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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열세 번째 | 스포츠에 빠진 여자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서핑으로 극복했죠”

주말마다 파도 타는 여자 이규현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2.11.16 11:00:00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한 이규현 씨. 취미로 시작한 서핑에 빠져 최근에는 초보 서퍼를 위한 입문서까지 발간했다. 이씨의 지칠 줄 모르는 서핑 예찬론.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서핑으로 극복했죠”


“2010년 여름 부산 해운대에서 서핑하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한국에서도 서핑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이나 호주 여행 때 만난 서퍼들 이야기에 늘 호기심이 있었거든요.”
초보 서퍼 이규현(35) 씨는 전공이 사회복지학이었지만 학창 시절 주변에서 사회체육학과냐고 오해할 만큼 운동 마니아였다. 몸 움직이는 걸 워낙 좋아해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 스키, 스노보드, 수영, 승마 등 안 해본 스포츠가 없다.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다 2006년부터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서핑은 사계절 내내 할 수 있는 스포츠라 파도가 적당히 있으면 가는 거죠. 동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아 좋고, 서해는 물때를 봐서 들어가야 하니 서울 사는 서퍼들은 주로 강원도 양양으로 많이 가요. 5초에 한 번씩 파도가 치는 날이면 여러 차례 서핑을 즐기고, 때로는 느긋하게 쉬면서 파도를 기다리죠.”
서핑에 재미를 붙이면서부터 결혼식이나 부득이한 가족 모임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주말 약속을 잡지 않는다. 금요일 밤이면 서울을 떠나 주말 내내 파도를 타기 때문.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서핑만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올해 7월 서핑 입문기 ‘서핑에 빠지다’를 낸 것도 그런 서핑의 매력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했어요. 그 점이 늘 스트레스였는데,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꼭 서핑이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와 취미처럼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끈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외국에는 84세 된 할머니 서퍼가 있을 정도로 서핑은 나이 든 분들도 많이 하는 스포츠거든요. 서핑을 오래 한 사람들은 ‘잘 타는 서퍼’보다 ‘즐겁게 타는 서퍼’가 최고의 서퍼라고들 말해요.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았죠.”
한 달에 서핑에 투자하는 비용은 서프보드나 웨트슈트 등의 구입 비용을 제외하고 40만~50만원가량. 여기에는 숙박비와 카풀, 식사 비용 등이 포함된다. 이씨는 “큰돈 같지만 서핑이 아니었다면 그냥 쇼핑하는 데 써버렸을 것 같아 자신에게 투자한다고 여긴다”고 했다.

파도 탈 때면 양탄자 타고 하늘 나는 기분
즐겨 찾는 장소는 강원도 양양의 기사문해수욕장. 한국의 서핑 애호가들에게는 충남 태안반도 만리포해수욕장이나 부산 송정해수욕장과 해운대해수욕장, 제주 중문해수욕장 등이 인기라고. 그는 “캘리포니아 남부와 일본 오키나와에도 다녀왔지만 서퍼들의 성지라 불리는 발리나 하와이, 호주 골드코스트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라며 “인기 있는 곳보다 남미 바다에서 서핑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잘 모르는 곳이니까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서핑을 하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서퍼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모한 건 좋아하지 않지만, 서핑을 할 때 모르는 바다를 찾으면 반드시 지역민들에게 바다의 특징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알래스카에서도 빙하를 피해가며 서핑할 수 있다는데, 그 느낌도 궁금하고요(웃음).”
캘리포니아에 사는 68세 할머니 서퍼는 그에게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게 해줬다.
“일흔이 다 돼서도 서핑을 하고 서핑 용품을 개발하는 분이에요. 메일을 보냈더니 ‘서핑으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라며 ‘서핑이 인기를 끌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고 용기를 주셨죠. 지금도 이메일로 교류하고 있는데, ‘열심히 즐기고 파도를 독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막연하게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할머니들을 보고 나니 ‘저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상황이 허락하는 한 1백 세까지 파도를 타고 싶어요. 외국에서는 우리가 즐기는 바다를 지키자는 차원에서 환경 운동을 하는 서퍼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도 많아지면 좋겠고요.”
이씨에게 서핑은 ‘일탈’이자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활동’이다.
“마법 양탄자를 탄 것처럼 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갈 때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잘 안 되던 게 어느 순간 성공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 매혹에 이끌려 수십, 수백 번씩 물 먹고 넘어지면서도 서핑을 하는 것 같아요. 스노보드는 정해진 슬로프를 타지만 서핑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파도를 탄다는 점에서 인생이랑 닮았죠. 서핑에서 얻은 활력으로 인생을 훨씬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됐어요.”
이씨는 처음 서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름에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겨울에는 여름보다 준비할 것이 많으니 주로 여름 휴가 기간에 서핑을 체험하는 분들이 많아요. 6월부터 제주도, 부산, 양양 등지에서 대회가 열리는데 그 기간에 무료 체험 교실도 있으니 일단 경험해보면 좋겠죠. 서핑은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겸손함도 배울 수 있는 스포츠예요. 서퍼 중에 바다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서핑으로 극복했죠”

시시각각 달라지는 파도에 적응하며 다양한 기술에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서핑. 이씨는 ‘잘 타서 만족하기보다 열심히 하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참고도서 | 서핑에 빠지다(황금시간)
장소협찬 | 뉴나인(070-7410-2805)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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