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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대선 후보 빅3를 만나다

희망 전도사에서 상식의 정치인으로! 안철수

“혼자만 꾸는 꿈은 이상에서 그치지만,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10.25 16:05:00

IT문명을 주도한 화려한 경력의 엘리트로 칭송받던 안철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몇 년 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이 시대 멘토로 떠올랐다. 그런 그가 2012년, 또 한 번의 변주를 시작했다. 겸손함과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다.
희망 전도사에서 상식의 정치인으로! 안철수


“공포영화 볼 때 귀신이 나오기 전이 무섭지 막상 나오면 무섭지 않잖아요. 요즘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9월 19일 심사숙고 끝에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50) 후보의 말이다. 정치 신입생의 일상이 버거울 법도 하지만 그는 의연한 모습이었다. 차분한 말투와 온화한 인상 때문인지, 유세 기간이 두 달 채 남지 않았음에도 그에게서 조바심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은 10월 16일 서울 인사동 민가다헌에서 이뤄졌다. 이날 아침 인터뷰에 앞서 스케줄 하나를 소화하고 오는 길이라는 그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대선 출마 전후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덥수룩하게 이마를 덥고 있던 앞머리가 말끔하게 올라갔다는 것. “오늘 아침에도 앞머리를 드라이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는 그는 개인 코디네이터가 따로 있냐는 가벼운 질문에 “가끔 조언을 받긴 한다. 오늘 아침에는 골라준 넥타이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왔다”며 웃었다.
안 후보는 어쩌면 역대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국민들이 불러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원하는 멘토이자 새로운 지도자상으로 떠오르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09년 MBC ‘무릎팍 도사’를 통해 자신의 업적과 사상을 전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이후 전국 순회 방식인 ‘청춘 콘서트’를 통해 ‘안철수 바람’을 이어 갔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불출마를 선언해 정치인으로 몸값이 더욱 올라갔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 후보는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인 아버지와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 역시 서울대 의대 박사를 거쳐 국내 최대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 CEO,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 석사, 카이스트 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럼에도 그는 약자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 겸손함을 보여주며 대중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런 그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과연 어떤 계획을 짜고 있을까. 다음은 안철수 후보와의 일문일답.

▼ 얼마 전 ‘과학기술 나눔 마라톤축제’에서 박근혜, 문재인 후보와 함께 달리기를 했는데, 안 후보가 너무 잘 뛰어 대변인과 기자들이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뛴 이유가 뭔가요.
“그날 날씨도 좋고 정말 오랜만에 달리는 거라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어요. 장거리를 뛸 때 코로 숨 쉬다가 힘들어지면 입으로 숨을 쉬잖아요. 그런데 2km 뛸 때까지 코로 숨 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뛰려고 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말려서 더 못 뛰었습니다(웃음). 사실 얼마나 더 달릴 수 있나 알아보고 싶었는데, 아쉬웠어요. 그때 기분으로는 10km를 다 뛸 수 있겠더라고요.”
▼ 바쁜 일정을 소화하려면 체력 관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컨디션 조절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보통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그 시간은 웬만하면 꼭 지키려고 해요. 물론 아침 일찍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을 때는 못합니다. 예전엔 일주일에 4~5일 정도 운동을 했는데 대선 출마 이후에는 3일로 줄었어요. 보통 아령과 스틱을 이용해서 근육 운동을 많이 해요.”
▼ 최근 노타이에 체크무늬나 파란 계열 셔츠를 입는 등 자유롭고 젊은 리더 이미지를 연출한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 포인트가 있나요.
“굳이 꼽자면 양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다니는 거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특이하게 보는 분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벌써 10년째 메는 가방인데 그 안에 별게 다 들어가 있어요. 신문과 잡지, 각종 메모, 칫솔 등(웃음).”
▼ 아내인 서울대 의대 김미경 교수가 처음에는 대선 출마를 반대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아내가 반대한 적은 결코 없어요. 제가 고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고민했고, 최종 결정도 아내와 함께 내렸습니다. 지금은 같이 열심히 하려고 하죠. 아내가 이번 학기 강의를 5개나 맡아서 물리적인 시간은 많지 않지만, 모임에도 같이 참석하는 등 틈틈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동안 아침마다 제가 커피와 간단한 빵 정도는 준비했는데, 대선 출마 후에는 못해서 아쉬워요(웃음).”
안철수 후보의 가정적인 면모는 지난 7월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당시 안 후보는 첫눈에 반한 아내와의 연애 스토리와 군 시절 주고받았던 애정이 듬뿍 담긴 연애편지를 공개하고 인터넷 쇼핑으로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등 로맨틱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시절 가톨릭학생회 진료봉사서클에서 만났다. 1년 선배였던 안 후보는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 뒤 다 읽었다고 하면 질문 공세를 펼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스물여섯, 스물다섯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이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안 후보는 의사의 길을 접고 신혼집에서 지금의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었다. 당시 김 교수가 받아온 월급으로 안철수연구소 직원 월급을 줬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의학에서 IT 분야로 인생항로를 바꾼 안 후보처럼 김미경 교수 역시 나이 마흔에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당시 김 교수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딸 안설희 씨는 현재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화학과 수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안 후보는 보물 1호로 딸을 꼽는다.

희망 전도사에서 상식의 정치인으로! 안철수


희망 전도사에서 상식의 정치인으로! 안철수

1 안철수 후보 못지 않게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그의 아내 김미경 교수. 2 제주도 신혼여행 당시 모습.





“전문가인 아내, 누구보다 영부인 노릇 잘 할 것”

▼ 딸은 아버지의 정치 참여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요. 더불어 자녀 교육의 원칙이 있다면.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정치라는 것 자체가 매우 거칠고 사람을 힘들게 하잖아요. 사랑하는 아버지가 힘들게 되는 걸 원치 않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열렬한 지지자 중 한 명입니다. 어릴 때부터 딸에게 무엇을 하라 마라 지시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옆에서 지켜보고 조언을 해줬을 뿐 부모의 뜻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시 딸로서는 그런 교육 방식이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생각합니다.”
▼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면 김미경 교수도 청와대로 들어가야 할 텐데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아내는 제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교수로서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대통령 부인이 된다면 아내에게 국민이 원하는 일이 주어질 테고, 무엇보다 그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누구보다 아내가 그 일을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아내는 여성 직업인으로서 독립적으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키워왔고 의사인 동시에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시각과 경험으로 국민들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 안철수’를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이후로 많은 국민들이 제가 한국 정치를 투명하고 깨끗하게, 21세기의 소통방식과 의사결정구조로 바꾸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을 이어 받아 잘 해나가기를 바랐는데, 이번 4·11 총선 이후 저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보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더 이상 국민들의 의지와 소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어요.”
▼ 정치권에 들어온 뒤 공격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검증이냐 네거티브냐’ 하는 의견이 분분한데 당황스럽진 않나요.
“한 번도 안 해본 경험은 아닙니다(웃음). PC통신 시절부터 20년 동안 대중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공격은 많이 받아봤어요. 제가 처음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배포한다고 했을 때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결코 욕먹을 짓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때 100% 선의도 의심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이번 네거티브는 그때와 비교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도가 세고 많지만 그 역시 한 번은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오해와 진실

희망 전도사에서 상식의 정치인으로! 안철수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책에서 그는 “안철수 현상은 앞으로 그의 행적이 어떠하든 또 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 젊은 세대들의 자기 발전과 정치적 각성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했다. 좌절감에 빠진 젊은이들을 향해 이 사회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바꾸자고 말하는 안철수의 메시지는 강력했고 커다란 공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반면 ‘안철수 현상’을 실체 없는 이상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과 이상은 엄연히 다르며 더욱이 현 정치에서 오로지 희망만을 얘기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 안 후보를 이상가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꿈을 꾸지 않은 사람이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혼자 꾸는 꿈은 단순한 꿈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저와 같은 꿈을 꾸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고, 이미 행동을 같이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렇다면 제가 꾸던 꿈, 그리고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는 벌써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모범적이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평소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이 있어요. 저자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했는데 저 역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제가 젊은이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새로운 도전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간을 아끼고 잠을 줄여가며 충분히 준비해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저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40대 이후 최고의 일탈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안 후보가 생각하는 권력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의사에서 엔지니어, 경영인, 교수 등으로 직업을 바꿀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스스로의 만족도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일까 하는 거였어요. 권력은 사회적 공헌이 가능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 무엇보다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는 데 쓰일 때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권력의 사유화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피해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권력의 사유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줄여나가는 것이 현 정치인에게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이자 의무가 아닐까요.”

안철수 후보의 보육&교육 정책

안철수 후보는 보육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공공 보육서비스의 강화를 주장한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은 민간시설에 비해 저렴하고 질이 좋은 데 반해 수용 능력은 부족한 실정. 안 후보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대상 아동의 30% 정도는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단계적으로 늘려 나가는 동시에 정부 지원 등을 통해 보육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교육복지에서는 ▲고등학교 의무교육▲ 대학등록금 적정한 수준으로 낮추기▲ 사학재단의 혁신▲ 사회적 감시▲ 국가 장학금 및 대출지원 제도 개선▲ 의무교육 대상인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무상급식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 등을 내세웠다.
“저는 일찍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었어요. 특별한 교육관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가난한 동네에서 병원을 열고 환자들을 치료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동안 딸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독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죠. 지금 교육 문제가 국민들을 너무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 문제는 제도만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는 사회구조, 잘못된 편견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반드시 노력하겠습니다.”


여성동아 2012년 11월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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