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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이혜은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아이가 ‘놀이’를 선택하게 하라

사진제공·이혜은

2013. 03. 05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 것인가’로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시작한 놀이가 정작 엄마의 욕심을 채우는 일로 끝을 맺는 경우도 많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 아이와의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아이가 ‘놀이’를 선택하게 하라


지난 설날,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으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건 살짝 억울했지만, 현서가 여섯 살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뻤다. 특히 지난해에 비해 세배도 잘하고 어른들 심부름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언제 이만큼 컸나 싶어 놀랍고 기특했다.
한창 호기심이 많은 현서는 요즘 ‘엄마, 나랑 놀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모든 초보 엄마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요구 사항이 바로 ‘놀자!’가 아니던가.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다소 과격하면서도 활동적인 성향에 맞춰 아이가 흡족할 만큼 놀아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나마 유아기 때는 집에서 이런저런 장난감을 갖고 놀아주기도 하고, 어부바도 하며 달래기식의 놀이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20kg짜리 쌀 한 포대는 거뜬히 되는 현서를 안고 놀기에는 힘이 달린다. 과연 다른 엄마들은 아이와 무엇을 하며 노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궁금해진다. 한때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각종 아동 체험전과 키즈 카페를 즐겨 다녔다. 하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놀이기구나 시스템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현서는 키즈 카페를 가면 금방 싫증을 내고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그러다 현서가 만 세 돌이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산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임신 전 등산을 좋아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생기면 둘이 함께 꼭 산에 오르리라 다짐했었다. 가족이 함께 등산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럽고 흐뭇하던지…. 얼굴이 새빨개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산에 오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난 미래의 내 아이의 모습을 투영해보곤 했다.
처음 찾은 곳은 집 근처 낮은 동산이었다. 초반에는 의외로 잘 따라와주던 현서를 보면서 흐뭇했는데 그것도 잠시, 시냇가에서 30분, 나무 열매를 보느라 10분, 청솔모를 쫓느라 10분, 온갖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 탓에 산 중턱까지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후에도 난 현서를 데리고 꾸역꾸역 산에 올랐고, 매번 늑장 부리는 아이 때문에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당시 난 아이와 산에 오르는 목적을 망각한 채 “그만 보고 얼른 가자”라는 말로 아이를 재촉했다.

가끔은 아이가 노는 모습 지켜봐주기

아이가 ‘놀이’를 선택하게 하라


나의 산행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제주도 여행에서였다. 한라산 영실 코스를 세 번째 도전하던 날이었는데, 현서는 이번에도 역시나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계곡물에서 헤엄치는 피라미들에게 마음을 뺏겼고, 좀처럼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떤 말로 아이를 움직이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순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벗어버리고 가만히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눈에 산 정상의 풍경이 좋아 보이는 것처럼 아이에게는 자연 그 자체가 최고의 장난감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이후로는 아이와의 놀이가 바뀌었다. 현서에게 먼저 무엇을 하며 놀고 싶은지를 묻고, 단순한 놀이가 조금 지겹다 싶으면 엄마의 아이디어를 첨가해 살짝 방향을 틀어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랬더니 아이도 엄마와 노는 걸 더욱 편안하고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또 한 가지 육아 전문가들의 조언을 덧붙이면 모든 놀이에 엄마가 일일이 간섭하고 직접적으로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가끔은 아이가 노는 모습을 옆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게 오히려 아이의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요즘은 어린이집에 가는 길도 즐거운 놀이처럼 여겨진다. 아이와 함께 달리기 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빙판길에서 조심스럽게 썰매를 타기도 했다. 이제 곧 봄이 올 것 같다. 날씨가 포근해지고 여기저기 꽃도 피어나면 아이와 또 어떤 놀이를 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현서도 마찬가지겠지?



탤런트 이혜은은…
1996년 영화 ‘코르셋’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뒤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섯 살배기 아들 현서가 씩씩하고 줏대 있는 아이로 커가기를 바라는 보통 엄마. 현재 MBC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에 출연하며 EBS ‘부모’ 고정 패널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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