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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ith specialist | 홍석천의 스타일리시 맛집

고수 김밥 열전

모양이 같다고 다 같은 김밥이 아니다

기획 | 한혜선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2012. 10. 04

초등학교 소풍날 아침, 분주한 손놀림으로 김밥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 솔솔 맡으며, 김밥 싸는 어머니의 손놀림을 구경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한 줄만 썰어달라고 김밥 싸느라 바쁜 어머니를 졸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김밥 마는 일이 끝나고, 한입 크기로 썰기 시작하면 내 손과 입은 바빠졌다. 제일 맛있다는 김밥 꼬투리를 사수하기 위해 새가 먹잇감을 쟁취하듯 김밥에 시선을 고정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낚아챘다. 소풍, 나들이의 설렘보다 ‘김밥’ 먹는 것이 더 신났던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김밥이 좋다.
고서를 보면 김을 이용해 밥과 반찬이 될 만한 음식을 싸서 먹는 문화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근대에 들어와 지금의 모양과 같은 김밥이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일본의 김초밥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의 선택은 전자다. 일본의 김초밥보다 훨씬 다양한 재료가 들어 있고 맛도 좋은 김밥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임이 분명하다. 1천~2천원대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김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봐야 할 때.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김밥부터, 다양한 맛이 추가된 퓨전 스타일까지 김밥 투어를 시작했다.
김밥은 밥의 상태에 따라 50% 이상 맛이 좌우되는데, 질지 않으면서 고슬고슬한 식감이 살아 있어야 맛있다. 속 재료 또한 중요하다. 시금치, 단무지, 달걀부침, 어묵, 당근, 오이 등 여러 영양소를 갖춘 형형색색 재료들이 한데 모여야 풍성하고 통일감 있는 맛이 난다. 앞서 말한 기본에 충실한 맛이 통인시장 내 소문난 효자김밥(02-730-7369)의 김밥이다. 주문과 동시에 순식간에 한 줄 뚝딱 마는 주인아주머니 솜씨는 심상치 않다. 먹기 시작하면 한 줄로 끝나지 않는 이 집 김밥은 햄 없이 어묵, 당근, 달걀, 우엉, 오이, 게맛살로 맛을 내 신선하고 건강하다. 광장시장의 명물 마약김밥(02-2264-7668)은 겨자소스의 매콤한 맛 때문인지 비 오는 날 유난히 생각난다. 맛있게 즐기려면 이쑤시개로 김밥 한 개를 콕~ 찍은 다음 소스에 살짝 찍고, 김밥과 단무지를 한입 베어 먹은 뒤 어묵 국물을 마시면 good! 당근, 시금치, 단무지 말고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 있지 않지만 달콤새콤하게 간한 밥과 소스가 잘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다. 홍대 찰스김밥(02-334-1692)의 숯불김밥은 김밥의 신세계라 표현하고 싶다. 아기 팔뚝만 한 크기의 김밥에는 숯불갈비, 오이, 달걀, 단무지, 게맛살, 우엉, 당근, 어묵, 깻잎 등의 재료가 듬뿍 모여 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고기의 숯불 향이 코끝을 찌르고, 영양 만점 재료가 많이 들어가 포만감도 크다. 떡볶이와 튀김이 맛있어 줄서서 먹는다고 소문난 논현동 공수간(02-545-7377)은 주 메뉴 못지않게 왕김밥도 인기가 많다. 김밥 사이즈가 숯불김밥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은데 한눈에 봐도 터질 듯 내용물이 가득하고 맛도 풍부하다. 여타의 일반 김밥과 달리 채친 어묵과 단무지가 들어가는 것이 포인트! 시금치, 당근, 달걀, 게맛살, 햄 외에 짭조름한 장아찌가 맛을 더한다. 간이 잘 맞고, 뒷맛이 담백해 입에 착 달라붙는다. 분식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스쿨푸드(02-515-9657)의 멸치김밥도 딱 내 스타일이다. 나는 이곳 김밥을 ‘김밥의 재구성’이라고 부른다. 여러 종류가 한데 들어간 김밥이 아니라, 재료 1~2개만으로 맛을 낸 신개념 김밥이다. 짭조름한 멸치를 달달하게 볶아 넣은 김밥은 미니 사이즈라 먹기 편하다.
별도의 반찬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여러 종류의 재료가 들어 있어 균형 잡힌 맛과 영양을 경험할 수 있는 김밥. 맛있는 김밥을 나열해보니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맛과 멋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재료가 다양해서인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밥을 오늘도 입에 물고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맛있는 김밥이 없었으면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나의 밥심! 김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고수 김밥 열전


광장시장 마약김밥 “김밥을 겨자소스에 찍어 먹으면 새콤달콤하면서 매콤한 맛이 입안에 전율을 느끼게 해요. 사이즈도 작아 계속 먹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맛이죠.”
통인시장 소문난 효자김밥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 같은 가장 기본적이고 건강한 맛이에요. 햄 없이 어묵, 당근, 달걀, 우엉, 오이, 게맛살만으로도 조화로운 맛을 내요.”
논현동 공수간 왕김밥 “사이즈에 한 번, 맛에 한 번 놀라요. 김밥이 크지만 채썬 재료를 사용하기에 잘 씹히고, 소화도 잘돼요. 이곳의 매콤한 떡볶이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죠.”
스쿨푸드 멸치김밥 “볶은 멸치를 넣은 미니 사이즈 김밥이에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젓가락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식욕을 자극해요.”
홍대 찰스김밥의 숯불김밥 “숯불갈비를 먹는 느낌이랄까요. 숯불갈비의 향과 맛이 입맛을 압도해요. 깻잎과 시금치 등 각종 채소가 고기의 느끼함을 중화시켜준답니다.”

홍석천 씨는… 1995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 각종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이자 이태원 마이타이를 비롯해 마이첼시, 마이차이나 등을 성공시킨 레스토랑 오너다. 미식가로 소문난 그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맛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 좋은 베스트 맛집을 매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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