, 전생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을 파헤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죠.”
그는 ‘논리로 풀다’ 시즌 1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흉가를 체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원장이 자살한 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버려진 정신병원이었는데, 몇해 전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흉가로 촬영을 해 가기도 했다.
“밤 12시 다 돼 도착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 정말 무섭더라고요. 퇴마사가 귀신이 보인다느니, 이러다 귀신 씌겠다느니 겁을 주니 더 오싹하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살했다던 병원장은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어요. 황당하죠. 나중에 퇴마사도 한번 파헤쳐 보려고요(웃음). 결국은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까진 괜찮은데 한번은 아들을 끌어들였다 혼쭐이 났다. 1등과 꼴등의 공부관을 비교하는 ‘공부의 신’ 편에서였다.
“아이들 방에 폐쇄회로(CC)TV를 달아놓고 3시간 동안 관찰을 했는데 1등은 거의 움직임이 없어요. 영상을 빨리 돌려도 자세가 거의 그대로예요. 반면 꼴찌 하는 학생들은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다리 긁고… 쉴 새 없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카메라에서 사라져 제작진이 방에 들어가 봤더니 침대에 누워 있더래요. 저희 둘째가 꼭 그래요(웃음). 그래서 방송에서 그 얘길 했다가 아들에게 혼났어요. ‘나 공부 안 하는 거 동네방네 소문내면 어떡하느냐’ ‘친구들이 다 보고 한마디씩 하더라’고요(웃음).”

채널A 이영돈 PD


CHAPTER 02 운명, 논리로 풀다



옳다 그르다 갑론을박 가운데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운명에 관한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것을 사주·궁합·관상 등으로 예측 가능한지 여부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평소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진학, 취업, 결혼, 승진 등 인생 대소사를 앞두고 무당이나 역술가를 찾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영돈 PD의 호기심 레이더가 이를 비껴갈 리 없다. 그는 지난해 설 특집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4부작을 통해 사주, 궁합, 관상, 굿과 무당이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 허점은 없는지 각종 실험과 비교를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했다.
다음은 사주에 관한 실험의 한 토막. 제작진은 평생 재물운이 없이 살아온 노숙자의 사주를 역술가 5명에게 주었다. 역술가 셋은 노숙자에 대해 “금전적인 면이 모자란 사주”라고 했다. 나쁘지 않은 적중률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사주를 정확하게 짚어낸 역술가도 있었고, 로또 당첨자의 사주에서 횡재수를 읽은 역술가도 있었다. 그런데 노숙자와 같은 사주를 가진 다른 두 남자를 찾아봤다. 첫 번째 남자는 직업이 불안정하고 이혼까지 했다. 노숙자와 그리 다를 것 없는 삶이다. 그러나 두 번째 남자는 대학교수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전혀 신빙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역학이나 미신에 빠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이영돈 PD는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답을 찾았다.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믿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채널A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에서는 로또 당첨 번호 예측에 관해서도 다뤘다. 로또 번호 예언의 달인들이 스튜디오에 총출동했다.



“역술가들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는 ‘바넘 효과’를 잘 이용하죠. 일단 자신의 말을 믿고 의지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요즘 힘들었구나’ ‘좋은 기회를 날렸네’ ‘대인관계가 삐걱댔구나’ 하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 쉽게 먹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방송에선 이런 실험을 해봤다. 언변이 좋은 사람을 역술가처럼 교육시켜 중년 여성 4인의 사주를 보게 했다. 가짜 역술가는 여성들에게 ‘요즘 외로우시죠?’ ‘자식 복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등 몇 가지 상투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점을 보고 나온 여성들은 대부분 어떻게 그리 잘 맞히는지 신기해했다. 역술가가 맞히는 게 아니라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역술가의 말에 자신의 상황을 맞추는 것이다. 이영돈 PD는 사람들의 혈액형에 대한 믿음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A형은 소심하다든가, O형은 사교적이라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론도 검증을 해봤는데,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였어요. A형인 남자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1천원을 빌려주고 못 받은 거예요. 달라는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급기야는 일기장에 ‘A형의 비애’라는 제목으로 ‘나는 소심한 성격이라 너무 괴롭다’고 일기를 썼죠. 그런데 군대에 가서 자신이 O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다음부터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활동적이고 사교적으로 변한 거죠.”
그렇다면 정해진 운명이란 없는 걸까. 역술은 얼마나 믿어야 할까.
“제 경우엔 회사를 옮길 때마다 주역 점을 봤는데 이미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해도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괘가 나왔더라면 쉽게 이직을 결심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대로 있어도 좋고 옮겨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사주에서 참고할 만한 건 대체적인 운의 흐름과 자신이 어느 정도의 그릇인지 정도인 것 같아요. 세상에 완벽한 사주는 없어요. 그러니까 전체적인 운의 흐름을 알고 상승기에는 겸손한 마음을, 하강기에는 인내심을 갖고 때를 기다리며 자신에게 맞게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친구 중에 의사, 변호사가 한 명씩 있어야 한다는데 그렇게 보면 점쟁이 친구도 한 명 있으면 좋아요. 사주나 오행의 흐름상 언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역술에 대한 믿음은 딱 그 선까지가 적당한 것 같아요.”

CHAPTER 03 그의 식탁엔 MSG가 없다?

채널A 이영돈 PD

운명과 역술,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영돈 PD는 최근 사주 궁합 관상 굿과 무당 등을 논리적으로 해석한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라는 책을 펴냈다.



사실 5년 전 ‘소비자 고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이영돈 PD를 만난 적이 있다. 검증을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고춧가루, 밀가루 포대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그는 뜻밖에 동티모르산 커피를 예로 들며 착한 소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조건 싸게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물건을 정당한 가격에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식을 소비자가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의 요지였는데, 당시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런데 이영돈 PD는 그 개념을 발전시켜 ‘먹거리 X파일’의 ‘착한 식당’ 코너를 만들었다.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업체들은 줄서서 기다려 먹는 맛집이 됐고, 불량식품으로 찍힌 음식들은 소비자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게 됐다. 이 PD는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이들에게는 귀인이, 불량식품을 파는 이들에겐 저승사자가 됐다. 이영돈 PD가 떴다 하면 식당 주인들이 바짝 긴장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얼마 전 친구들이 자주 간다는 일식집에 갔는데 음식이 늦게 나온 데다 맛까지 평소와 다르다는 거예요. 음식 맛이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조미료를 빼서 그렇대요. 친구들이 ‘이제 너랑은 같이 못 다니겠다’고 불평을 하더군요(웃음). 회사 직원들과 회식을 가도 마찬가지예요. 식당에선 신경을 쓴다고 조미료를 빼고 주는데 그건 굉장히 왜곡된 거예요. 조미료를 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우리가 비싼 돈 내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요?”
그는 “식당을 취재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먹거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한 만큼 이참에 나쁜 음식은 뿌리를 뽑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먹는 음식도 우리 가족이 먹는 것처럼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신선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드는 곳이 많이 생겨야 해요. 그리고 저희는 그렇게 양심적으로 운영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거고요.”
이쯤에서 이영돈 PD의 집 부엌이 궁금하다. 조미료 없이도 맛을 내야 한다는 까다로운(?) 음식 철학을 가진 남편에게 맞추려면 아내가 꽤 고생하지 않을까 싶다.
“저희 집 식탁은 정말 소박해요. 제가 바로 지은 따뜻한 밥에 신 김치 얹어 김으로 싸 먹거나,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 밥에 물김치 또는 참기름 넣고 달걀 깨서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해 반찬도 몇 가지 안 내요. 비싼 음식보다 집에서 그렇게 먹는 게 가장 맛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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