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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故 남윤정 자살에 얽힌 진실, 외동딸 눈물 인터뷰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9.18 17:02:00

드라마에서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익숙한 중견 탤런트 남윤정 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생활고, 우울증 등 여러 가지가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딸 신혜원 씨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탤런트 故 남윤정 자살에 얽힌 진실, 외동딸 눈물 인터뷰


8월 1일 탤런트 남윤정 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58세. 처음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알려졌지만 곧 자살임이 밝혀져 충격이 더 컸다. 당초 사인이 잘못 알려진 것은 고인이 유서에서 ‘과로로 심장이 안 좋아 사망한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까지 드라마 ‘위험한 여자’ ‘아내의 자격’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던 그가 갑자기 죽음을 택한 것을 두고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다, 지난해 남편이 사망한 후 신병을 비관한 때문이라는 등의 추측성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빈소를 지켰던 외동딸 신혜원(30)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못을 박았다. 고인의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신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 중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8개월 만에 어머니까지 떠나보낸 신씨는 슬픈 가운데서도 “어머니가 공인이었던 만큼 사망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잡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던 어머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신씨 가족의 불행은 2011년 11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린 핑거(green finger·화초나 생명을 잘 가꾸는 사람)’라고 불릴 정도로 식물을 좋아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신씨의 부친은 공무원, 건축 회사 등을 거쳐 경기도에서 재생 에너지 사업을 했다. 쓰레기 폐기물을 활용해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 공장에 문제가 생겨 이를 점검하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신씨의 부친은 가스가 누출되는 바람에 전신에 화상을 입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것도 큰 슬픔인데 남윤정 씨는 남편이 남긴 사업체까지 추슬러야 했다. 남편의 뜻을 잇겠다는 각오로 남씨는 이를 악물고 회사를 운영했으나 상황은 점점 꼬여갔다. 신혜원 씨는 “처음에는 협조적이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를 바꿨다. 어머니가 그로 인해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어머니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걸로 알고 있어요.고통스럽겠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엄마가 힘들어 하는 줄은 알았지만 평소 자살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엄마 방부터 가는 버릇이 있어서 그날도 일어나자마자 엄마 방에 갔는데, 주인이 어디로 떠난 것처럼 깨끗했어요. 침대 한 귀퉁이에 노트가 남겨져 있었는데 펼쳐 보니 내용도 이상하고… 친한 친구분께 전화를 드렸는데 거기도 안 갔다고 하시고…. 기분이 이상해서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옷방에 들어가봤는데, 엄마가 그렇게 계셨어요. 엄마 제발 깨어나라고, 일어나라고 말도 안 되지만 인공호흡도 하고 때리고 꼬집어도 보고… 그런데도 안 일어났어요. 곧 119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이미 너무 늦었다고….”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던 것 같네요.
“사고가 났을 때 아버지뿐만 아니라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돌아가셨어요. 저희도 가족을 잃었지만 죄책감 때문에 주변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리지도 못했죠. 스트레스 가운데 배우자를 잃은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는데, 어머니는 당시 너무 기가 막히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부재를 더 크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거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 없는 회사가 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어요.”

▼ 딸로서 지켜보기가 힘들었겠어요.
“저는 지난해 8월 결혼해서 남편과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주말마다 여기 와서 지냈어요. 올 때마다 엄마가 체중이 계속 빠지고 힘들어 하는 게 눈에 보여 3월부터 여기서 지내며 식사도 하루 4끼, 5끼씩 챙겨 드렸는데도 살이 안 붙고…. 그래도 저한테는 힘들다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어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고만….”



▼ 처음엔 어머니가 자살한 원인이 생활고나 신병 비관 때문이라고 알려졌어요.

탤런트 故 남윤정 자살에 얽힌 진실, 외동딸 눈물 인터뷰

2011년 8월 딸의 결혼식날 신부 대기실에서. 이렇듯 환한 그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저희 가족을 두 번 죽이는 거예요. 한 언론이 마치 어머니 유서를 본 것것처럼 구구절절 그런 내용이 써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고, 엄마는 힘들어도 구구절절 늘어놓거나 불평하는 분이 아니세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재벌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아버지 회사가 어머니가 자살을 결심할 만큼 어려운 상태는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또 저와 남편도 있고, 어머니도 일을 하셨는데 생활고라는 건 말이 안 돼요. 저는 결혼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은 적금을 엄마한테 선물로 드린 적도 있고, 제 남편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장모님께 얼마나 살갑게 잘했는데…. 우울증도 그래요.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을 갑자기 떠나보냈는데 울적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요. 연기하는 동안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아내의 자격’에도 출연하셨지만 연기자들은 녹화 끝나면 더 허전해진다고 하잖아요.”

▼ 유서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나요.
“굉장히 짧고요, 편지 형식으로 ‘엄마가 너무 괴롭고 마음이 힘들어. 그러니까 죄책감 갖지 말고, 너는 이제 새로운 가정이 생겼으니까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어요.”

탤런트 故 남윤정 자살에 얽힌 진실, 외동딸 눈물 인터뷰

어릴 때부터 눈에 띄는 미모로 미스코리아나 배우가 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고 남윤정 씨. 그는 톱스타가 되겠다는 욕심보다는 주부 노릇에 충실하며 동료 배우들의 성공을 응원하는 것에서 행복을 얻는 소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배우 김지미와의 인연으로 연기 입문, 엄마로도 연기자로도 만점
고 남윤정 씨는 1973년 공채 탤런트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직후에는 드라마 ‘유관순’ 등에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는 ‘꽃가마’ ‘안개’ ‘꽃반지’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대중에게 낯이 익다. 2000년대 들어서는 ‘노란 손수건’ ‘이웃집 웬수’등의 드라마에서 주인공 엄마 역을 맡아 따뜻한 모성을 연기했다. 1979년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며 40년 가까운 연예계 활동 중 한 번도 스캔들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없다. 신혜원 씨는 엄마가 톱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엄마와 아내 노릇에 더없이 충실했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 어머니는 왜 연기자가 됐다고 하던가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너는 커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대요. 초등학교 때 창경궁으로 소풍을 갔는데, 마침 촬영 나온 김지미 선생님이 엄마를 보고 ‘아유, 너는 예뻐서 나중에 배우 하면 좋겠다’라고 하셨대요. 그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하시더라고요.”

▼ 연기자 활동을 하며 살림까지 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딸로서 섭섭할 때도 있었나요.
“엄마가 녹화가 있을 때는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가 와주셨어요. 그땐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인데, 공중전화로 한두 시간마다 전화를 하셔서 엄마가 방송국에 가도 항상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철이 든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엄마만큼 좋은 사람이 못 돼서 미안해’라고 말한 적이 있을 만큼 모든 면에서 훌륭한 분이었어요. 엄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에요. 혼낼 때도 소리부터 지르는 게 아니라 ‘그건 이러저러해서 옳지 않아’라고 타이르듯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하면 안 되는 일, ‘하라’고 하는 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았어요.”

▼ 드라마에서는 주로 인자한 어머니상을 연기하셨어요.
“실제 성격이 그러니까요. 가끔 모진 시어머니 역이 들어오면 소리 지르는 연습 같은 것을 해야 하니까 더 힘들어하셨어요.”

▼ 어머니가 욕심을 냈더라면 더 유명한 연기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욕심은 없으셨던 것 같아요. 또 며칠 밤을 새울 만큼의 체력이 안 됐기 때문에 스스로 일 양을 조절하셨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동료 가운데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그분들 보면서 응원하고 그런 걸로 행복해하셨던 듯해요.”

▼ 그동안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유품을 정리하면서도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쓰시던 돋보기, 옷가지, 평소 자주 신고 다니던 단화, 편지… 하나하나에 엄마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울었어요. 이런 것들을 정리하면 진짜 엄마를 보내드리는 것 같아서 못하겠어요.”

▼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엄마는 평소에 사치하거나 화려하게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유럽 여행을 갔다가 몇 가지 명품을 사드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 정리하면서 보니까 비싼 건 손을 하나도 안 댔더라고요. 시장에서 산 만원짜리 구두는 열심히 신어서 굽이 다 닳았는데, 제가 사드린 구두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아끼셨나 싶기도 하고, 그걸 보니까 더 속이 상하더라고요.”

▼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관련된 추억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아빠와는 원래도 친구처럼 지냈지만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됐고, 아빠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아빠도 한 인간인데, 가장이라는 이유로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속이 상한 일이 있어도 내색도 못하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요. 저희 아빠는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는 날엔 막걸리와 두부 한 모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그럼 엄마가 그걸 부쳐서 함께 드시며 대화를 하시거나 ‘애수’ ‘자이언트’ 같은 고전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곤 하셨는데…. 지금도 막걸리 통만 보면 울컥해요. 두 분은 제게 아빠 엄마였고, 동시에 친구였고, 삶의 이유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했는데 그게 갑자기 무너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신혜원 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울먹였다. 고인이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고통의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홀로 남겨진 딸이 근거 없는 루머로 또 다른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딸의 바람대로 ‘따뜻하고 좋은 연기자’로 기억하는 것이 고인 덕분에 행복했던 시청자로서 그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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